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달빛 재판(7)
[소설] 달빛 재판(7)
  • 성광일보
  • 승인 2024.01.0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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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당
소설가
성동문인협회 소설분과장
김근당 소설가

최정 판사는 정신을 집중한다. '아마도 당신의 눈에 보였다면 그것은 우리 달빛의 신비로운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는 신비로운 신기루를 보여 주기도 하니 어쩌면 당신의 예감이 우리와 통했을지도 모릅니다.' 머릿속에서 달빛이 속삭이는 것 같다. 인간과 자연이 서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탐문에 응해 준 달빛이 고마웠다.

방청석의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뜸을 들이고 있는 판사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특히나 갯말댁 주변에 앉아 있는 시골 사람들이 안절부절못한다. 최정 판사는 정신을 가다듬는다. 이제 판결문을 읽어야 한다. 세상을 신비롭게 보여주는 달빛과 예감이 통했었다. '우리는 그날 당신에게 다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결정한대로 선고하십시오.' 달빛이 말해주는 것 같다. 최정 판사가 선고문을 일기 시작한다.
“달빛 사건을 판결합니다. 달빛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달빛 속에 들어 있는 진실을 밝혀 내고자 합니다.”

방청석 사람들이 판사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으냐는 듯이 서로 의아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본 사건은 검찰의 공소장에 도굴당한 마한 시대의 고분과 도굴했다는 금장식품 그리고 증인이 고 박사라 칭했던 도굴범을 찾아내지 못한 점으로 미루어 증거 부족인 미제(未濟)사건입니다.”
방청석 오른쪽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혼란이 일어난다. 누군가 연신 토악질을 하고 있다. 입에서 토하는 것이 나오지는 않는다. 옆에 있는 여자들이 갯말댁을 부축해 급히 방청석 밖으로 나간다. '헛구역질하는 것을 보니 임신인가 보네.' 여자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최정 판사는 공판정에서 갯말댁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정말로 그랬다고.....? 최정 판사는 갯말댁의 삶에 대한 욕망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조용히 조용히 해주십시오.”

정리가 사람들을 진정시킨다. 최정 판사는 방청석이 조용해지자 다시 판결문을 읽기 시작한다. 
“그러나 도굴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곡괭이가 다툼이 있던 현장에서 발견되었고, 그 자루에서 피고인 천장수와 피의자 이상호의 지문이 동시에 검출되었습니다. 산에서 해송을 캐어 피의자 이상호의 정원에 심었다는 것도 검찰의 현장 조사 결과 사실과 다르며, 밤의 차가운 공기 밀도를 참작하면 증인의 증언 또한 형사소송법 제3078조 2항의 자유로운 증명에 따른 증거 능력이 있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러므로 현직 경찰인 김정수의 예감은 신빙성이 있고, 뛰어나가 피의자 이상호를 덮친 행위 또한 확실한 판단의 소치로 보입니다. 또한 피고인 천장수와 이상호가 함께 읍내에서 술을 먹고 오던 중에 달빛이 좋아 산을 산책했다는 진술도 검찰의 조사 결과 근거가 부족합니다. 거기에 도굴범 고 박사도 검찰의 공소장에 적시한 대로 실체가 분명하고, 그리고.....”

 방청석 출입문 쪽이 시끄럽다. 사람들이 일제히 그쪽을 바라본다. 갯말댁과 여자들이 다시 들어오려는 모양이다. 정리가 저지하고 있다.
“들어오도록 해주세요.”

최정 판사가 큰 소리로 말하자 정리가 길을 터준다. 갯말댁이 핏기 없는 얼굴로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최정 판사가 선고문을 다시 읽어 나간다.
“동촌마을은 마한 시대의 유적지로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읍차(邑借) 등의 고분이 있을 것이고 동촌마을이 고향인 고고학자 이상호도 그곳 고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거기다 달빛 속에 벌어졌던 다툼 속에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 있으므로,”

최정 판사는 잠시 읽기를 중지한다. 위의 증거들이 충분한지 생각해 본다. 판결을 미룰 수도 있다. 언뜻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어느 쪽이 더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인간의 본성을 캐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인간도 달빛인 우리와 같이 자연의 본성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달빛을 탐문했을 때의 기억이다. 최정 판사는 피고인 천장수와 피의자 이상호를 바라본다. 두 사람이 마음을 졸이는 듯 눈길을 주고받고 있다. '판사의 양심에 흠결이 없다면 그대로 판결하세요.' 머릿속에서 달빛이 속삭이고 있다. 최정 판사는 마음을 정하고 선고문을 읽어 나간다.

“본 판사는 피의자 이상호에게 고고학자의 연구와 성과를 이용하여 발굴되지 않은 고분을 도굴한 죄로 문화재보호법 제92조에 의거 5년의 유기징역을 선고하고 피고인 천장수에게는 문하재보호법 제92조에 형법 제 250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병과하여 유기징역 8년을 선고한다.”
최정 판사가 선고를 마치자 방청석 왼쪽에서 고성이 터진다.
“저년! 저년! 저 배은망덕한 년!”  

천 읍장 댁 할머니다. 허우적거리며 소리치더니 그 자리에 쓰러져 버둥거린다. 천장수 아버지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할머니를 안아 일으키고 법정에 있던 호송 경찰이 달려간다. 그들 옆에 있던 최정 판사의 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른다.
최정 판사는 아픈 가슴을 안고 법정을 나간다. 도굴된 고분이 밝혀져 고향에 새로운 역사가 정립되고 새 생명이 태어나 새로운 세상을 열기를 바라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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