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달빛 재판(3)
[소설] 달빛 재판(3)
  • 성광일보
  • 승인 2023.10.2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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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당
소설가
성동문인협회 소설분과장
김근당
소설가

재판정은 여름 마당에 물을 뿌린 듯 조용하다. 판사의 모든 행동을 빨아들일 듯이 보고 있는 눈빛들이다. 천장수는 꿍꿍이 속이 잔뜩 들어 있는 모습으로 앉아 있다. 갯말댁은 머리를 숙이고 있다. 마치 자신이 죄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만큼 두 사람의 생각은 서로 다를 것이다. 공판 과정에서도 이리저리 얽힌 인연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었다. 그 결과가 여기 선고문에 들어 있다.
첫머리에 '달빛 사건을 판결합니다. 달빛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달빛 속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고자 합니다.' 문장이 이어져 있다. 그 밑으로 검사와 피고인 그리고 변호사와 증인 사이의 설전에서 얻어 낸 결과물이 나열되어 있다. 

최정 판사는 머리를 들어 갯말댁을 다시 바라본다. 진정성을 확인해보고 싶어서 이다. 여전히 달빛에 젖어 있는 모습이다. 그날의 상황을 어젯밤에 본 듯이 증언했던 갯말댁 이다. 시골 여인이 꾸며 내어 말하기 어려운 진술이었다.

“밤 열두 시가 넘은 지경이었습니다, 남편과 제가 달빛에 취해 있을 때 어디선가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무슨 소리인지 몰랐지만 남편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모양이었습니다. 남편이 정자 난간 밑으로 몸을 숨기며 저를 끌어 내렸습니다. 

말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습니다. '히히히 횡재야 횡재, 이런 횡재가....' '쉿, 입 닫아요. 밤말은 새가 듣는다고 합니다.' '이 밤중에 누가 있다고 그럽니까' '어쨌든 조심하자 장수야,'하는 말소리였습니다. 제가 똑똑히 들었습니다. 

세 사람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들이 다가오는 것도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이상호씨 말이 틀리지 않아요,' '저를 믿은 고박사님도 이쪽으로 일가견이 있지 않습니까,' '암 그렇지, 내가 이 부분에 몸을 담은 것이 얼만데,'하고 이상호와 고 박사라는 사람이 말하고 천장수가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이곳 마한 지역 고분에 금장식품이 매장되어 있다는 것은 저 외에는 아무도 모르지요, 그곳은 비록 봉분이 모두 훼손되었지만 읍차(邑借: 작은 집단의 지배자)의 고분입니다. 
고고학회 그 누구도 모르지요, 하하,' 이상호가 으쓱거렸고 천장수가 '네가 고고학을 연구한 보람이 있구나,'하며 추켜세워 줬습니다. '그보다 고 박사님이 보물 위치를 정확하게 집어내어 도굴이 쉬웠지,'이상호가 말했습니다, '올해 지갑 사정이 두둑해지겠는걸,'고 박사가 말했고 이상호가 대꾸했습니다, '물론입니다, 이 순금 유물들이 얼맙니까, 어깨가 아플 지경입니다.' 그들이 말을 나누며 정자 가까이 오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남편이 '저놈들이 도굴꾼을 끌어들여 천하에 몹쓸 짓을....'하고 튀어 나갔습니다. 

제 남편은 아시다시피 수사 경찰 이었습니다.남편이 이상호가 메고 있는 불룩한 배낭을 잡아채려 했습니다, 그러자 천장수가 들고 있던 것들을 팽개치고 제 남편에게 덤벼들었고, 두 사람은 산 아래로 굴렀습니다, 제가 뛰어나가니 고 박사라는 사람이 삽 같은 것을 급히 주워 들고 두 사람은 산 위쪽으로 줄행랑을 쳤습니다. 저는 남편이 걱정되어 산 아래로 내려가 보았습니다, 남편은 널부러져 있고 천장수가 나무들 사이로 도망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방청석의 많은 사람들이 놀라 웅성거렸다, '그러면 그렇지, 없는 일을 어떻게 저렇게 꾸며 낼 수 있겠어,' 하기도 하고, '어쩌면 저렇게 다 기억할 수 있지?' 감탄하기도 하고, '그때야 최고도로 정신 집중을 했겠지,'하는 말소리들이었다, 그러자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반대 질문을 신청했었다. 
“증인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야밤중에 증인 부부는 왜 그곳에 갔습니까”
“.....”
갯말댁은 머리를 숙이고 대답하지 않았다.
“증인 이말순은 한밤중에 왜 남편과 함께 그곳에 갔습니까?”
변호사가 갯말댁 앞으로 다가서며 다시 물었다.
“.....”
갯말댁은 여전히 무응답이었다. 처정 판사가 제지해 주었다.
“변호사는 사건과 거리가 있는 질문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다시 묻겠습니다. 아무리 달밤이라지만 멀리서 하는 말소리를 어떻게그렇게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습니까? 증인이 꾸며 낸 말이 아닙니까?”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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