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페 디엠!
까르페 디엠!
  • 성광일보
  • 승인 2023.08.0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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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를 읽고
김정숙/논설위원

프랑스의 대문호 파스칼 브뤼크네르가 썼다. 현재 75세로 출판사 편집인이면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책에 이런 문장이 있다.

“ 늙는다는 것은 달력 속으로 편입되는 것, 지나간 시대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맞다. 늙는다는 건 지나간 시대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는 세월을 공감하게 하지만 세월을 비극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공통의 조건으로 한데 묶이고 그대로 휘둘리는 신세가 된다. 정작나이는 행정서류상의 숫자일 뿐인데도 말이다. 이런 점에서 작가는 요즘 시대에 서류상의 내 나이와 스스로 느끼는 나이 사이의 커다란 간극을 어떻게 채워 나갈 것인지를 10가지 주제, ‘포기, 자리, 루틴, 시간, 욕망, 사랑, 기회, 한계, 죽음, 영원을 제시하며 풀어 나간다.

작가는 특히 50세 이후, 젊지도 않지만 늙지도 않은, 이 중간의 시기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이야기 한다. 인생을 다시 시작할 것인가, 방향을 틀어 볼 것인가, 존재의 피로와 황혼의 우울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회한이나 싫증을 느끼고도 여전히 인생을 잘 흘러가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파스칼, 몽테뉴, 프로이트, 니체 등의 세계적 명성에 어울리는 유려한 사유를 제시하면서 현재 나의 많은 나이가 얼마나 젊은 나이인지를 깨닫게 한다.

50세가 되면 인생이 정말로 짧아지기 시작한다. 산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짧아지는 시기이기도 해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기도 한다.

그러나 생이 짧으면 치열하게 살아갈 이유가 생기는 것처럼 남아있는 나날 동안 후회 되는 부분을 바로 잡거나 잘 한 부분을 오래 유지하려고 애쓰게 되기도 한다 이것이 카운트다운의 이점이기도 하다. 만일 이런 카운트다운이 없다면 우리는 인생이 마냥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살 것이며 내일은 끝없이 무한 반복될 줄 알고 살아갈 것이다. 결국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는 것이기에 모든 것은 한정되어 있고 하루하루 선택지가 줄어들게 된다. 모든 사안에 분별력을 발휘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삶은 명료해져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경계가 분명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통상 노년을 지상의 즐거움을 탐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명상과 연구에 몰두하고 지혜와 성찰로 내려놓음으로써 저승길을 준비해야 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작가는 다른 시각으로 노년을 바라본다. 행복한 노년의 비결은 오히려 정반대의 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늦게까지 하고 어떠한 향락이나 호기심도 포기하지 말고 불가능에 도전하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으면 포기하라든가, 어차피 노년에는 욕망이 감퇴한다든가 하는 생각도 통상 하는 말이니 그런 생각을 애시 당초 버리라고 한다. 결국 노년이 우리를 제압하고 수용하겠지만 그래도 노년은 재건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살아 본 사람들이라면 진짜 삶은 영웅적이거나 기상천외하지 않다는 것을 다 안다. 삶은 아주 세속적이고, 별나지 않은 일상 속에서 욕구를 느끼거나 해소하는 식으로 흘러갈 뿐, 매일 저녁 피아노 연주가 들리는 즐거운 집은 없다. 그러므로 작가는 단지 이 단조롭고도 일상뿐인 삶을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싱싱하게 열어 갈 의무가 있으며 황혼은 밤을 닮는 것이 아니라 새벽을 닮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그 새벽이 새로운 날을 열어주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러려면 우리는 나이를 먹되 마음이 늙지 않게 지키고, 세상을 향한 욕구, 기쁨, 다음 세대에 대한 호기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안타깝게도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생물학적 또래 집단과 한 덩어리 취급을 받으려 동시대라는 덫에 스스로 자신을 가두기도 하고 갇혀버리기도 한다. 나이를 의식하는 나와 내 나이를 의식시키는 타인의 덫은 한꺼번에 우리를 행동하지 못하도록 집어 삼킨다.

우리가 세상에 처음 태어났을 때처럼 세상을 처음 보듯 바라보고 처음 사는 듯 살 수 있다면 삶은 하루하루가 신비롭고 경이로울 것이다. 그 신비와 경이의 호기심이 딱딱한 돌처럼 굳어져 석회화된 건 “세월”이었다. 세월의 격동과 풍파 속에서 살아 내야 만 했던 그 “세월“덕에 우리는 이 젊지도 늙지도 않은 어중간한 시기에 다가서게 되었다. 그러나,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세상을 처음 보듯 바라보고 처음 사는 듯 살아야 할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새로워져야 우리는 ”나이듦”과 “늙음”이 주는 황혼의 우울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며 회한이나 싫증을 느끼고도 여전히 삶을 흘려보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생을 언제라도 빼앗길 수 있는 재화처럼 여기고 당장 누려야 할 것이다.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현재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50살이 되어도 60살이 되어도, 70, 80, 90살이 되어도,

일하고 사랑하고 현재에 집중하며 즐겨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까르페 디엠(Carpe D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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