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거지가 이 잡는 날
[수필] 거지가 이 잡는 날
  • 성광일보
  • 승인 2024.01.2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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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용
시인·수필가
성동문인협회 이사
최학용시인·수필가
최학용 시인·수필가

오늘 같은 날은 거지가 이 잡는 날이다. 우리 할머니께서는 추운 겨울날 따듯한 햇볕이 비치는 날을 이렇게 부르셨다. 눈 오는 날은 추위 중에도 포근하다는 뜻일 거다. 날이 풀리니 거지들이 웃통을 벗고 양지쪽에서 이를 잡을 정도의 추위는 참는다는 뜻이리라. 내 고향 평택 집에는 바깥 넓은 마당 한쪽에 멍석을 돌돌 말아 쌓아두는 곳을 '멍석 가리'라 했다. 어른애들 구별 없이 모여드는 양지바른 넓은 마당이다. 한쪽에선 여자 친구들이 모여 공기놀이 고무줄놀이를 했고, 동네 언니들에게 뜨개질도 배우던 곳이다. 나는 증조할아버지 할머니 등에 업혀서 사랑채로 나가 함께 자던 방 창을 열면 바로 멍석가리가 보였다.

어느 늦은 여름밤 보리 영 글 때라 기억된다. 바로 내가 증조할머니 할아버지와 자는 방 창문이 환했다. 바로 마당 건너에 자리한 우리 정미소에 불이 났다. 그때 그 놀램이란 지금도 잊지 못하는 큰 화재였었다. 화재로 인한 직원의 인사 사고까지 겹쳐 마음고생 많으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얼굴이 몇 십 년이 지난 오늘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많은 농토에, 염전, 정미소, 양조장, 서울까지 운행하던 버스도, 여러 대 가지고 계셨으니 늘 분주하셨다. 그때 동네청년들은 버스 기사로 조수나 차장으로 일했었다. 해마다 가을이면 차를 마당에 나란히 세워놓고 시루떡을 시루 째 놓고 옆에는 돼지머리 고여 놓고 고사를 지내는 일도 일 년 중 큰 행사였고, 동네 구경거리였었다. 동네 집집마다 떡돌리던 일도 재미를 더 했던 추억이다. 

아버지께서 퇴근하시면 어머니가 받아 든 아버지 양복 주머니에선 늘 돈다발이 뭉치로 나왔다. 동네서 우리 아버지는 '걸음 걸을 때마다 돈이 쏟아지는 사람'이라며 동네 부자로 통했다. 친구들은 검정고무신에 바지저고리가 통학복이었을 때다. 우리 형제들만 청바지에 스웨터를 입었었다. 서울에서도 종로 1가에 오직 하나였던 화신백화점은 아버지와 우리 칠 남매가 옷 사러 다니던 유일한 최초의 백화점으로 기억된다. 어려서의 호사(?)가 지금까지 이어짐에 부모님께 감사할 일이다. 

아침에 딴 참외를 우리 버스에 실어 보내셨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배려로 신선한 참외 수박도 당일 먹는 호사를 누렸었다. 호강하던 시절 아직 철이 덜 난 탓일까? 새벽 3시 잠에서 깨어 밖에 나가 눈사람을 만든 철부지였던 자신이 부끄럽다. 하얀 눈은 밟기조차 아까울 정도였는데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던 그때 그 기분은 지금 무어라 표현하기조차 힘들다.

모든 이들의 마음도 근심 걱정 없이 눈처럼 깨끗하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어지러운 세상! 우리의 현 정세가 안정되기를 비는 마음이다. 집에서 가까운 정원에 이르면 거대한 수령 400년 되었다는 거대한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나이도 잊은 채 당당히 서 있다. 여기만 서면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짐은 자연의 신비라 여겨진다. 해마다 이 은행나무 아래서 여러 가지 주민들 행사가 열린다. 글짓기, 그림그리기 등의 행사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이곳에서 자연을 접할 수 있음을 축하해주고 싶다. 맘껏 자연을 누리라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오늘도 잠 못 이룬 하루였지만 자연에 취하여 밝은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자신이 기특하다. 자연이 선사하는 선물에 감사할 뿐이다. 은행나무의 연륜을 생각하면 인간의 짧고도 유한한 인생을 깊이 생각하게 된다. 깨끗한 세상! 지구상의 모든 이들의 마음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도 벌써 80년을 넘게 살았으니 머릿속엔 이런저런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내일을 맞는 자세는 어떻게 해야 하나? 모든 일에 있는 힘을 다해 감사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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