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傲慢)한 겸손(謙遜), 비굴(卑屈)한 오만
오만(傲慢)한 겸손(謙遜), 비굴(卑屈)한 오만
  • 송란교 기자
  • 승인 2024.01.28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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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 논설위원
송란교 논설위원

겸손의 그릇은 눈에 잘 보이지 않아도 담아내는 양은 무한대다. 오만의 그릇은 태평양 바다만큼 커 보여도 쓸만한 것 한 톨도 담아내지 못한다. 첫사랑과 짝사랑의 거리만큼 차이가 크다. 부족한 겸손이라고 초라한 겸손이라고 허투루 보면 안 된다. 한 줌의 겸손이 쌓이면 한 트럭의 오만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하여 겸손이 사치를 부린다고 나무랄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진짜 겸손과 가짜 겸손을 가려내면 될 일이다.

겸손을 의미하는 ‘Condescend’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우월감을 갖고 내려다 보다’, ‘잘난 체하다’, ‘거들먹거리다’, ‘자신을 낮추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다소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거만과 겸손은 매우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음이다.

얄팍한 교만은 다양한 지식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진중한 겸손은 적은 지식으로도 삶을 풍요롭게 한다. 행동하는 겸손이야말로 다양한 지식보다 낫고 겸손한척하는 거짓 침묵보다 낫다. 쉬운 것을 어렵게 말하는 것은 머릿속이 텅 빈 지식인들이 저지르는 교만의 사치요, 어려운 것을 쉽게 말하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의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겸손의 가르침이라 할 것이다. 오만한 마음에는 탐욕과 무시가 넘쳐 다시 채울 것이 없으나 겸손의 그릇은 다른 사람을 향해 기울어져 있기에 늘 비어 있어도 관심과 사랑으로 가득 채울 준비가 되어 있다.

오만한 겸손이나 비굴한 오만에 빠진 사람들은 해서는 안 되는 짓들을 서슴없이 저지른다. 그들에게서 겸손의 씨앗을 찾기란 돌아선 표심을 되돌리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꼭 해야만 하는 일에 손도 대지 않음은 오만한 게으름에 빠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베푼 좁쌀 같은 은혜를 크게 내세우지 않고, 허황(虛荒)한 재물이나 명예를 탐내지 않는 절제된 겸손, 배려하는 겸손은 자신을 저주하거나 흉보는 사람을 모두 사라지게 할 것이다. 이웃을 모이게 하는 지름길이다.

사람들은 의기소침하고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사람보단 패기와 자신감 넘치는 사람을 더 선호한다. 덕분에 오만한 사람의 자신감에 더 많은 신뢰를 보내기도 한다. 겸손한 사람의 실질적인 능력을 알 수 없는 대중은 그들을 대함에 있어 습관적으로 능력이 없겠거니 생각한다. 그래서 겸손함을 미덕이라 치켜세우지만, 겸손하고 착한 사람들이 능력 있음에도 낮은 대우를 받음은 이 때문일 것이다.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철이 다시 다가왔다. 후보자의 겸손함은 두 표가 되고, 오만함은 반 표가 되고, 비굴함은 마이너스가 된다는 사실을 알리는 좋은 기회다. 겸손함의 진짜 위력은 유권자의 표심에서 나온다. 비즈니스 심리학의 전문가 토마스 샤모로-프레무직(Tomas Chamorro-Premuzic) 교수는 “높은 자신감 덕분에 능력이 좋아진다는 생각은 완전한 착각이다. 자신감이 높은 사람은 오히려 ‘능력 환상’에 빠져 노력을 게을리해 성공 확률이 떨어진다”라고 했다. 겸손한 척하는 사람은 겸손을 성공에 필요한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기에 자신의 부족한 점을 진심으로 보완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제자리걸음이다. 하지만 진짜 겸손한 사람은 늘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고치려 하기에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

한 표를 어떻게 늘릴 것인가? 유권자를 정말 내 편으로 만들고 싶다면 아는 척 대신 경청이 필요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유권자가 하는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후보자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따라 유권자의 한 표는 때에 따라 두 표가 될 수도 있고, 마이너스 표가 될 수도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겸손으로 얻은 한 표가 결과적으로 그 선거에서 이기는 과반수의 표가 됨이다.

거짓이 진실을 이기려 하고, 오만이 겸손을 누르려 한다면 유권자는 표로서 강하게 심판을 해야 한다. 특권에 물들어 ‘내가 난 데’ 하는 허풍쟁이를 확실히 걸러내고, 철면피는 방탄복보다 더 두껍다 하고, 몰염치를 항상 망각의 망토 속에 숨기고 다니는 후보자가 있다면, 그들에게 감히 속지 말고 속히 솎아내야 할 것이다. 좋고 나쁘고는 나중 문제이고 ‘1등 만이 살길’이라 외치며 반칙을 밥 먹듯 하는 후보자를 반드시 물리칠 수 있는 큰 용기가 필요함이다.

구제할 마음은 있는데 구제할 힘이 없는 자와 구제할 힘은 있는데 구제할 마음이 없는 자,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유권자의 눈동자는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표심의 기울기가 점점 벌어지고 있음에 고뇌가 쌓여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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