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도 못보겠네, 풀 향기 입에 드는 걸 : 騎牛歸家 / 만해 한용운
봄바람도 못보겠네, 풀 향기 입에 드는 걸 : 騎牛歸家 / 만해 한용운
  • 성광일보
  • 승인 2016.01.0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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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56)

봄바람도 못보겠네, 풀 향기 입에 드는 걸 : 騎牛歸家 / 만해 한용운

여섯 번째는 동자승이 소에 올라타고 피리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간다. 천신만고 끝에 소를 잡아 채찍과 고삐를 달고, 드디어 그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제 어둡기만 했던 모든 투쟁은 끝났음을 보여준다. 얻은 것도 없고 그렇다면 잃은 것도 없다. 그것보다는 본래부터 그러한 것들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그런 것을 찾으려 했다. 찾아 나섰다. 그러므로 더 고뇌스러워 진다. 시인은 저물녘 먼 길 가며 길가의 풀 먹어 치우니, 봄바람도 못보겠네 풀 향기 입에 드는 걸 이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騎牛歸家(기우귀가) / 만해 한용운

채찍을 쓰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네
저물녘 먼 길 가며 길가 풀을 먹였더니
봄바람 못보겠다네, 풀 향기 입에 든 걸.

不費鞭影任歸家  溪山何妨隔烟霞
불비편영임귀가   계산하방격연하
斜日吃盡長程艸  春風未見香入牙
사일흘진장정초   춘풍미견향입아

봄바람도 못보겠네, 풀 향기 입에 드는 걸(騎牛歸家)로 번안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채찍 그림자 쓰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네 / 산과 물이 어찌해 안개와 놀을 가로막겠는가 // 저물녘 먼 길 가며 길가의 풀 먹어 치우니 / 봄바람도 못보겠네, 풀 향기 입에 드는 걸]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안개 놀이 막지 않아 집을 향해 돌아가네, 먼 길 가며 풀 먹이니 풀 향기가 입에 든 걸’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소를 타고 돌아오다]로 번역된다. 배가 고팠던 소를 넉넉히 먹였다면 이제 편히 쉴 수 있게 집으로 데리고 와야 한다. 풀을 먹였다고 해서 풀밭이나 야산에서 쉬게 하거나 마음대로 낮잠을 즐기게 할 수는 없다. 편안한 안식처가 필요한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매양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인은 소를 몰고 집으로 오면서 행여 소의 기분이라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채찍 그림자를 쓰지 않고 집으로 돌아간다 했다. 소의 고삐를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찌하여 내와 산이 안개와 놀의 가는 길을 가로 막을 수 있겠는가 하고 반문한다.

화자는 저물녘 길가에 뭉쳐져 자라고 있는 풀을 먹였더니, ‘봄바람도 차마 못 보겠네, 풀 향기가 소의 입에 드는 걸 보며’라는 표현이다. 선도의 가르침 속에 교훈적 시상이 배어나는 시심으로 은유적인 표현이 읽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준다.

불가에서는 기우귀가(騎牛歸家)를 다음과 같이 기린다(頌). [소를 타고 유유하게 집으로 돌아가노라니(騎牛釐釐欲還家) / 오랑캐 피리소리가 저녁놀에 실려 가고 있다네(羌笛聲聲送晩霞) / 한 박자 한 곡조가 한량없는 뜻이려 했더니만(日拍一歌無限意) / 곡조를 아는 이라고 더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知音何必鼓唇牙

【한자와 어구】
不費: 사용하지 않다. 鞭影: 채찍 그림자. 任: 임의로. 歸家: 집으로 돌아가다. 溪山: 계곡과 산. 何妨隔: 어찌 방해하겠는가. 어찌 방해하랴. 烟霞: 안개와 놀. // 斜日: 해가 지다. 吃盡: 다 먹다. 長程: 먼 길을 가다. 艸: 풀. 春風: 춘풍. 未見: 보이지 않다. 香: 풀 향기. 入牙: 입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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