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쌤의 冊世映世] 나는 아무 보상이 없어도 무언가에 미칠 수 있는가?
김쌤의 冊世映世] 나는 아무 보상이 없어도 무언가에 미칠 수 있는가?
  • 성광일보
  • 승인 2023.08.2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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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논설위원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를 보고

김정숙 논설위원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책 <데미안>에서 나오는 이 문장은 성장을 위해선 변화가 필요함을 강조하는 구절이다. 
혼자 알에서 나올 수도 있지만 그러다가 왕창 알의 껍질을 깨뜨리면 새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즐탁동시(茁啄同時)가 필요하다. 새가 밖으로 나오려고 껍질 속에서 꿈틀대며 부리로 톡톡 치면, 초조하게 예쁜 새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어미 새는 새끼 새가 알을 잘 깨고 나올 수 있도록 조금 쪼아 주어야 한다. 그럴 때 알은 진정한 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알에서 깨어났어도 아직 아기 새다. 아직 높이 날 수 없으며 날개와 몸통, 다리에 살이 붙고 근육이 붙어야 한다. 그래야 높은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으며 새로서 자유로울 수 있다. 하늘 높이 비상하여 원하는 세상과 만나려면 세상의 풍파와 맞서서 참고 견디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여야 한다. 아기 새에게도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시간이 주어진다.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는 즐탁동시와 고진감래의 사자성어를 생각게 한다. 고전 문학으로 명성을 떨쳤던 책 <호밀밭의 파수꾼>의 저자 J.D 샐린저의 전기를 영화화 했다.  
소설가를 꿈꾸던 작가 샐린저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학교도 그에게 맞지 않았고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아버지에게 볼멘소리를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인정하고 지지했던 건 그의 어머니였다. 
세상엔 자식이 하고자 하는 일에 무조건적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부모가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모도 있다. 먹고 사는 문제는 예술활동과 상극에 있다는 걸 부모들은 오래 전부터 보아 왔다. 그러나 샐린저의 어머니는 먹고사는 것과 창작활동을 흔들리는 인생의 시소 위에 올리지 않았다. 자식의 재능을 인정했기에 무조건 잘하리라는 지지밖에 없었다. 이러한 전폭적 지지에 더하여 사랑하는 여인이 글 쓰는 작가들을 좋아하고 더욱이 샐린저의 글을 훌륭하다고 칭찬까지 하니, 작가의 길을 가려는 자의 타오르는 심장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그뿐인가 창작 대학에서 만난 담당 교수는 샐린저가 알에서 깨어나도록 계속 자극을 준다. 어머니, 연인, 교수 모두에서 즐탁동시다.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할지라도 평생을 글 쓰는 데에 바칠 수 있는가?” 라는 교수의 질문은 작가 샐린저가 단편에서 장편으로 더 나아가 장편에서 평생을 글 쓰는 데 바칠 수 있도록 긴 세월의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화두였던 과제였다. 
모든 창작활동이 그렇지만 글쓰기는 어렵다. 말을 잘하는 사람도 글을 쓰라고 하면 유창한 말처럼 글이 나오기 어렵고 평소 글을 쓴다는 사람도 쓰기 위해 앉으면 주제잡기, 맥락 잡기, 논리 펼치기 등으로 고민하는 시간이 글을 쓰는 시간의 절반 이상이다. 그런 고민이 해결되었을 때 물 흐르듯 써 지는 게 글쓰기이기도 하지만 글쓰기는 미술이나 음악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도 아니어서 엉덩이를 얼마나 오랫동안 진득하게 붙이고 앉아 있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조금씩 나오기도 한다. 시간도 많이 할애해야 하고 작가만의 세계에서 상념이나 잡다한 걱정거리들이 맨탈을 흔드는 순간엔 집중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먹고 사는 것“에 대한 문제는 창작활동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가장 큰 갈등 요소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업이든 아르바이트든 기초적 생계를 해결하면서 글을 쓰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중도에 글쓰기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영화의 작가 샐린저처럼 아버지가 베이컨 왕인 집안의 아들인 경우야 창작활동의 시간이 10년이든 20년이든 평생을 바쳐도 먹고 사는 것에 대한 문제가 없었겠지만 부모나 가족의 경제적 후원이 없는 이상 창작활동과 먹고 사는 것의 문제는 인생의 흔들리는 시소위에 올려 질 수밖에 없다. 영화의 샐린저가 유복한 집안의 자녀였다는 점은 평생을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게 도와 준 기폭제였을 수도 있다. 부가 순환을 이루며 성취를 부른 경우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고진감래의 측면에선 작가 샐린저가 얼마나 오래도록 글쓰기에 전념했는지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담당 교수가 수많은 출판의 거절을 했음에도 쓰고 또 썼으며, 전쟁터에서도 작은 종이조각에 쓰면서 전쟁의 악몽과 고통을 잊으려 했고 참혹한 전쟁터에서의 트라우마로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조차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가족을 구성했을 때도 쓰는 일에만 몰두하여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였으니 아마 작가는 글쓰기에 “미쳤다"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그렇게 미쳤던 순간들의 마지막 결정체가 그 유명한 책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그러한 결정체를 이루기까지 작가의 생활은 거의 폐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폐인을 작가 자신이 응시하자 그는 자신이 왜 글쓰기로 폐인이 되어 가고 있는지를 깨닫는다. '출판'이다. 출판에 대한 압박감으로 인해 작가는 가족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도 모르고 인간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기계처럼 출판을 위한 글쓰기에 쫒기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마침내 글쓰기는 샐린저에게 종교가 되었다. 종교가 되어 버린 글쓰기가 “출판”이라는 세속의 짐을 짊어 진 순간 '글쓰기'는 쓰는 것의 목적이 아니라 출판을 위한 수단이 되어 버렸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마침내 순수의 글쓰기에 도달했을 때 그는 세상과 단절하고 글쓰기에만 몰두하면서 담당 교수의 질문에 대한 답장을 보낸다. 

“더 이상 출판을 하지 않겠습니다.”
“아무 보상이 없어도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다면 행복해 질 거 같아요. 평생을 글쓰기에 바치겠습니다.”
걸작은 이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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