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20년, 예고된 침묵 … 공회전하는 조례안예고
지방자치 20년, 예고된 침묵 … 공회전하는 조례안예고
  • 성광일보
  • 승인 2015.10.23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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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의 날 특별기획> 조례안예고를 통해 본 지방자치의 현주소

지자체와 지방의회는 조례안을 발의하기 전 또는 발의한 이후 '조례안예고' 과정을 거친다. 조례안예고는 조례안의 주요 내용을 미리 알리고 일정 기간 동안 주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중앙정부ㆍ국회의 '입법예고'와 같은 격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조례안예고제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주민을 대표하는 지방의회조차 주민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이에 지방의회의 조례안예고 실태를 중심으로 지방자치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지난 2011년 7월 14일 신설된 지방자치법 제66조의2는 지방의회의 조례안예고에 관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지방의회는 심사대상인 조례안의 취지, 주요 내용, 전문 등을 공보나 홈페이지를 통해 예고할 수 있다. 지방의회가 예고 기간 동안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이후 조례안 심사 과정에서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법제화한 것이다.

2009년 조례안예고를 신설하는 내용의 지방자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던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기자와의 서면인터뷰에서 당시 개정안을 제안했던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방의원이 발의하는 조례안도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2007~2009년 사이 의원 발의 조례안이 92% 증가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입법예고 기간이 없었다"

지역주민들의 입법 참여 기회를 확대하자는 내용이었던 만큼 개정안은 법안 심사 과정에서 긍정적인 평가 아래 이견 없이 통과됐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조례안예고는 주민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특별시의회를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2015년 9월 현재까지 시의원들이 발의한 조례안은 총 348건. 이 중 조례안예고 기간을 통해 주민 의견이 접수된 조례안은 8건(서울시의회 홈페이지 입법예고란 접수 의견 기준)에 불과했다. 지역사회 내에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소수의 조례안을 제외하면 사실상 주민 의견이 수렴되는 경우는 거의 전무하다는 게 서울시의회 관계자들의 일관된 설명이다.

서울시의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행 4년째인 조례안예고제는 광역ㆍ기초의회를 가리지 않고 여전히 공회전 중이다. 서울 광진ㆍ성동구의회는 조례안예고제 시행 1년 뒤인 지난 2012년 10월 15일부터 현재(광진구의회는 지난 22일, 성동구의회는 지난 15일 기준)까지 조례안예고 기간 동안 단 한 건의 주민 의견도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례안예고제, 시행 4년째지만 여전히 공회전
이 같은 현상의 배경으로 지방자치 전반에 대한 주민들의 무관심이 꼽히고 있지만, 이와는 별개로 조례안예고 기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단편적인 문제 역시 지적되고 있다. 주민들이 지방자치에 무관심하더라도 조례안예고 기간이 짧은 구조적인 문제는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지방자치법은 지방의회가 조례안예고 기간을 5일 이상으로 설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5일 이상'이라고 명시돼 있지만 법정공휴일을 제외하면 예고 기간이 5일을 초과하는 경우는 드물다. 반면 지자체장이 조례안을 발의할 때는 행정절차법에 따라 20일 이상의 예고 기간을 가져야 한다. 조례의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큰 차이가 없는 경우 의원 발의안이라는 이유로 예고 기간이 짧다면 주민들의 입법 참여 기회를 충분히 보장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민의 권리ㆍ의무 또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조례를 제정하는 경우에는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야 할 필요성이 큰 데도 불구하고 의원 발의 조례안이라고 해서 단지 5일 이상이란 조건만 충족하도록 하는 것은 조례의 완성도 측면뿐만 아니라 시민의 입법 과정에 참여 기회 제공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지방자치단체 집행부와 지방의회 간 자치입법 갈등의 영향요인에 관한 연구>, 권희성, 2014)

