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르기의 늪-한국전쟁 삽화(하)
이데올르기의 늪-한국전쟁 삽화(하)
  • 성광일보
  • 승인 2023.08.1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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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진태
조진태/작가

3인은 흙 묻은 군화발로 방문 앞 대청마루에 올라 서 소리를 질렀다. 세 개의 총구는 금시 불을 뿜을 듯 호롱불 켜인 방문을 향했다.
“설도훈은 꼼짝 말고 손들고 나오라! 너는 독 안에 든 쥐다. 반항하면 사살이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어  긴 담뱃대를 문체로 미

이문을 밀어 재치며 노인이 말했다.
“누구요?”
그와 동시에 3인의 총구는 열려진 방 안을 향했다. 

방 안에는 노인 내외 뿐이었다. 군인은 방바닥에 깔아놓은 이불을 흙묻은 군화발로 마구 밟으며 천장을 향해 몇 발의 총을 쏘았다. 그와 동시에 옆방으로 통하는 반 쯤 열린 장지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거기도 놀란 토끼눈만 까무락거리며 임신해 만삭이 된 설도훈의 처만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그 방에서도 천장과 벽을 향해 총을 몇발 씩 난사했다.

도대체 설도훈은 귀신이란 말인가! 분명히 설도훈을 목격하고 뒤 따라 들어왔는데도 그자는 바람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귀신도 곡할 일이었다. 장롱이 벌집되게 총을 쏘았는데도 그의 시체는 없었다. 천정으로, 방바닥으로 사라졌을리는 만무다. 결코 그날도 설도훈 체포작전은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뒷날 설도훈이 사살되고서야 밝혀진 사실은 정말 놀라웠다. 왜정시대 징병으로 끌려가다 기차에서 탈출했던 설도훈은 집으로 돌아오자 은신처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이 있었다. 소롱봉 자락에 자리잡은 집을 우측으로 한 마장가량의 거리를 두고 오랜 세월 침하 현상으로 생긴 계곡은 꽤나 깊어서 절벽이 돼 있었다. 그 절벽에서 천년 동굴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 동굴은 꽤나 깊어 설도훈의 집 뒤란까지 가 있었다,
'아, 바로 이거다!'

설도훈은 그 천재일우의 기회를 포착해 자기 집 안방의 방바닥까지 연결 통로를 판 것이었다. 이리하여 일제하의 징용을 피할 수 있었고, 이번 사건에도 탈출할 수 있었다.
그는 해방 후 월북했다가 남로당 박헌영의 특별 지시에 따라 남파돼 6·25 인민해방 전쟁에도 일조 했다. 그러나 남조선 해방 전쟁은 정전과 함께 휴전선이란 장벽은 철통같이 굳어갔다. 이로 인해 설도훈은 죽지 못해 그저 목숨만을 부지하며 야음을 틈타 이 동굴로 제집을 드나들었던 것이다. 

그런 사건으로 설도훈의 노부모는 특무대에 수시로 끌려가 심한 취조를 받고 돌아와 시름시름 않다가 내외가 함께 세상을 떴다. 설도훈의 처는 임신부였던 덕분에 한 번 불려가고는 설도훈이 나타나면 신고하라는 경고처분을 받고 풀려났지만 요시찰인물로 감시 받으며 살아갔다.

그 후 휴전이 된 후 점차 전쟁의 상처는 아물어 가면서 정치는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간혹 빨치산들이 내려와 양식을 털어갔다는 소문은 있었지만 국가의 큰 변란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더구나 좌익 세력은 날이 갈수록 자치를 감추어버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승만 정권이 이기붕에 의해 부정선거를 자행해 학생들이 4·19혁명을 일으켜 이승만을 하야시킴으로써 자유당 정권은 무너졌다. 이에 허정의 과도정부 하에 선거를 실시 윤보선이 대통령이 되고 장면이 총리가 되어 내각 책임제를 구성했지만, 정치적 혼란은 거듭되었다. 여기에다 6·25전쟁의 참혹한 상처와 민생고에 시달리는 국민들의 한숨 소리는 이 땅을 뒤흔들고 있을 때다.

이런 정치적 혼란과 국민의 대다수가 생활고에 시달리는 틈을 타 다시 좌익 세력이 알게 모르게 고개를 드는가 하면 무장공비가 바다로 육지로 침투해 오는 사건이 빈번해졌음은 물론 지하조직을 한 간첩활동이 심한 때였다.
이런 난국의 소용돌이를 바로잡고자 일어선 이가 바로 육군 소장 박정희였다. 그는 5·16군사 혁명을 일으켰고 혁명공약 중 반공을 국시로한 시급한 민생고 해결을 최우선으로 군정을 실시했다.
이 무렵 조용하던 작산 마을에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사건이 발생했다.

