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제 자발적 대상일까?
우리는 이제 자발적 대상일까?
  • 성광일보
  • 승인 2023.11.08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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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발적 대상일까? -책 『1984』를 읽고
김정숙 논설위원

전체주의 국가의 통제기구로 책 『1984』의 빅 브라더가 있었다면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빅 브라더는 거듭나고 있는지 모른다. SNS가 판을 치고 있는 세상에서 전체주의 국가의 텔레 스크린처럼 우리는 충분히 휴대폰과 컴퓨터에 나의 정보 혹은 당신의 정보를 스크린하고 있다. 그래서 ‘당신을 알고 싶다’고 마음만 먹으면 당신이 무얼 좋아하는지, 그리고 환경은 어떠한지도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다.

한 종교단체에서 청소년을 상담한다는 분이 아이들의 SNS 계정에 접근해 보면 그 아이의 환경과 정서를 모두 살펴볼 수 있다고 했다. 하루 60명 정도의 아이들을 SNS에서 관찰하고 상담을 하면 ‘귀신같이 알아맞히는’ 자신의 능력에 아이들이 화들짝 놀라니, SNS는 자신이 아이들을 상담하는 데 좋은 매체가 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왜 책 『1984』의 ‘빅 브라더’ 생각이 났을까? 그건 아마도 책 『1984』에서의 전체주의 국가가 보이지 않는 허상의 빅 브라더로 국가체제를 유지하려 했던 목적과 SNS에 스크린 된 정보를 상담에 이용하는 것은 체제만 달랐지, ‘감시당한다’는 느낌은 동일해서였던 것 같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는 일부러 감시하지 않아도 저절로 감시하거나 감시당하는 일들이 수두룩하다. 도로에 달리는 자동차 블랙박스가 나를 찍고 있고 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전봇대 위에 달린 CCTV가 내 뒤통수를 찍었다. 음식점에 들어서면 ‘밥 손님’으로 나를 찍었고 커피 가게에 들어서면 ‘아메리카노 고객’으로 나를 찍었다. 셀카를 찍는 척 셔터를 누른 스마트폰이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의 허벅지를 찍었고, 지하철 개찰구를 나온 나를 3번 출구 에스컬레이터 앞 카메라가 찍었다. 그리고 나도 자동차 블랙박스로 수없이 많은 누군가를 찍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나와 당신은 자발적 감시대상일까? 비 자발적 감시대상일까?

우리는 이제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찍고 찍히는 세상에서 서로를 감시하기도, 감시당하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망원경으로 앞 건물 701호 인물을 탐색하던 영화 속 장면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엊그제 마트에서 포인트를 사용하려면 신분증을 제시하라던 점원의 말에 핏발 선 아는 체로 ‘개인 신용정보’ 어쩌구저쩌구를 거론하지 않아도 말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아니 어떻게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이런 환경이 도래할 것을 용인했던 것일까?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은 이렇게 변해버린 것일까? 어느 전봇대 CCTV에서 내 튀통수가 찍혔을까? 나의 SNS를 스쳐 지나 간 사람들은 나와 어떤 마음으로 만날까?

지하철 개찰구에 카드를 대자 신호음이 울렸다.
삑 브라더!
그리고 찰칵!
2023년 11월 8일 09시 27분, 강남역 3번 출구에서 감색 코트를 입은 키 156센티미터 가량의 여인이 나욌다. 또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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