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종이상자 리모컨(2)
[소설] 종이상자 리모컨(2)
  • 성광일보
  • 승인 2024.01.2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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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
소설가
성동문인협회 회원
윤정 소설가

목요일마다 분리수거 하는 날에는 버려진 폐휴지 더미에서 깨끗하고 예쁜 종이가방을 주워 와서 어마가 내 볼을 살짝 꼬집어 주었습니다.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엄마는 이제 종이 가방이 많으니 그렇게까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대신 집에 있는 포장지와 종이 가방은 얼마든지 가지고 놀아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엄마는 우유 상자도 버리지 않고 깨끗이 씻어서 말린 다음에 포장지와 색종이를 붙여서 예쁜 연필꽂이와 칸막이 상자를 만들었습니다. 

화장대 책상 위에는 엄마가 우유 상자로 만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만들어서 내가 태어나면 보여 주겠다고 모아 놓으셨답니다. 
내가 6살이 되어 엄마의 흉내를 내어 만들었지만 엄마의 솜씨는 못 따라 갑니다. 

이제 종이 상자가 완성되었습니다. 꽃잎 위 1번부터 5번까지 번호를 쓰고 꾹 눌러 보며 벨 소리를 내 보았습니다. 딩동댕, 띵동, 삑.... 스스로 만든 벨 소리가 재미있어 혼자 쿡쿡 웃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웃을 때가 아닙니다. 엄마는 슬퍼서 울고 있는데 나 혼자 웃으면 엄마가 서운해 할 것입니다. 안방으로 가서 살짝 문을 열었습니다. 엄마는 휴지통을 가운데 두고 방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눈물은 보이지 않았는데 눈이 붓고 얼굴은 붉었습니다.

“민희야, 배고프지?”
“아니요. 엄마 이제 괜찮아요?”
“응, 엄마가 조금 슬퍼서 울었어,”
“아빠가 엄마를 슬프게 했지요? 아빠가 미워서 그렇지요?”
“아니야, 내가 미워서 그래. 근데 그거 뭐니?”

엄마가 자신을 미워한다는 말이 이해가 안 됐지만 엄마가 종이 상자를 궁금해 했기에 엄마에게 상자를 주었습니다.
 “번호를 하나씩 눌러 보세요.”
 “응?”
 “엄마가 좋아하는 숫자부터 눌러 보세요.”
 “그럼 5번”

엄마가 5번을 누르자 아는 한손에 입을 대고 도날드덕처럼 오리 소리를 냈습니다.  “푸륵푸륵, 꽉꽉꽉, 푸륵푸륵, 꽉꽉꽉”
 “엄마, 재밌지, 재밌지?”
 “정말 오리 울음소리와 똑같구나.”

엄마는 크게 웃지는 않았지만 울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엄마, 하나 더 눌러 보세요.”
 “이번엔 3번.”

나는 언젠가 텔레비전 광고에서 본 아저씨가 춘 춤을 추었습니다. 찬구들은 그 아저씨와 똑같이 춘다고 말합니다. 내가 누구를 닮아서 그런지 춤은 잘 춘다고 아빠가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아빠는 그러면서 얼마나 크게 웃는지 모릅니다. 정말 잘 춰서 웃는 것이겠지요. 엄마는 이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습니다. 엄마가 부은 눈이 안 보이도록 웃으며 부끄럽긴 해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엄마, 5번까지 인데 한 번만 더 눌러 보게요.”
 “힘들겠다. 그만해.”
 “난 괜찮은데, 엄마 싫어요?”
 “아니야, 1번.”
 “이번에 노래가 당첨되셨습니다!”

나는 장난감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엄마가 늘 나를 재우면서 부르던 노래입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들에는 반짝이는 금보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이 노래를 엄마가 불러 주면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잠이 스르륵 와서 잡은 엄마 손을 놓았습니다. 
이 노래가 끝나자 엄마는 갑자기 휴지를 찾습니다. 옆에 있는 휴지상자에서 휴지를 뽑아 주니 엄마는 눈물과 콧물을 닦습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엄마의 마음을 위로해 주려고 했는데 엄마를 울리고 말았습니다. 
차라리 '반짝반짝 작은 별'을 노래할 것을 그랬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배운 '작은 별'도 엄마와 같이 부르던 노래인데 곡을 잘못 골랐나 봅니다. 내가 울상을 짓고 있으니 엄마는 가만히 내 손을 잡아 무릎에 앉힙니다.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꼭 안아주었습니다. 배가 많이 고프겠다고 하면서 주방으로 나가 내가 좋아하는 오므라이스를 해주셨습니다. 

엄마는 나만 주고 소화가 안 된다며 저녁밥을 안 드셨습니다. 나도 전에 울고 난 다음에는 밥 먹기가 싫었기 때문에 엄마를 이해했습니다. 엄마가 해주는 오므라이스는 아빠가 해주는 김치볶음밥보다 맛있습니다. 엄마가 없을 때 아빠가 해주는 김치볶음밥은 매워서 싫습니다. 엄마는 김치를 물에 씻어서 해주는데 아빠는 매운 것도 먹어야 한다며 그대로 해주기 때문에 말을 해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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