밤 12시가 다 된 자정 쯤이었다.
면사무소 옆에 '한일사'라는 간판을 붙인 <방첩대>에 고(故) 임장려 구장(區長)의 아들 임충호가 들어섰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이 지역 방첩대 분실장 이 중위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때 마침 희미한 전등불 밑 테이블 앞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 졸고 있던 사복차림의 이 중위가 눈을 깜박거리며 임충호를 보자 말했다.
“통금시각이 다 돼가는 데 웬일이야?”

임충호는 이 중위에게 바짝 다가 서며 주위를 한 번 휘둘러 본 다음 낮은 목소리로 속사기 듯 말했다.
“아주 중대한 일입니다.”
“ 중대한 일이라니! 뭐가···?”
“설도훈, 그자 말입니다.”
“뭐, 뭐라고! 설, 설도훈!”
이 중위는 설도훈이라는 말에 벌떡 일어서며 임충호 앞에 다가 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임충호는 이중위의 귀 가까이로 입을 갖다 대다시피 하고는 설도훈에 관한 정보를 제공했다.
“오늘 밤이 그 자의 부모 제삿날이 아닙니까.”
“그래서?”
“그래서 설도훈이 제 부모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지금 집에 와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런 걸 네가 어찌 알았단 말야?”
“그걸 설명하고 있을 때가 못 됩니다. '신출귀몰'한다는 설도훈을 체포하는 데는 촌각을 다투는 이 시점이라 서둘러 체포 작전에 들어가야 합니다. 자초지종의 설명은 다음에 드리기로 하고요.”
이 중위는 초조해 발을 구르는 임충호와는 반대로 잠시 동안 멍하게 서있었다. 

지리산 속에서 한 때 빨치산 두목으로 암약하다가 정전 후 교묘하게 월북하였다는 설도훈! 그 놈은 월북하여 남로당 당수 박헌영을 만나려 했지만 그 때는 이미 6·25 남침전쟁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숙청돼 정치범 수용소로 갔다는 정보를 들었다. 설도훈도 북한에 간 후 생사여부가 묘연하다는 정보를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설도훈이 오늘밤 그의 집에 나타났다니 도대체 믿음이 가지 않아서였다.

“자네 말이 허위 사실 이면 어떻게 되는지 일지?”
“저가 뭣 때문에 목숨 걸 일을 이 밤중에 달려와 신고하겠습니까. 빨리 서두르세요.”

이 중위는 곧 무전으로 인근에 있는 지서에 긴급 연락 해 전투경찰로 하여금 작산의 설도훈 본가를 에워싸도록 작전요청을 한 다음 곧바로 대원 2, 3명을 데리고 임충호를 앞 세워 작산 마을로 벌같이 달려갔다. 
방첩대의 이 중위 일행이 설도훈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전투경찰들이군용트럭을 마을 앞 모퉁이에 세워 놓고 소리 없이 엎드려 기면서 설도훈의 집을 에워싸고 있었다.
임충호가 이 중위에게 속사기 듯 말했다.

“절대로 생포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러다간 또 전처럼 실패합니다. 발견과 동시에 사살해야 이 작전은 성공합니다. 명심해 두세요. 꼭 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야.”
“그 놈은 죽지 않으면 바람처럼 사라질 놈이에요. 그리고 저에게도 총 한 자루와 전경 두 명만 붙여 주세요. 그 놈이 만약 도주할 경우 퇴로의 길목을 지키다가 나타나면 사살하겠습니다.”
“좋아, 좋아!”
이어 임충호가 전경 두 사람을 데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단독무장을 한 이 중위는 탄띠에서 빼어 든 권총의 방아쇠에 걸은 검지에 신경을 모았다.
이들은 군화 발소리를 죽이고 대청마루에 올라 서자말자 미닫이문을 와락 밀치며 총구를 겨누며 소리 질렀다.
“어설픈 수작 말고 손들어! 반항하면 사살이다!”

이 중위의 목소리 외는 어떤 움직임이나 소리가 없었다. 희미하게 비치는 전등 불빛 아래 추사글씨의 복사본으로 보이는 펼쳐진 병풍 앞에 제사상이 차려져 있었다.
제사상 양쪽엔 촛불이 간들거리고, 한 가운데에는 망인의 두 영정이 놓여 있는 데 제물로 차려진 제사상엔 어동육서(魚東肉西)에 조률이시(棗栗梨?)가 정갈하게 놓여 있고 차린 음식은 간소했다. 
설도훈 부부가 엎드린 곁에 대여섯 살 정도 된 사내 아이가 사과 한 쪽을 배물고 있다.
느닷없는 고함 소리에 설도훈 내외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이중위는 긴장된 눈으로 그를 응시했을 때 그는 틀림없는 설도훈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명 수배된 사진이나 뿌려진 삐라에서 너무 많이도 봐 왔기 때문이다. 

