[소설] 나를 찾아가다
[소설] 나를 찾아가다
  • 성광일보
  • 승인 2023.06.1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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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당
소설가
성동문인협회 소설분과장
김근당

나는 바라보고 있던 산에서 얼굴을 돌린다. 먹다 남은 커피가 식어 가고 있다. 나는 남은 커피를 마신다. 커피는 내가 살아온 삶만큼이나 쓰고도 달콤하다. 나는 내일 프랑스로 떠나야 한다. 프랑스 자유대학에서 2년간 현대미학을 강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칸트의 선함적 미학에 대해서도 연구할 참이다. 칸트는 감성적 현상으로서의 미의식을 선험주의 입장에서 보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 처지로는 생각지도 못했던 미학과에 진학했고 8년의 고생 끝에 대학과 대학원을 거쳐 40대 중반에 교수가 되었다. 나를 찾아 헤매던 날들이었다. 나는 지금 가슴속에 저장되어 있는 그 시간 속에 앉아 있다. 그때 헤매던 산을 바라보면서.

어스름 새벽이었다. 나는 나무숲 위에 숨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둥글고 하얀 것이 달 같기도 했다. 서쪽으로 넘어가다 나뭇가지에 걸린 달? 하지만 나는 달이 이만큼 가까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발을 멈추고 한참을 보았다. 저만치 나무숲 위에 숨어 있는, 유난히 하얀 것이 참으로 이상했다. 마법에 걸린 달! 나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했다. 내 가슴속에 나도 모르게 숨어있는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던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를 망가지게 하고 또 망가진 나를 포기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었다.

내 생이 꽃처럼 피어나던 중학교 때의 일이었다. 한겨울에 엉뚱하게 피어난 꽃이 취위에 구겨져 떨어지는 것처럼 생각지도 못했던 내 감정으로 무사히 졸업해야 할 중학교 3학년 말에 정학을 당하고 말았다.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어두운 나무숲 위에 순백의 모습을 숨기고 있는 것이 그때 내 안에 숨어 있던 나 같아 가슴이 쾅쾅거렸다.

나는 무작정 산을 가로질러 올라갔다. 하얀 물체를 확인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길도 없는 산비탈이었다. 이리저리 얽힌 나뭇가지들 때문에 앞으로 나가기 힘들었다. 발밑에 쌓인 낙엽에 미끄러지기도 했다. 나는 나무둥치들을 끌어안고 돌며 앞으로 나갔다. 들어갈수록 무성한 숲이 앞을 가려 하얀 물체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내 안에 있는 그것처럼 거기에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찾기위해 나를 가로막는 역경을 헤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산은 겉에서 보는 것과 달랐다. 비탈은 가파르고 산봉우리는 높게 보였다. 키 높은 상수리나무와 오리나무, 아카시아나무 그리고 소나무들이 빽빽했다. 나무숲 위로 보이는 하늘색이 점점 파래지지만 숲속은 어두웠다. 나는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집을 뛰쳐나와 서울역에 처음 내렸을 때처럼, 여기저기 피어있는 진달래와 개나리꽃도 분홍색인지 노란색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나뭇가지마다 돋아난 잎들이 내뿜는 상큼한 공기가 나에게 힘을 줄 뿐이었다.

4월 말의 새벽이었다. 누나 집을 빠져나와 아파트 주변을 배회하던 나는 어둠이 가시어 가는 산길로 무작정 들어섰다. 일주일 동안 무심히 바라보던 산이었다. 누나와 매형이 일터로 나간 아파트 거실에서 바라보는 산은 연초록과 진초록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집을 나온 지 2년 가까이 지났을 때, 시골 친구에게서 누나가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골집이 궁금해서 몰래 해 본 전화였다. 친구에게 누나가 서울 어디어디에 산다는 말을 들었지만 한 번도 찾아오지 못했었다. 아무도 몰래 가출했기 때문이었다.

누나는 초라한 몰골로 들어서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죽은 줄 알고 있었다고, 어쩌면 그토록 모질게 연락을 끊었느냐고, 어머니 아버지가 너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지 아느냐고, 나쁜 놈이라고, 나를 붙잡고 울었다, 나는 확실하게 자리 잡고 학교도 다니면 연락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서울 천지에 누나 집밖에 숨어들 곳이 없었다.

새벽에 꾼 꿈이 이상했다. 나무 몽둥이에 머리를 맞고 엎어진 사장이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선이도 화사한 얼굴로 나타났다. 목련꽃같이 예쁘던 얼굴이었다. 그날, 밤나무 동산을 넘어오던 때와 같이 환하게 웃으며 사장과 어딘가로 사라지는 선이, 사장과 선이는 서로 어울릴 사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꿈은 참으로 이상했다. 사장과 선이가 다정하게 웃으며 걸어갔다.
 나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새벽이었다. 안방에서 누나와 매형의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나 때문인 것 같았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 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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