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종이상자 리모컨(1)
[소설] 종이상자 리모컨(1)
  • 성광일보
  • 승인 2024.01.11 16: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 정
소설가
성동문인협회 회원
윤 정 / 소설가

아빠가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갔습니다. 나 보고는 문을 살살 닫으라고 말씀 하시면서 아빠는 깜짝 놀랄 만큼 크게 소리 내어 문을 닫고 나갔습니다.
현관에는 흐트러진 내 운동화와 엄마의 낡은 구두만 오도카니 남아있었습니다. 내 운동화는 아빠를 따라 나가고 싶었는지 코를 문밖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엄마 구두는 난 모르겠다고 하는 듯 이쪽저쪽 멀찍이 떨어져 내팽겨져 있었습니다. 늘 세 신발이 옹기종기 정답게 모여 있었는데 오늘도 두 컬레의 신발만 쓸쓸하게 남아 있습니다. 물끄러미 아빠의 뒷모습을 따라가던 엄마도 붉어진 얼굴로 다다다다 내달리더니 안방 문을 꽝 닫고 들어갔습니다.

나 보고는 아래층에 울린다고 살살 걷고 조용히 문을 닫고 다녀야 착한 어린이라고 하면서 엄마는 뛰다시피 걷고 문을 꽝 닫았습니다. 나만 거실에 혼자 남았습니다. 
고양이가 내 옷을 깔고 앉아 졸고 있으니 더욱 쓸쓸합니다. 나도 내 방으로 들어가야겠습니다. 문은 정말로 조용히 닫았습니다. 나마저 크게 닫으면 우리 식구는 모두 나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어른들이 때가 묻어서 어린이 보다 착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때가 묻은 아빠와 엄마 대신에 나라도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엄마의 방문은 5시가 넘도록 열리지 않았습니다. 벌써 세 시간이 넘었습니다. 화장실이 안방에도 있기 때문에 나올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문에다 귀를 대보니 훌쩍이는 소리와 코를 푸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들어가서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엄마가 부끄러워할까봐 참았습니다. 내가 울 때도 누가 보면 창피하기 때문입니다. 저녁밥을 할 때가 지났는데도 방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지 않아 책상 서랍을 열었습니다. 내 생일 때 먹은 케이크 상자가 예뻐서 버리지 않고 뚜껑을 사각형으로 오려 놓았습니다.  

파란색 선이 위에서 아래로 그려져 있고 분홍색 꽃잎이 중강 중간에 피어있는 모양입니다. 무척 예쁜 무늬라 버리기가 아까웠습니다. 상자 모양으로 접기 위해 가위로 잘랐습니다. 분홍색 꽃잎을 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잘라서 풀을 붙이니 예쁜 직사각형 상자가 되었습니다. 크기는 엄마의 핸드폰보다 조금 작고 내 손바닥보다는 조금 큽니다. 꽃잎 5개에 초록 색종이로 잎을 만들어 붙이니 종이꽃이 진짜 꽃처럼 푸릇푸릇해졌습니다. 엄마는 무척 꽃을 좋아합니다. 반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가서도 꽃집 앞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참을 서서 이것저것 물어봅니다.

결국은 작은 화분 하나를 사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꽃집 아줌마와 친하니까 괜찮은지 몰라도 나는 신경이 쓰입니다. 꽃을 관리해야 하고 손님이 오면 맞이해야 하는데 엄마가 자꾸 물어보면 귀찮을 것 같습니다. 엄마도 내가 무얼 물어보면 뭘 자꾸 물어 보냐고 짜증을 낸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도 조그만 화분 하나를 사는 것 보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베란다며 주방 창가에는 이름도 모르는 꽃과 잎사귀가 풍성한 식물들이 많습니다. 모두 엄마가 하나씩 모으고 심은 것이랍니다. 그중에 하나는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고구마입니다. 엄마가 군고구마를 해주겠다고 사서 남은 한 개를 물 컵에 꽂아 놓았습니다. 고구마를 왜 물에 담가 놓느냐고 물었더니 좀 있으면 뿌리가 나고 잎이 날 것이랍니다. 흙이 아니라 물에 심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아침이면 쪼르르 달려가 한참을 바라봐도 뿌리가 안 나옵니다. 며칠이 지나니 할아버지 수염처럼 하얀 뿌리가 조금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며칠을 기다리니 붉고도 파릇한 잎이 쫑긋 귀를 세우듯 올라 왔습니다.  

그러더니 그 잎은 매일매일 빠르게 자라서 줄기가 아래로 길게 뻗어 옆의 화분까지 침범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줄기가 또 생기고 그 줄기는 한없이 길게 뻗어 갔습니다. 나도 저 고구마처럼 빨리 자라서 엄마의 어려운 이야기도 잘 들어 주고 싶습니다. 엄마도 고구마를 가꾸듯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겁니다. 꽃잎을 달고 꽃 가운데에는 노란 색종이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붙였습니다. 이렇게 정성 들여 무엇을 만든 적은 별로 없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찰흙으로 고양이를 잘 만든다고 칭찬을 해줬을 때 빼고, 엄마는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풀고 난 후 포장지나 종이 가방을 버리지 않습니다. 다용도실 선반에 놓아두고 선물을 포장할 때 쓰거나 종이가방은 모아서 상가 옷 수선 집 아저씨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손님들이 팔에 걸치고 온 옷을 수선하고 찾아갈 때 담아 주는 용도로 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엄마는 나보다 착하고 아저씨보다도 착합니다. 그래서 나도 포장지와 종이 가방은 함부로 버리지 않았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특별시 광진구 용마산로128 원방빌딩 501호(중곡동)
  • 대표전화 : 02-2294-7322
  • 팩스 : 02-2294-732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연
  • 법인명 : 성광미디어(주)
  • 제호 : 성광일보
  • 등록번호 : 서울 아 01336
  • 등록일 : 2010-09-01
  • 창간일 : 2010-10-12
  • 회장 : 조연만
  • 발행인 : 이원주
  • 자매지 : 성동신문·광진투데이·서울로컬뉴스
  • 통신판매 등록 : 제2018-서울광진-1174호
  • 계좌번호 : 우체국 : 012435-02-473036 예금주 이원주
  • 기사제보: sgilbo@naver.com
  • 성광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성광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gilbo@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