“···  ···  ···”
무거운 정적이 잠시 계속 되었다.
정적과 침묵, 그리고 공포와 불안, 긴박과 초조··· 

드디어 설도훈은 두 손을 들고 엎드렸던 자세에서 일어서며 뒷걸음질로 벽에 기대섰다. 그리고는 상체를 요지부동인 체 발가락 끝을 움직였다. 
이 중사는 그의 가슴에다 권총을 겨누었다. 그와 동시에 생포할 목적으로 왼쪽 호주머니에서 수갑을 끄집어내려는 순간! 정말 전광석화와 같이 땅(방바닥)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이 중위가 방아쇠를 거듭 당겼지만, 이미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설도훈을 맞추지는 못했다. 이 중사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 없이 닫혀버린 방바닥을 향해 권총을 난사했다. 그는 임충호의 말을 떠올리며 더욱 흥분했다. 그는 벌벌 떨고 서있는 설도훈의 처에게 총구를 돌려 방아쇠를 당겼다. 
“찰깍!?? ???!”

탄환이 떨어져 탄창에서 빈 소리가 날 때까지 방아쇠를 당겼다.
설도훈의 처는 가슴에서 핏줄기를 뿜으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대여섯 살 먹은 어린애가 이 때까지 눈알만 깜박거리며 보고 있다가 갑자기 '왕!'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시체 곁으로 달려갔다. 쓰러져 엎어진 엄마의 등을 안고 소리쳤다. 어린 것이 목구멍에서 한꺼번에 토해져 나오는 울음 소리는 넓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이 중위는 순간적으로 벌어진 사건으로 다음에 취하여야 할 행동에 대해 잠시 머뭇거렸다. 임충호의 말대로 그를 사살했어야만 했다. 그를 확인한 순간, 현상금 50만원과 그를 생포하겠다는 영웅심이 발동해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 중위는 당황했다. 설도훈이 사라진 땅 속으로 들어 가 그놈을 추적해 보려는 순간, 닫혔던 방바닥이 푹 꺼지면서 푹 솟아오르는 물체가 있었다. 바로 피투성이가 된 설도훈의 얼굴이었다.
뒤따라 임충호가 올라오고 이어 두 명의 전경도 함께 올라왔다.
설도훈의 싸늘한 시체는 세 사람에 의해 그의 처 옆에 끌어다 눕혔다.
어찌된 영문을 모른 이 중위는 당황해 임충호를 향해 다급하게 말했다.

“어찌 된 거야?”
“이 놈은 내 아버지를 총살한 원수에요.”
“ 원수?”
“그래요. 원수! 아버지를 좌익 가입을 거부한 구장(區長), 우익보수에다 백색테러 분자라는 허무맹랑한 구실로, 양식까지 탈취하고 집도 불사르고. 결국 살인까지.”
“그래서?”
“그래서 원수를 갚기 위해 10년이 넙게 절치부심하며 기회를 노렸지요. 그러다 드디어 동굴을 통한 지하통로를 교묘히 이용해 제 집을 드나든다는 사실을 안 것은 불과 두 달 전이죠. 그래서 제삿날인 오늘 밤을 기다렸죠.”
“왜 생포하지 않았나?”
“꼭 내 손으로 죽여야 했기 때문이죠, 이 중위가 죽이지 않을 거란 것도 이미 알고 있었고요”
그 이상 더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희미한 30촉 전등 아래의 제사상 양 쪽의 촛불마저 간들거리는 데, 피투성이 된 엄마의 시체를 끌어안고 울어대는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만이 애처럽게 방안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끝)

작가 조진태 약력

조진태/작가<br>
조진태/작가

- 1971년 작품집<석화>(이원수 선생추천)로 아동문학 등단
- 1976년 단편소설<雨滴>을 (月刊文學)에 발표하면서 소설가   로 작품활동.
- 수상:한국아동문학상.중앙대소설문학상.방송통신대소설     문학상과 수필문학상.국민훈장 석류장 등 수상 외 각부 장   관표창 등 다수.
- 소설집:<見習期>,<碑木>,<찬란한저녁놀>,<옥상의정원>외     다수
- 동화집:<제비와망원경>,<파란메아리>,<갯마을에뜨는해>, <날아라새들아>외 다수
- 수필집:<세월의소리 젊음의소리>,<오동잎 잎새마다 달이뜨면>, <인생은 꽃으로 향기로> 외 발표작 다수.
- 교육세계신문기자, 월간<學父母>주간,국정교과서집필위원,   <南江文學>주간, 음성문협회장, 음성신문논설위원역임.
- 현재:한국소설가협회중앙위원,한국문인협회원, 충북음성<작가원>에서 1만5천여 평의 농장을 경작하며 작품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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