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10년 전 타임머신을 타고 있는 정치권
<시론>10년 전 타임머신을 타고 있는 정치권
  • 성광일보
  • 승인 2015.08.18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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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건국대 겸임 교수

▲ 김상진<건대 겸임 교수>
제17대 총선을 두 달여 앞둔 2004년 2월, 필자는 행정구역이 그려진 전국의 지도를 놓고 국회의원 선거구를 어떻게 나눌지 고심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당시 국회에서 ‘선거구획정위원회’실무를 하던 필자는 국회의원 선거구를 조정하는 것이 개헌보다 왜 어렵다고 하는지 실감했다. 선거구 개편으로 정치권이 시끄러운 2015년 현재, 10년 전 2004년의 전례를 복기해 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너무 유사한 행위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2001년 10월 헌재의 선거구 획정 헌법불합치 결정 두 번째가 있었다. “선거구 인구격차 비율이 2대1 미만이 바람직하지만, 현실을 감안하여 3대1을 넘지 않게 하여야한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2004년 4월에 총선을 치르기 위해서 2003년 말 까지 법을 개정할 것을 규정했다. 그러나 무려 2년의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정치권은 헌재가 규정한 2003년 12월31일 이라는 시한까지 아무런 합의를 이루지 못하였으며, 선거를 40여일 남겨놓은 2004년 3월에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03년 정치개혁특위는 1차 특위 기한이 끝나, 2차 특위를 구성하고 몇 차례의 기한을 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하였다. 급기야 헌재가 제시한 시한이 다가오자 당시 정개특위위원장이었던 한나라당 목요상 의원이 단독으로 처리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하였으나,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격렬한 몸싸움과 육탄방어로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당리당략을 앞세운 전형적인 구태정치의 표본이었다.

당시 쟁점은 첫째, 국회의원 의석수를 동결할 것인가? 증가시킬 것인가? 둘째, 비례대표 의석을 줄일 것인가? 증가시킬 것인가? 셋째,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사권 강화 등 정치개혁 내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었다. 다수당 이었던 한나라당은 “현행의석수(273석)는 유지하되, 늘어나는 지역구 의원수 만큼 비례대표 의원수를 줄인다“는 것이 당론이었으며, 열린우리당은 “비례대표를 46석에서 72석으로 늘리는 것을 전제로 권역별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것을 주장”하였다. 정치개혁법안을 입안해 국회에 제출했던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는 ‘지역구 199석, 비례대표 100석’으로 전체의석수를 증가시키는 대신 비례대표를 확대하자는 안이었다.

초유의 ‘선거구 위헌사태’까지 초래하며 2년여 동안 끌어왔던 의원정수 협상은 선거를 40여일 앞두고, 국회의원 의석수를 273명에서 299명으로 26명을 증원시켜, 지역구 16석, 비례대표 10석을 배분하기로 결론이 났다. 결국은 국민감정을 거스르면서까지 국회의원 정수를 증원하여 기득권을 유지하였던 것이다.

2015년 오늘의 국회도 당시와 너무나 닮았다. 각 당이 주장하는 것도 2003~4년의 재판이다. 당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다수당인 새누리당은 ‘전체의석수 동결과 비례대표 축소’를,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당의 지지율에 비례해서 의석을 보장하는 연동식 권역별비례대표제 도입’을 말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데 우리의 정당은 주장도 그대로이며 처지도 그대로이다. 정개특위에서 논의해도 헌재가 제시한 올해 말까지 선거구를 조정할 수 있을까? 필자는 현재 논의구조로는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 정당의 당리당략과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가 이 보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9일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선거구획정위원회’는 국회 산하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이관되었다. 그러나 정작 선거구획정위원회는 국회에서 국회의원 정수를 정해주어야 일을 할 수 있다. 국회에서 정개특위가 공전이 되면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선관위에 이관 되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가 진정으로 기득권을 버리겠다는 자세라면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할 필요도 없다. ‘정치개혁협의회’ 같은 외부기구를 만들어 여기에서 국회의원 정수와 정치개혁 내용을 성안하고, 관련 상임위인 안전행정위원회에서 그대로 처리해 본회의를 통과하면 될 일이다. 다만, 외부기구가 운영될 때 각 당의 의견을 진술할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정치인들을 마치 타도의 대상인 듯이 대하는 것도 우리정치의 올바른 방향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회가 스스로 개혁의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 여부는 이번 국회의원 정수와 선거구획정 과정을 지켜보면 알 수 있다. 10년 전처럼 국민의 비난을 무릅쓰고 결국은 국회의원 정수를 증원하여 스스로의 기득권을 지킬지 두고 볼 일이다. 우리의 정치권이 제발 미래의 타임머신을 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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