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정책을 대신한 대통령의 자선
청년정책을 대신한 대통령의 자선
  • 김대영
  • 승인 2015.11.2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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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영 기자
1997년 외환위기를 겪기 전까지 사람들은 자가복지를 통해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왔다.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매출 부진으로 인한 폐업, 건강 악화 등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가족 또는 지인들에게 도움을 청하며 위기를 스스로 관리했던 것이다. 문제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다. 이렇게 되면 자가복지는 평소처럼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당장 “내 코가 석자”이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당시 기업들이 줄도산하면서 생산 여력은 급격히 떨어졌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됐다. 옆집에 닥친 생활고가 언제 자신에게 돌아올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도와달라”는 누군가의 간곡한 부탁을 선뜻 들어줄 만큼 여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후 정부는 2000년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시행한다. 외환위기는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의 도움에만 의지해 일상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자발적 호의’가 청년일자리 대책?

시계를 돌려 2015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합의 이후인 지난 9월 정부는 ‘청년희망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청년 구직자 지원,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연계한 민간 일자리 창출 지원 등 청년 일자리 문제를 지원하자는 게 이 펀드의 목적이다. 이미 알려졌다시피 펀드의 재원은 정부의 재정 투입 없이 오직 자발적 기부에 의해 마련된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펀드 조성과 관련한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께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차원에서 직접 제안하신 청년 일자리 관련 펀드의 조성과 활용 방안에 대해서 국무위원 간담회를 개최했다”고 말했다. 즉, 펀드의 성격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차원의 자선인 셈이다. 국가의 책임이 배제된 채 자발적 호의에 따라 운용되는 펀드를 책임 있는 정부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해야 할 책임은 결국 국가의 몫이다. 오늘날 국가와 주권의 개념에 영향을 미친 계약론적 국가관의 설명은 이렇다. 사람들이 생명과 재산을 포함한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해 국가를 성립하고 국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의무를 이행하는 대신 국가는 사람들의 안정적 생활을 책임진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주어진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청년들의 안정된 일상을 책임지려 들지 않는다. 정부가 청년희망 예산이라고 명명한 내년 예산안의 일자리 예산 중 상당 부분은 대기업에서의 직업훈련, 불안정한 인턴제 등에 투입될 예정이다.

청년일자리 창출을 명분 삼아 밀어붙였던 노사정합의 이후 집권 여당은 실업급여 수급 기준을 강화하고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을 늘리는 내용의 법안을 발표했다. 불안정할지라도 눈앞의 일자리를 놓칠 수 없는 청년들의 일상은 더욱 각박해질 처지에 놓였다. 지난해 청년 실질실업률은 30.9%(한국비정규노동센터). 청년희망펀드라는 사회지도층의 자선에 의지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지 묻고 싶다.

지난 5일 서울시는 정기소득이 없는 미취업청년 중 활동의지를 가진 청년들의 사회참여활동을 활동계획 심사를 거쳐 최대 6개월까지 지원하는 내용의 청년수당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보다 앞서 성남시는 관내에 3년 이상 거주한 청년들에게 연간 100만원을 지원하겠다는 청년배당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두 정책 모두 지방정부가 시행 주체이며 재원 부담을 자처한 공적 대책이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청년희망펀드의 조성 재원으로 매달 월급의 20%를 납부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의 선의는 높이 사고 싶다. 그러나 그의 자선은 청년고용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가리는 장막이 되고 있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인간 박근혜의 선의가 아니라 대통령 박근혜의 청년정책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대통령 박근혜’는 어떤 청년정책을 제시하고 있는지 혹시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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