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를 찾아가다(2)
[소설] 나를 찾아가다(2)
  • 성광일보
  • 승인 2023.06.2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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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당
성동문인협회 소설분과장
김근당

나는 매형의 말에 가슴이 뜨끔했다. 나를 좋게 보아주지 않던 매형이었다. 나도 말끔한 외모와 뺀질뺀질한 성격에 잘난 체하는 매형이 역겨웠다. 누나는 그런 사람이 뭐가 좋았는지 몰랐다. 읍내에 나가 건달 노릇이나 하던  그가 누나에게 아이를 가지게 하고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는 소문이 나돌았을 때 집에서는 야단법석이 났었다. 어머니는 누나를 데리고 읍내에 나가 아이를 지웠고, 아버지는 그놈의 따귀를 때리며 마을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런데 어떻게 누나와 결혼을 했고 또 서울로 올라와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사람이 늦게 철이 드는 걸까?

내가 누나 집에 왔을 때 매형은 공자라도 되는 것처럼 나에게 훈계했다. 공부보다도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공부 잘하는 사람보다 인간 됨됨이가 되어 있는 사람이 성공하는 법이라고, 그러니 시골에 내려가 아버지를 도우며 인생 공부나 하라고. 나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소리 나지 않게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누나 집도 더 이상 있을 곳이 못 되는 것 같았다.

사람은 참으로 모를 존재인 것 같다. 매형과 누나도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나 또한 그랬다. 공부밖에 아무것도 모르던 내 작고 빈약한 가슴에 어떻게 얼토당토않은 감정이 들어 있는지, 그로 인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저질렀는지, 사랑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선이를 처음 보는 순간 가슴속애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솟아올랐다. 나도 모르는 어쩔 수 없는 감정이었다. 밤나무동산을 넘어오던 선이의 모습이 선녀처럼 보였고 부엌문 뒤에서 나를 훔쳐보던 까만 눈동자가 내 가슴을 후벼 파 놓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얽혀 있는 산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좋을지 몰랐다. 중학교 3학연 때까지 넓은 벌판만 바라보며 살아온 나는 산에 대해 몰랐다. 산길이 어떻게 생겼는지, 나무의 뿌리가 왜 구렁이 몸통처럼 드러나 있는 것인지. 큰 나무들 사이에 바위와 작은 나무들이 이렇게 많은 것인지, 허리까지 차는 이름도 모를 잡목들의 억센 가지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선이에게 가고 싶던 내 마음을 막아서던 온갖 장애물들처럼, 선명하게 보이던 하얀 물체도 어디쯤에 있는지 몰랐다. 마술을 부린 듯 거리도 짐작 할 수가 업었다.

내가 집에서 도망 나와 서울에 왔을 때도 그랬다. 손에 잡힐 것 같던 것도 어디쯤에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고, 가슴을 압도하는 높은 빌딩들과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달리는 자동차들이 앞을 가로 막았다. 12월의 서울은 추웠다. 나는 어디로 가야 좋을지 몰랐다. 아버지에게 지게작대기로 얼어맞고 방황하다 편지를 남기고 온 서울이었다.

'장차 법관이 될 놈이 학교에서 깡패 짓을 하다가 퇴학 맞아!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머저리 같은 놈! 나가서 빌어먹던지 벌어먹던지 네 맘대로 해라.' 

논농사 다섯 마지기에 공사장 잡일까지 해야 겨우 먹고 살 수 있는 아버지는 바보온달 이었다. 동네 사람들아 그렇게 불렀다. 우직하고 힘이 세다는 말인 것 같았다. 나는 아버자의 매를 벋아 내면서도 울지 않았다. 내 자신이 한심했기 때문이었다. 내 자신도 나를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내가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를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갈 마지막 두세 달이었다. 교실은 어수선했다. 벌써부터 졸업 분위기가 돌고 있는 것 같았다. 친구들은 어느 고등학교에 갈 지를 탐색하고 있었다. 서울과 대도시에 있는 과학고나 외고에 목표를 둔 학생들은 죽어라 공부를 하고 이었고 읍내 고등학교에 갈 학생들은 졸업 분위기에 들떠 웅성댔다.

나는 그런 학급 분위기가 어색했다. 다른 학교에서 전학 온 학생처럼 어떨떨했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시험에도 반에서 3등 전체에서 7등으로 처졌다. 선이 때문이었다. 아니, 내 속에 있는 나도 모르는 나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당장 등록금 낼 걱정이 앞섰다. 장학생에서 밀려났으므로 하반기 등록금은 내야 했다. 등록금을 모르던 아버지가 돈을 마련해 줄지 의문이었다. 고등학교 진학도 문제였다. 친구들은 벌써 진학 할 학교를 정하고 있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나도 서울의 이름 있는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읍내 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제쳐 두고 공부에 매달려야 했다. 하루에 3,4시간 자는 것과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책과 씨름해야 했다. 그러나 내 마음을 쥐고 흔드는 내가 있어 공부가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11월이 가고 12월이 되었다. 나를 파멸시킨 사건이 터진 것은 그 12월이 되었다. 아이들은 완전히 졸업 분위기에 들떠 있었고 여학생 반과 남학생 반 사이의 거리가 갑자기 가까워졌다. 소문도 무성하게 나돌았다. 누구와 여학생의 누군가 서로 좋아하고, 심지어는 남학생의 누구와 여학생의 누군가 북경반점에서 만나고, 심지어 남학생의 누구와 여학생의 누군가 함께 밤을 새웠다는 말도 나돌았다. 그 틈에 내 가슴에 불을 지르는 소문도 있었다. 선이가 새로 부임한 영어 선생님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었다. 사범대학을 졸업할 무렵 교생실습으로 잠시 왔었던 선생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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