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이 부르는 아름다운 사랑과 서러운 이별
교감이 부르는 아름다운 사랑과 서러운 이별
  • 성광일보
  • 승인 2023.07.2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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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윗 프랑세즈>를 보고
김정숙 광진투데이 논설위원

프랑스로 망명했던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 작가 이렌 네미로프스키가 전쟁과 박해를 피해 피신했던 한 시골 마을에서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구성하고 집필한 소설 <스윗 프랑세즈>를 영화화 했다. 미셀 윌리엄스, 마티아스 쇼에나에츠가 주연을 맡았다.

영화는 패망하는 프랑스 국가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어떻게 휘말렸었는지 프랑스 뷔시 마을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광기로 가득한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 그 당시의 부끄러운 한 단면을 복원시킨 이작품은 전쟁 속에 피어난 비밀스런 사랑, 다가갈 수도 멈출 수도 없었던 사랑, 왜 신념 앞에서 사랑은 하찮은 것으로 느껴지는지를 인간 감정의 깊숙한 곳으로부터 드러내 준다.

1940년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 뷔시 마을의 주인공 루실(미셸 윌리엄스)은 아버지의 권유로 2번 만나본 가스통과 정략결혼을 했지만 정작 알고 보니 남편은 이미 결혼 전 여자가 있었고 아이까지 있지만 전쟁터에 나가서 소식이 감감하다. 루실은 시어머니 마담 앙줄리에와 단 둘이 산다. 시어머니는 루실에게 삶의 유일한 탈출구인 피아노를 못 치게 하는 등 자신을 옥죄는 존재다.

독일군이 뷔시 마을에 점령하면서 독일군들은 계급별로 좋은 집에 배정받는데 루실의 집에는 장교 브루노(마티아스 쇼에나에츠)가 머물게 된다. 불편한 동거를 해야 하는 이들에겐 공통분모가 있다. 브루노와 루셀 모두 음악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브루노는 군인 이전 작곡가였고 루셀은 음악을 전공했으며 피아노 연주가 삶의 낙이다. 시어머니가 루실에게서 앗아간 피아노 열쇠를 달라고 한 독일 장교 브루노는 집에 머물 때면 알 수 없는 곡을 연주하고, 루실이 피아노를 칠 수 있도록 피아노 열쇠를 자신의 외투 주머니에 넣어 놓고 출근한다.

피아노 연주는 두 사람의 영혼을 연결한다. 사람의 영혼은 생각이나 말 속에서 발견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지속적인 행동에서 드러난다고 했다. 브루노가 루실의 집에 머물면서 어느 샌가 두 사람은 영혼이 교감되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특히 이념과 체제가 다른 국가 간의 사람들이 전쟁 중에 서로의 적을 사랑하는 일은 물리적 장애물을 넘어서는 것보다 한층 복잡하다. 둘의 교감은 사랑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영혼과 육체가 하나가 되는 시점에 다다르지만 마을에 큰 사건이 일어난다.

소작인 브누아가 시장의 집 창고에서 식량을 훔치다가 시장 부인에게 걸리는데 시장 부인은 브누아가 자신에게 총을 겨눴다고 거짓말을 하고 남편에게 처리해 달라고 한다. 시장의 부인에게 총을 겨눴다니, 당연히 독일군들은 브누아를 체포하러 온다. 브누아는 도망을 치려다가 얼떨결에 장교 보네와 마주치고 끝내 보네를 총으로 죽이게 된다. 이제 브누아는 독일 장교를 죽인 살인자가 되었다.

이제부터 영화의 절정이다. 전쟁의 패망과 절망속에서 피어나던 루셀의 사랑의 영혼이 번쩍 정신을 드는 순간이다. 사랑의 환상에 빠져 동료와 친구들이 죽을 위기에 빠진 것도 몰랐다고 뉘우치는 루셀은 소작인 브누아를 숨겨주고 파리로 탈출시키는데 앞장서게 된다. 물론 자신과 사랑에 빠진 브루노는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루실이 브누아를 숨기고 파리로 갈 수 있도록 통행증을 끊어준다. 자고로 사람은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홀로 있을 때 생각하지 못했던 대담함이 나오는 법이다.

아련한 사랑이 더 아련해져서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인 채 미완의 러브 스토리를 낳는 건 마지막 장면이다.

파리로 가는 길에 독일군에게 걸려서 총격전을 벌인 브누아와 루실에게 끝내 안전하도록 도와주는 독일 연인 브루노와 루실의 아리도록 가슴 아픈 눈빛이다.

독일 군 두 명을 죽이고 파리로 가야 하는 루실의 겁에 질리고 두려우면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총을 겨누어야 하는 접전의 심장소리가 자동차 앞문의 열려진 창밖으로 흐르고,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품고 적진의 대척점에서도 친절을 베풀 수밖에 없는 서러운 눈물이 독일 장교 브루노에게서 흐른다.

사랑에 빠지면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주인공이 되어서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조연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것이 친구나 가족일 수도 있고 종교나 정치적 신념일 수도 있지만 결국 사랑에 목을 매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랑은 두 사람이 주인공이 아닐 땐 비틀거리게 된다. 영화에선 사랑의 무대에 주인공은 전쟁이었다. 서로의 적국에 속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 서로가 사랑에 빠져서 주인공이 되려 했지만 조연이었던 실체가 그들에겐 감당할 수 없는 주인공이었기에 군인이 아닌 상태로 만나게 되리라는 기약밖에 할 수가 없었다.

겁에 질린 루실이 사랑하는 브루노곁을 떠나며 눈물로 말한다.
“우린 서로의 감정을 단 한 번도 말하지 못했다.
사랑이라는 한 마디조차도.
난 내가 잃은 이들을 잊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항상 날 다시 그에게 데려 간다“.

이 작품을 접한 프랑스 문단은 커다란 감동과 충격에 휩싸였다. 자신들의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낸 이 작품에 대해 프랑스 문단은 생존 작가에게만 수상 기회를 주는 관례를 깨고 르노도상을 수여했다.

1940년 6월 파리가 함락되기 직전 앞 다투어 피난길에 오른 다양한 인물들의 행로를 실시간 생중계하듯 추적하고, 이를 통해 집단 광기에서 비롯된 전쟁이 독일군이든 프랑스인이든 개인들의 관계를, 그들의 삶을 어떻게 왜곡시키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유언장이나 다름없는 이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기고 프랑스 헌병들에게 체포되어, 1942년 여름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살해되었다. 당시 열세 살이었던 장녀 드니즈는 엄마가 사지로 끌려가기 직전 건네주었던 이 작품의 원고가 든 가방을 들고 도피해 62년 후인 2004년 이 작품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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