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를 찾아가다(끝)
[소설] 나를 찾아가다(끝)
  • 성광일보
  • 승인 2023.08.24 16: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근당
소설가
성동문인협회 소설분과장
김근당

죽어 가는, 아니 살아나고 있는지도 모를 나무를 타 넘자 잡목들이 많지 않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하얀 물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듬성한 관목들을 헤치며 하얀 물체를 향해 나갔다. 산의 경사도 완만해져 갔다. 나무들 사이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하얀 물체! 내가 허겁지겁 산등성이로 올라갔을 때 나타난 그것은 산자락 밑으로 저만치 서있는 거대한 목련나무였다. 아침 햇빛을 받아 백옥처럼 빛나고 있는 목련꽃들!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혀 섰다. 나무의 높이는 20미터 가까이 되는 것 같았다. 그 큰 나무의 둥근 끝 부분이 숲 위로 보인 모양이었다. 나무 아래 부분의 날개를 펼친 듯 뻗어 있는 가지도 좌우를 합쳐 10미터는 넘어 보였다. 푸른 잎 하나 없이 순백의 꽃들로 가득한 목련나무는 그렇게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자리에 서 있었다. 동쪽 하늘에 떠오른 태양에서 쏟아지는 햇빛에 수없이 반짝이는 꽃들이 마치 천상의 새들이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청아한 목소리로 합창을 하는 노랫소리가 머릿속으로 파고 들었다. 나는 아득한 정신에 눈을 감았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우리는 음악 선생님의 피아노 소리에 따라 노래를 불렀었다. 커다란 강당에 남학생과 여학생이 함께였다.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준다. 아..., 
앞으로 무엇인가 되고 싶었던 때였다. 우리는 잎을 크게 벌려 노래를 불렀었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노랫소리는 열린 창문을 통해 푸른 하늘로 퍼져 올라갔었다.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산줄기가 내려간 끝으로 산을 돌아 외부로 빠져나가는 노란 모랫길이 보였다. 마을은 한적했다. 산자락 아래에 들어앉아 있는 집들은 서너 채, 그중에 산 쪽으로 떨어져 있는 슬레이트 옆의 목련나무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토록 바라던 내가 목련꽃 속에 숨어있는 것처럼, 나는 그곳에 있는 나를 찾아 잡풀이 우거진 비탈길을 뛰어 내려갔다.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이 인간을 성숙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내가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면 그러하다. 그러나 나는 내가 동경했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몰랐다. 꿈이었는지, '한선이'였는지, 목련꽃이었는지, 청아하게 부르던 우리들의 노래가 날아간 푸른 하늘이었는지, 다만 운명과 함께 다가 오는 시간, 사람이면 누구나 맞이하는 시간 속에서 미숙하든 성숙하든 하나의 사람을 만들어 놓는다는 것을 알았다. 
내 속에 그린 내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런 나를 찾아 여기까지 왔다. 이제 프랑스로 가지고 갈 짐을 싸야 한다. 나는 산속을 헤매고 있는 나를 불러들여 자리에서 일어선다.<끝>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가사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특별시 광진구 용마산로128 원방빌딩 501호(중곡동)
  • 대표전화 : 02-2294-7322
  • 팩스 : 02-2294-732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연
  • 법인명 : 성광미디어(주)
  • 제호 : 성광일보
  • 등록번호 : 서울 아 01336
  • 등록일 : 2010-09-01
  • 창간일 : 2010-10-12
  • 회장 : 조연만
  • 발행인 : 이원주
  • 자매지 : 성동신문·광진투데이·서울로컬뉴스
  • 통신판매 등록 : 제2018-서울광진-1174호
  • 계좌번호 : 우체국 : 012435-02-473036 예금주 이원주
  • 기사제보: sgilbo@naver.com
  • 성광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성광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gilbo@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