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달빛 재판(1)
[소설] 달빛 재판(1)
  • 성광일보
  • 승인 2023.09.2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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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당
소설가
성동문인협회 소설분과장
김근당

“모두 일어서십시오.”
정리의 말에 사람들이 모두 일어선다. 방청석 가득 차있는 사람들이다. 달빛 재판의 선고에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사건이다. 공판에서 격렬한 논쟁을 벌였었고 각종 신문에도 크게 보도되었었다. 최정 판사는 방청석을 둘러본 후 자리에 앉는다. 어느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피고인이나 고소인이 상고할지라도 그렇게 판결이 날) 선고를 해야 한다. 특히 고향 마을에서 고향 사람들이 일으킨 사건이다.

“모두 자리에 앉으십시오.”
사람들이 의자를 끌어당겨 앉는 소리가 한참이나 이어진다. 한낮인데도 천장의 형광등 불빛이 법정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방청석이 눈에 익으며 사람들의 얼굴도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 한다. 양복 속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사람들에 한복을 차려입은 여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방이나 허술한 잠바 차림이다. 특히나 얼굴이 검게 그을린 시골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왼쪽과 오른쪽의 두 패로 갈라져 있다. 왼쪽은 천 읍장 댁 할머니를 중심으로 정장을 한 천장수 아버지와 한복을 곱게 입은 어머니를 비롯해 멀끔한 사람들이 앉아 있다. 천장수 할머니 옆에 붙어 앉아 있는 어머니도 보인다. 최정 판사는 어머니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얼굴을 돌린다. 어머니의 부질없는 당부가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얘야, 어려울 때 입은 은혜를 저버리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어떻게 하든 그 댁을 도와드려야 한다. 네가 학교에 다닐 때 얼마나 도와주었느냐.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시골집에 갈 때마다 거듭 당부하곤 했었다. 최정 판사는 그런 어머니에게 그만 좀 하시라고 역정을 내기도 했었다. 마음이 무겁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굽히지 않았다. 집안을 이어갈 남자라고는 장수 하나라고, 읍사무소에 다니면서 집안일도 잘하는 아들이 되었다고, 그런 장수가 절대로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고 마나님이 누누이 말했다는 것이다.
고소인이자 증인인 갯말댁도 시골 사람들 가운데 앉아 있다. 가깝지 않은 시골인데 많은 사람들이 와있다. 아마도 마을에서 버스를 대절한 모양이다. 갯말댁은 아직도 달빛에 붙잡혀 있는 듯 몽롱한 얼굴이다. 꿈을 찾아가다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녀다. 그만큼 그녀는 절실했고 증언 또한 그들이 속삭이던 말까지 자세하게 말했었다.
피고인 천장수는 호송 경찰과 함께 앞자리에 앉아 있다. 연두색 미결수의 옷을 입고 있는 피고인 이지만 재판에는 관심이 없는 듯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달빛 속으로 숨어든 그를 정확하게 집어내지 못했다.

“2019 고단 1437 천장수 피고!”
 최정 판사가 마음을 다잡고 피고인을 부른다. 천장수가 깜짝 놀란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큰 신장에 다부진 몸매다.

“피고인석으로 나오세요.”
자리에 앉은 천장수의 눈에 힘이 잔뜩 들어 있다. 그 눈빛에 '지루한 싸움은 이제 끝났다. 너는 나를 풀어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하는 생각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최정 판사는 얼굴을 돌려 선고문을 확인 한다. 형사재판은 검사와 변호사의 싸움이다. 그 결과가 선고장에 들어 있다.

“피의자 이상호는 앞으로 나오세요.”
최정 판사가 범행에 참여했던 이상호를 부른다. 방청석 가운데에 앉아 있던 이상호가 걸어 나와 천장수 옆에 앉는다. 검사가 두 사람 모두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었지만 이상호는 기각되었다. 현직 조교수고 도굴의 단서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두 사람의 얼굴이 대조적이다. 미결수 감방에 있어서 그런지 전에 보지 못했던 검은 수염이 거칠게 돋아 있는 천장수다. 이상호는 얼굴이 말끔하다.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 보며 알 수 없는 눈빛을 보낸다. 잠시 잠깐, 무슨 신호를 보냈는지 알 수 없다.

수감되지 않은 이상호다. 감쪽같이 사라진 고 박사라는 사람과 연락이 닿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마한 시대의 고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도굴 했다는 고분은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마한 시대는 철기문화 시대 이전의 청동기문화시대였다고, 지배층의 고분이 있다 해도 금장식품들이 들어 있다는 것은 역사학계나 고고학계에서도 믿고 있지 않다고, 그런 마한 시대의 고분군에서 금장식품들을 도굴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강변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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