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구문화 (江東區文化)
강동구문화 (江東區文化)
  • 성광일보
  • 승인 2014.09.1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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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곤ㅣ강동신문 회장·발행인

유명곤<강동신문 회장·발행인/강동여성문화원장/강동·송파 NGO대표>
고조선 역사가 살아 숨쉬는 유서 깊은 고장 강동구(江東區)는 서울의 동(東)쪽에 위치하여 서울에서는 가장 먼저 해를 맞이해서 해 뜨는 강동(江東)이라고도 한다. 뿐만 아니라 1000만 서울인구의 생명줄이라고 하는 상수원도 강동구에 있다.

넓은 토지에 인구 약 50만명, 37%가 그린벨트 공원으로 묶여 늘 푸른 강동, 도심에 야전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선사유적지, 초기백제 위례성, 한강유역문화의 발원지였고 한국문화의 중심지로 남과 북을 잇는 가장 중요한 길목 이었으며 삼국시대 전략 요충지로써 유명하다.  또한 아시아 문명(文明)의 중심지와 반도를 이어주는 문화전파의 큰길이었다. 이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유적과 유물이 우리 강동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굴 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6000년 이전 부터 이 지역에 터를 잡고 그들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에 노력을 기울여왔다.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처음 한강 북안에 도읍을 정하였다가 즉위 13년(기원전 6년) 이곳에 천도하면서 백제는 국가발전의 기반을 마련 할 수 있었다.

강동구는 조선개국과 더불어 수도가 서울로 정해지면서 동교(東郊)에 포함됨으로써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수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으며 따라서 중앙으로 진출하거나 반대로 중앙에서 낙향하는 사대부(士大夫)들의 거처로 각광 받는 지역이었다.

강동구에서 도성까지는 30리 안 밖으로 도보로 세시간 거리에 불과하였으며 서해안 지역이나 한강상류지역에서 중심지로 기능했던 광주-여주-이천-충주 등의 도회까지도 수륙로(水陸路)로 1~2일이면 닿을 수 있었다. 강동구는 내륙으로 이어져, 경상도 사람들도 충북에 울고 넘는 박달재 고개를 넘어 광주 하남에서 마지막 마방에서 말 먹이를 주고 천호에서 숙식을 취했다는 것이 전설로 남아있다. (당시 천호동에 1000호 주택이 상주함)

선사시대부터 취락입지로도 선호되었던 강동구는 이러한 수륙 교통망을 토대로 발전해 왔으며 결국 수도의 일부로 편입되기에 이르렀다. 시대적 위정자들의 복안이나 국토관리 이용에 따라 강동구가, 저 멀리 왕십리까지도 광주군으로 편입된 적도 있고 근대 사회 와서도 성동구로 지역구가 바뀌었다가 다시 강동구로, 또 27여년전 일부가 송파구로 분구되는 역사를 격기도 했다.

또한, 천호동과 이어지는 광진(廣津)은 강동구의 대표적인 나루였으며 1414(태종14)조운로의 관리를 위해 설치된 충주-(경창간) 7개의 좌도수참 가운데 하나로 전운별감(轉運別監)이 파견되었으며 일제시기에는 뗏목의 집하장으로 유명해 뚝섬과 더불어 규모가 큰 목재시장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강동구는 주로 광진을 통해서 상위의 문화가 흡수되었고 인구가 증가하고 상업이 진작되면서 교류량이 많아지자 1936년 광진교(廣津橋)가 부설되었으며 강동구가 급속히 발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당시는 강남구보다 살기 좋은 고장이었음)

그리고 서울의 동부에서 한강 이남 지역을 잇는 주도로가 송파진에서 광진으로 이전 한 것은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도로 변에는 유동인구를 대상으로 상가와 주막 등이 입지함으로써 취락의 규모가 확대되거나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상일동의 게내마을, 명일동의 원터골, 천호동의 가운데말, 등이 그 대표적 예에 속한다.
이와 같이 교통 요지로써의 강동구의 성격과 기능을 볼 때 무한히 발전할 수 있고 미래의 꿈과 희망이 점철된 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옛날 신바람 나게 역동적이었던 강동구가 망치소리가 끊기고 지난 수년 동안 깊은 숙면에 들어가 주택가는 슬럼화 되어 칠팔십년 달동네가 아직 그대로 옛 명성을 지키고 있다. 앞으로 점점 낙후된 도시를 재정비하여 새로운 모습에 물류 소통의 요충지로 밝은 내일을 열어 가리라고 믿는다.

그리하여 강남권 3구로 분류되던 강동구가 이제 변방 취급을 받지 않는 명품 문화도시로 거듭 날것으로도 기대한다. 지금 인간사회(人間社會)는 과학문명(科學文明)이 고도(高度)로 발달되어가고 있는 반면 정신문화(精神文化)는퇴행하고 있다.

시대(時代)는 번갈아가고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현재(現在)를 통하여 구심점을 찾고 미래(未來)에 대비(代備)하려는 자세는 바로 인간본연(人間本然)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우리 민초들은 지역 정치인에게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지방정치인들은 민도 높은 강동 유권자 앞에서 힘주며 열변했던 공약의 말들! 이제 행동으로 증명하고 현실로 보여주는 정치를 하길 바란다. 사실과 다른 공과와 치적을 앞세우는 것은 햇볕에서 촛불을 켜는 것과 손안대고 코푸는 형상과 같다. 작은 일에 너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대개 큰일에는 무능해진다. 작은 항아리는 빨리 뜨거워진다는 서양 속언도 있다. 우리 강동구에 선량들은 작은 것에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큰 정치를 약속했다. 무력화된 강동구를 생동감 넘치는 풍요로운 지역사회로 발전 시키며 새로운 변화로, 서울 동북부의 최고 중심 도시로 만들겠다.

그리고 다른 구보다 찬란한 역사, 문화를 지닌 강동구를 수도 서울에서 가장 살기 좋은 문화 도시를 이룩하겠다고 하였으니 이제부터 희망이 샘솟고 살맛나는 강동구로 발전할 것이다. 이렇듯 축복 받은 땅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기쁘다. 아무튼 강동문화(江東文化)와 인지(人智)가 깨어있는 도시를 그려보면서 깊은 상념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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