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 번의 이별 앞에서
[수필] 두 번의 이별 앞에서
  • 성광일보
  • 승인 2023.08.1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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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호
수필가/성동문인협회 회원
신승호 / 수필가

한 해의 첫 달, 1월만 되면 가장 충격적이고 잊을 수가 없는 기억 하나가 지워지지 않고 나를 괴롭히고 혼돈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곤 한다. 매년 찾아오는 질병처럼 환상병을 앓듯 마음의 동요가 시작된다. 그러다가 중심을 잃고 주저앉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것도 운명인가, 숙명인가, 아니면 업보인가. 

97년 가을 결혼한 신혼의 장남, 이듬해 2월 대학교 졸업을 한 달 앞둔 1월 중순이었다. 우연히 발견한 버스를 탈취한 범인을 쫓아가는데 당황한 범인이 난폭하게 버스를 몰아 들이받는 바람에 그만 불의의 죽임을 당하게 된 아들을 한시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당시 부검실을 찾아가 아들을 보아야 하는 참담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말없이 곱게 잠든 청년, 내 아들은 천사였다.

평소에도 의젓했던 장남을 대견스럽게 자랑스러워했으며 무한히 신뢰했음을 아들의 시신 앞에서 절절히 느껴야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대통령께서 보내준 화환이 장례식장 한가운데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은 것이 뭐 대단한 것인가, '그까짓 의사자 기념비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죽음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생명보다 귀한 것이 없었다. 더욱이 자식을 비명에 보내고 피를 토하듯 절규하는 아비의 마음을 하늘이 알까? 땅이 알고 있을까.

집안 곳곳에서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길을 가다가도 누군가 이름을 부르면 뒤를 돌아보고, 어디에서인가 아들과 같은 이름만 보아도 순간순간 미쳐버릴 것 같던 그때의 기억은 가슴을 찢는 괴로움만을 안겨주었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천지인 당시의 세상 속에서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움켜잡고 방황에 방황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삶의 마디마디에 맺힌 시퍼런 멍 자국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의 위로를 받으면서 하루하루 조금씩 평정심을 찾아가고 있었는데, 그 아픔의 덩어리가 다시 가슴을 쳐받고 올라오는 고통의 날이 또 찾아왔다.

지난 어느 여름 유별나게 무더웠던 그 해, 아들의 묘지를 이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불현 듯 아들이 보고 싶으면 찾아갔던 그 곳, 내 평생 이런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뜻하지 않게 운명처럼 닥쳐왔다.
강산은 스므 번이나 변했는데도 개장하니 아들의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아 더욱 나를 슬프게 했다. 고요히 잠을 자는 듯, 깨우면 부스스 눈을 뜨고 '아버지' 하고 부를 것만 같았다. 생시에 달라진 모습을 20년 만에 보는 것 같았다. 새 관 속에 안장한 시신을 영구차에 싣고 강원도 양구로 향하는 내내 사랑하는 내 아들이 내 옆에 앉아 있는 듯 울먹울먹하기도 했다.

신록이 우거진 도로는 차량 통행이 별로 없어서 마치 아들과 마지막 관광여행을 가는 듯한 착각이 들기까지 했다. 양구 화장장에 도착하자 마지막 모습을 다시 한번 더 보고, 그날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와 작별하듯 이별을 다시 반복해야 했다.
약 한 시간 후 나는 아들의 체온처럼 따스한 유골함을 끌어안고 영구차에 올랐다.

그날따라 해도 구름 속으로 숨어버리고, 안개 자욱한 산천초목도 내 맘을 알고 같이 울어주는 듯 세차게 바람에 흔들렸다.
5시 경에야 흑석동 성당에 도착했다. 찬송가를 들으면서 주님의 은총 속으로 들여보냈다.
평화의 쉼터에 영면하도록 놓아 주었다. 두 번이나 이별의 아픔을 묻어야 하는 내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찬미와 찬송은 우리 부자의 안식을 안겨 주는 듯 천천히 평온을 찾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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