左삼右주, 공평사회를 꿈꾼다
左삼右주, 공평사회를 꿈꾼다
  • 성광일보
  • 승인 2023.09.07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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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논설위원
송란교/논설위원

필자가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산업도시 울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대여섯 명의 고객님과 저녁 식사를 할 때였다. 갑자기 업체 대표님 한 분이 ‘좌삼우주’를 외치셨다. 건배사도 아니고, 난생처음 들어보는 구호인지라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때 그 대표님은 왼손에 쌈을 준비하고 오른손에 술잔을 들라는 것이라 설명해주었다. 그날 회식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안주가 먹고 싶거나 술을 마시고 싶을 때면 너 나 없이 수시로 ‘좌삼우주’를 외쳤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더치페이(각자 내기) 보다 훨씬 더 공평한 방법인 듯하다.

직장 따라 울산으로 이사를 와서 생활하는 대다수의 타지 사람들은 이렇게 알뜰살뜰 공평한 방법으로 회식을 즐기고 있었다. 누구 하나 손해 본다는 느낌이 없으니 공평하다 할 것이다. 좌삼우주는 결국 각향각지(各鄕各地)의 사람들이 모여서 행복한 가정과 건강한 모임을 지탱하는 중요한 활력소가 되었고, 팔도사투리도 화합의 용광로 속으로 녹아내리게 하였다.

푸짐하고 넉넉하게 준비한 안주용 고기나 회를 공평하게 나누어 먹을 수 있으니 배부름 또한 비슷할 것이다. 안주 한 점, 술 한 잔 그리고 마음 한 조각이 자기 입맛에 맞게 각양각색의 채소와 함께 쌈으로 올려지면 두루두루 각자의 입맛에 잘 어울릴 것이다. 공평함에 무엇 하나 빠질 게 없고 볼멘소리는 단 한 마디도 들려오지 않는다. 출생지와 생각,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다툼이나 오해를 줄여가고 믿음을 더 강하게 하는 모티브가 바로 좌삼우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덤으로 하고 싶은 말도 한사람에게 쏠림이나 지나침이 없고, 골고루 발언 기회가 주어진다면 錦上添花인 것이다. 참석자 모두가 기분이 좋으면 그만 아닌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가 모두를 지향하는 다수의 ‘너’와 모남 없이 어우러질 때 둥글고 아름다운 ‘우리’라는 공동체가 탄생하는 것이리라. 각자 서로의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날이면 날마다 너 죽고 나 살자고 막무가내로 편 가르기와 다툼만을 일삼는 무지막지한 세력들을 보면서 달콤한 맛은 더해지고 우아한 우정은 깊어지고 쓸데없는 오해는 멀어지게 하는 좌삼우주를 세삼 곱씹어 본다.

더치페이는 자기가 주문한 음식값을 각자 결제하므로 주문한 음식의 가격에 따라 결제할 금액이 모두 다르다. 그러나 좌삼우주는 참석한 사람들이 전체 비용을 모두 공평하게 나누어 분담한다. 더치페이와 좌삼우주는 그런 점에서 사뭇 다른 듯하다.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월급을 받아가며 생활하는 평범한 급여생활자, 한자리에 모여서 식사를 할 때면 어느 한 사람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고 공평 분담을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신의 계시를 듣고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맛있는 말보다는 헐뜯고 비난하고 조롱하는 말들을 쏟아낸다면, 행복한 하루인가 불행한 하루인가. 쓰레기 같은 천한 인연과 현금 같은 귀한 인연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너 한 입 나 한 입 우리 한 입은 한 팀을 이루고 한 가족으로 이어지는 소중한 인연일 것인데, 왜 이리 가르고 내팽개치러 아등바등 인가.

사자의 갈기를 갈기갈기 찢어 놓을 용기 있는 자 누구인가. 내 자식이 잘못해서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어도 내 자식 나무랄 생각은 하지 않고 되려 꾸중한 선생님을 혼내려 드는 무모한 사람들, 그들은 정말 사자와 맞서본 적이 있을까? 어린 양만을 골라 공격하는 하이에나가 아닌가. 그들의 부모는 누구인가? 누가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가? 가르친 게 아니고 저 혼자 컸다고 우기려 들지는 말자. 혼자 쓰는 굽은 잣대로 대다수가 사용하는 곧은 잣대를 어찌 재단(裁斷)하려 한단 말인가.

내가 행복하지 않다고 모두가 불행한 것은 아니다. 내가 불행하지 않다고 모두가 행복한 것 또한 아니다. 누구나 행복을 원하지만, 아무나 행복할 수는 없다. 각자가 추구하는 행복은 사람마다 다르고, 행복을 만들어 가는 여정 자체도 모두 다르다. 그렇지만 저마다 만들어 가는 행복은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니 공동체는 구성원 각자의 재능과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져야 하고, 그들의 사회적 역할도 공정하게 인정해주어야 한다. 따뜻한 마음과 바른 뜻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이 정당하고 공평한 대우를 받는 그런 사회여야 한다.

‘나는 버려도 되는데 너는 버리면 안 된다’는 이상한 논법은 이제 버려야 할 유물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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