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부살이와 모듬살이
더부살이와 모듬살이
  • 송란교 기자
  • 승인 2024.02.23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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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 성동신문 논설위원
송란교 논설위원

시나브로 스미는 완연한 봄기운에 기대어 대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들어오는 복이 많을까 떠나가는 재앙이 많을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인생에 도움이 되는 친구가 많이 찾아올까 속이려 덤비는 친구가 더 많을까? 아직은 덜 떨어진 겨울 꼭지가 가지 끝에 매달려 창문을 넘보기도 하지만, 따뜻한 복은 어서어서 들어오고 시커먼 재앙은 서둘러 떠나가기를 기대해본다. 상생의 만남, 살리는 만남은 우리가 사는 동안 덤이 남을 것이요, 동고동망(同苦同亡)의 만남, 상처 주는 만남은 덤이 줄어들 것이니라.

남쪽에서 다소곳이 불어오는 미지근한 바람, 꽃등에 업혀 오는지 꽃잎을 떨구고 오는지 알 수 없지만, 제비들이 물고 올 꽃향기는 한 줄기 바람이 아닌 든든한 바램이면 좋겠다. 이제는 바람 불면 엎드리고 뒤돌아설 것이 아니라 가슴을 활짝 열고 들숨을 들이켜 보자. 무병(無病), 무탈(無頉), 무사안일(無事安逸)의 인생도 누군가를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맛있는 향기로 피어날 것이고, 삶이 곧게 펴지고 얼굴도 팔자도 아름답게 펴질 것이다.

마음 한구석에 계약서 없이 세 들어 사는 녀석이 있다. 내 허락도 동의도 없이 제 맘대로 들어와서 내 영혼마저 삼키려 드는 핸드폰의 망령이다. 내 손을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내 눈을 사로잡고 내 귀를 틀어막으니 도통 다른 사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들고, 살아서 꿈틀거리는 정마저 느낄 수 없게 만든다. 오호통재라 소통 부재여!

내 육신과 잘 어울릴 때는 행복한 미소가 따라오지만, 그 반대의 상황이 되면 감옥에 갇히게 된다. 핸드폰을 새로 개통하면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과 같다. 말과 정이 통하지 않는 녀석, 나를 닮은 가짜인 나와 철저히 친해져야만 인생이 즐겁다. 나는 지금 핸드폰에 더부살이하는 것일까? 반려견 한 마리 입양하면 또한 한 가족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들은 dog이 아닌 god의 경지에 오르고 있다. 나는 지금 그들과 모듬살이 하는 것일까 신을 섬기고 있는 것일까?

남의 집에서 먹고 자며 일을 해 주고 삯을 받는 일, 또는 그런 사람이나 남에게 얹혀사는 것을 더부살이라 한다. 모듬살이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서 살아가는 공동생활을 말함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가정은 사회와 나라를 이루는 모든 모듬살이의 기본이 된다. 부모를 내가 선택할 수 없고, 조국 또한 내가 선택할 수 없기에 어쩌면 운명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학교, 직장, 모임 등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모듬살이다. 모듬살이는 함께 어울리는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배려함에서 출발한다. 우리들의 하루하루의 일과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모듬살이에 속할 것이다.

산업화를 이룬 세대, 환갑을 넘긴 세대는 넘기 힘든 보릿고개를 넘어왔다. 지긋지긋한 가난과 배고픔의 해결이 지상최대의 과제였었다. 그래서 한 동네에서 어울려 살며 품앗이를 일삼다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도회지로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중진국으로 만들었고 지금의 40대를 낳고 길러왔다. 그래서 40대는 중진국 시대에 걸맞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그들이 낳은 20대는 선진국에서 태어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왜냐면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사고방식은 철저히 선진국을 닮았다. 세대 간의 원활한 소통이 어려워짐은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까지 앞선 세대의 숨겨 둔 속사정이야 말해 뭣하랴. 먼 나라의 전설일 뿐이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라 한다. 세계가 온통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에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으면 낙오되기 쉽다. 철저하게 혼자이면서도 절대로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세상이다. ‘풍요’한 소수보다 ‘다수의 행복’을 찾아야 할 때다.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면 다리도 아프고 어깻죽지도 아프다. 쥐고 있는 주먹이나 들고 있는 팔도 아프긴 매양 한가지다. 그러니 짐은 나누어야 한다.

사람은 어렸을 때는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고, 성장하고 나면 또한 누군가를 함께 돌보아야 한다. 단 한 사람의 낙오와 소외는 사회의 큰 뚝을 무너뜨릴 수 있음이다. 모듬살이의 핵심은 ‘돌봄’이고, ‘어울림’이다. 이는 특정의 한 사람 몫이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건강한 모듬살이를 통해 서로 이끌어주고 밀어주면서 개인 간의 격차, 세대 간의 격차를 줄여나가면 좋겠다. 은퇴한 백수보다 휴가 중인 프리랜서가 더 어울리는 친구들, 한쪽 구석에서 더부살이하는 친구 렌탈, 정신 렌탈이 아닌 같은 방에 둘러앉아 함께 어울리는 모듬살이를 꿈꾸면 사치일까?

꽃물인 듯 눈물인 듯 매화나무 가지 끝엔 설화(雪花) 만발하니 눈이 호강을 하나, 한 걸음 한 걸음 눈물바다를 젖은 족화(足靴)로 어찌 건널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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