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를 찾아가다(5)
[소설] 나를 찾아가다(5)
  • 성광일보
  • 승인 2023.08.1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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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당
소설가
성동문인협회 소설분과장
김근당/소설가

추운 겨울이었다. 배달을 간 곳은 강남의 아파트 단지였다. 17층을 올라가 벨을 누르자 건장한 남자가 문을 열고 나를 훑어보았다.
'밖이 춥죠? 들어와 몸을 녹이고 가요,'

남자는 소포를 받을 생각도 않고 내 손을 잡아 끌었다. 다른 사람들은 소포만 받고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 거실은 꽤나 넓었다. 한쪽 벽에 커다란 TV가 걸려 있고 그 밑으로 노래방기기 같은 전자장비가 쌓여 있었다. 옆으로 있는 주방에는 불빛이 은은하고 벽을 따라 술병들이 여러 단으로 꽂혀 있었다.

'젊은이가 수고가 많군요. 추위에 떨었을텐데.... 따뜻하게 마셔요,'
주방에서 연갈색 물을 담아 온 남자가 컵을 내게 주었다. 내가 무엇인가 싶어 컵을 보고 있자 남자는 피로회복제라며 걱정 말고 마시라 했다. 나는 무심코 조금 마셨다. 조금 쌉쌀했다. 내가 물을 다 마시자 남자가 나에게 소파에 앉아 쉬라고 했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조금 앉아 있자 정말로 피로가 풀리는 듯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몸에 힘이 솟고 가슴이 뛰었다.

남자가 데리고 간 방은 어둠침침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맞은편으로 붉은색 요가 깔려 있는 것 같고 가운데에 여자 둘이서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여자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나는 그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 황홀한 도취감에 꽃밭을 헤매었던 것만 같았다.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 집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몰래 집을 빠져나왔다. 속이 매스껍고 몸에서 힘이 다 빠져 나간 것 같았다. 몸에 감각이 있는지도 잘 몰랐다. 아침 늦게 회사에 가자 사장은 나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날 방에서 꼼짝 않고 누워 있었다. 몸이 처지고 기분이 이상했다. 배달할 소포가 없는지 사장도 찾지 않았다.

다음 날은 구로공단 이었다. 사장이 이번에는 꼭 돈을 받아 오라고 했다. 좀처럼 없던 일이었다. 밤늦게 찾아간 곳은 공장이 아닌 옥상의 근로자 숙소였다. 벽돌을 쌓은 채 미장도 하지 않은 건물에서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얼굴이 시커먼 젊은이였다. 
'이거 코카인 맞지요?' 

눈이 큰 청년이 서툰 한국말로 물었다. 나는 흠칫했다.
'내용물은 모르지만....그럴 리가요’

나는 엉겁결에 대답했다. 청년이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소포를 뜯어 내용물을 확인하고 돈 봉투를 주었다. 주둥이가 봉인되어 얼마인지 몰랐다. 나는 돌아오는 내내 그날 밤 알 수 없었던 일이 자꾸만 떠올랐다.
 '코카인....마약?'
나는 그제야 사장이 나에게 잘해 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음 날 내 의혹에 찬 눈초리에 사장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
'너도 마약 범죄자야, 너 하나쯤 쥐도 새도 모르게 처치 할 수 있다고!'

사장이 나에게 노골적으로 경고했다. 나는 바위처럼 덮치는 두려움에 눈앞이 캄캄했다. 어디로 가야 출구가 있는지 몰랐다. 1년 가까이 아파트로 사무실로 요정으로 노래방으로 공장으로 가정집으로 배달한 것이 마약이라는 생각이 나를 옥죄어 왔다. 사장은 수시로 전화를 걸어 내 행선지를 확인하고 압박했다. 

4월이 되어 날이 풀리자, 내가 달아날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동남아 아저씨와 함께 억지로 내 팔뚝에 하얀 주사액을 넣기도 했다. 겨울에 배달 갔던 집에서 먹었던 것하고는 달랐다. 가슴이 넓어지고 무심해지면서 세상에 무서움이 없었다. 마약을 배달하는 것도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밤에 꿈을 꾸면 중학교 시절의 내가 보였다. 나를 애타게 부르는,나,나,나, 잠에서 깨어나면 허탈했다. 토할 것 같고 불안하고 조바심이 났다. 어떻게 하든 이곳을 빠져나가야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사무실을 나가는 사장을 몰래 뒤따라 나갔다. 이른 아침 시장 거리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나는 벽에 세워 두었던 각목을 집어 사장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사장이 앞으로 쓰러졌다. 나는 뒤돌아 시장 통 밖으로 뛰었다. 소리치거나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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