지난 6월 조례안예고 기간을 10일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내용의 지방자치법 개정안(광역의회의 사무처 인사권 독립 등의 내용도 포함)을 발의했던 주승용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도 기자와의 서면인터뷰를 통해 현행 평균 5일에 불과한 조례안예고 기간의 실효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주승용 최고위원은 "조례안의 경우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조례규칙심의위원회의 민간인 참여 확대, 조례와 직접 해당되는 단체 등에 내용을 보내 검토하게 하는 등 여러 가지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며 추가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왜 5일이었을까. 원유철 원내대표는 "5일이라는 시간은 조례안에 대해 인지하고 관련 내용을 확인하는 데 최소한의 시간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에는 조례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많은 분들이 참여하고 계셔서 실제 입법이 예고될 때에는 합의가 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면서도 "문제가 있는 부분은 다시 한 번 논의와 토론을 통해 개정해 나가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방의회 역할 제약돼 주민들의 관심 떨어지는 것"
그러나 조례안예고 기간이 짧다는 지적은 조례안예고제를 비롯한 지방자치 전반에 있어 지엽적인 문제제기라는 의견이 많았다. 공회전하는 조례안예고제의 이면에는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들의 무관심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무관심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정치적 효능감의 부재'를 확인할 수 있다. 즉, 주민들이 지방자치를 통해 일상의 변화를 체감한 경험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지방자치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는 책임 추궁으로 귀결되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지방자치가 주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준의 정책을 마련할 만큼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서울시의회의 한 관계자는 "원리론적으로 따지면 지방자치의 역사가 미진해서 생겨나는 문제일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방의회나 지자체가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이 법적이나 재정적으로 굉장히 제약돼 있기 때문에 (지역정치에 대한 주민들의)관심이 더 떨어지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한국지방정부학회장을 맡고 있는 박재욱 신라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

"조례가 상위 법률을 집행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적 기능에 집중돼 있다. (현재 지방자치의 영역 중)국가 위임 사무가 거의 80% 정도 된다. 국가 (위임)사무 자체는 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자기 일상의 이해관계하고는 별 상관이 없다. (중략) 사무 배분 문제ㆍ재정 분권 문제, 이것이 동시에 해결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조례안을 만들고 싶어도 주민들의 생활에 직접 기여할 수 있는 조례를 만들기 어렵다"

권한과 재정의 분권이 이뤄지지 않으면 지방자치의 틀 안에서 자체적인 정책 입안이 불가능하고 결국 지방자치는 구조적으로 성과를 낼 수 없게 된다. 지방자치의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는 주민들은 지방자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 수밖에 없다. 악순환이다.

경험적 측면에서 이 같은 현상을 진단하기도 한다. 그동안 중앙집권적 권력구조가 계속 유지돼왔기 때문에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적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박래학 서울시의회 의장은 기자와의 서면인터뷰에서 "오랫동안 대통령제적 정부형태의 운영과 지방단체장 중심체제의 경험이 축적되어 온 것에 익숙해진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방자치 손발 묶는 중앙정부
외면 받는 조례안예고, 그 근저에 자리한 주민들의 무관심. 지방분권은 이러한 현상들을 관통하는 열쇳말이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지방자치의 손발을 오히려 더 강하게 묶고 있다.

지난 8일 법제처는 사회보장제도를 신설ㆍ변경할 때 보건복지부 장관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내용의 사회보장법에 대해 유권해석을 내렸다. 내용은 이렇다.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장관과 협의하는 경우의 '협의'는 보건복지부 장관과의 '합의 또는 동의'를 의미한다"(<한겨레> 인터넷판 10월 12일자 보도 중 재인용)

이는 지난 6월 성남시의 무상 공공산후조리원 사업을 보건복지부가 수용하지 않자 성남시가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의뢰하면서 나온 해석이다. 뒤이어 행정자치부는 지난 12일 사회보장제도 사업을 신설ㆍ변경할 때 협의 및 조정 의무를 위반하면 지출한 금액 이내로 지방교부세를 감액한다는 내용의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정부의 이번 시행령 개정안이 확정되면 지방자치 차원의 적극적인 주민 복지 정책은 일정 수준 제약을 받게 된다. 지방자치가 주민들의 삶에 기여할 수 있는 정책을 주도적으로 입안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자치'의 범위를 축소시키려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권한ㆍ재정ㆍ책임 분권으로 지방자치 영역 확대돼야
지방의회의 조례안예고 실태는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들의 무관심을 드러내는 현상일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의 효능감 부재와 이를 구조적으로 공고화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박재욱 교수는 "(조례안예고 기간을)5일에서 10일 늘리고 하는 것 자체는 별 효과가 없을 것 같다"며 "5일 늘어난다고 해서 주민들이 관심을 갖고 찾아보고 그러지는 않을 듯싶다"고 내다봤다. 결국 권한ㆍ재정ㆍ책임의 분권을 통한 지방자치의 영역 확대 즉, 실질적인 지방분권에 방점이 찍힌다.

29일은 지방자치에 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그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지방자치의 날'이다. 지방자치 부활 20년째를 맞은 2015년 현재. 지방자치는 여전히 관객 없는 무대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김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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