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북한의 핵실험과 해법 찾기
<특별기고>북한의 핵실험과 해법 찾기
  • 성광일보
  • 승인 2016.02.0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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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길랑/비젼경영전략컨설팅 원장

▲ 명길랑/비젼경영전략컨설팅 원장
북한은 대략 3년마다 핵실험을 해왔다. 2006년 9월 제1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2009년 5월, 2013년 2월, 2016년 1월 6일에 4차 핵실험을 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계속하는 것은 첫째, 핵 기술을 도모하고, 둘째, 관련국의 대북 정책을 바꾸기 위해서고, 셋째, 북한의 내부 단합을 위해서다. 북한은 자위권 확보를 위해서 핵실험을 하지만 이때마다 동북아 정세는 요동친다.

1. 북한의 핵개발
6·25 한국전쟁이 끝난 후 소련과 북한은 핵연구 분야에 대한 협력을 골자로 한 두 가지 협정에 조인했다. 이를 전 후해 소수의 북한 과학자들이 모스크바 부근의 두브나(Dubna)핵연구센터에서 연수를 시작했다. 소련은 실험용 원자로도 제공하고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도 허용했다. 당시 소련의 지원은 여기까지 였다.

1964년 중국이 원자폭탄실험에 성공했다. 북한 김일성은 이번에 중국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모택동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렇게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지 못했음에도 북한은 어떻게 자체적으로 핵개발을 할 수 있었을까?

북한 핵개발 중심축은 이성기 박사였다. 이성기 박사는 남한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 교토제국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대학교 공대 학장을 지내다 한국 전쟁 때 월북했다. 이성기 박사는 김일성의 친한 친구로서 북한 과학부분 자문을 맡았다. 이성기 박사는 북한에서 석탄을 원료로 한 '비닐론'이라는 합성섬유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세계적 명성을 얻은 저명한 과학자였다. 북한의 핵개발프로그램은 이성기 박사를 축으로 한 처음부터 자체적 추진이었다.

2. 남한의 핵개발
한국전쟁이 끝난 뒤 재정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은 한국에 대한 막대한 원조가 대부분 72만의 남한 병력 유지에 지출되는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핵무기로 북한의 위협을 막아 줄 테니 병력을 감축하도록 했다. 그래서 1957년 12월 남한에 핵무기를 배치했다. 어네스트 존(Honest John)미사일이다. 280mm 장거리포에 핵탄두를 장착하는 것이 그 효시였다. 그 뒤 다양한 전술핵무기가 들어와 1972년까지 미국이 남한에 배치한 핵탄두는 총763개였다.

1970년 초 남베트남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자 남한의 안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시아의 우방들은 자체적으로 방위를 하라는 닉슨 독트린이 발표되면서 남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시켰다. 남베트남은 패망했다. 이 과정을 지켜 본 한국정부는 자체적으로 핵개발을 추진했다. 그러나 중도 포기했다.

3. 북한은 왜 핵개발을 하게 됐나?
북한이 적극적으로 핵개발에 나서게 된 결정적 계기는 미국이 남한에 핵무기를 배치했기 때문이다. 1957년 12월부터 미국이 남한에 핵무기를 배치했고, 이에 위협을 느낀 북한이 196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핵개발을 추진했다. 여기다가 1975년부터 경제력이 남한에 뒤지기 시작하면서 재래식 무기 경쟁을 벌릴 수 없게 되자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보기 위해 본격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나서게 된 것이다.

4. 북핵의 해법을 찾아서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은 한반도내에서 자국의 이익을 챙기는데 관심이 있을 뿐, 대한민국을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과 통일을 지향하는 대북관계의 판을 짜서 한반도 주년 4대 강국을 이 판으로 끌어들여 우리 정부가 항해의 키를 잡아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4대 강국의 판은 자기들의 이익 추구의 판이기 때문에 그 판에 우리가 끼게 되면 우리의 뜻대로 할 수 없다.

북핵 문제는 “북한이 생존을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보유하려 한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북미 간에 빅딜을 해야 한다. “북한은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고, 미국은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략하지 않는다”는 9.19공동성명의 정신을 되살리고 북한 체제를 보장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함과 동시에 북한도 핵을 폐기하는 맞교환을 해야 한다.

왜 미국은 앞에서 협의하고 뒤에서 딴 짓을 했을까?
소련체제가 붕괴하고 냉전체제가 종식되어 싸울 상대가 사라졌는데도 미국은 계속 군사력을 키우면서 미국이 세계를 지키지 않으면 세계 질서가 무너지고 결과적으로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이어갔다. 그 배경에는 미국 정치 지도자들을 압박하는 방위산업체가 있었다.

왜 그들의 압박이 미국 정계에 먹혀들어 갔을까?
미국의 방위산업이 미국 경제 전체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따라서 미국의 무기들이 계속 생산되고 수출되지 않으면 미국 경제 전체가 불황을 맞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산복합체에 연결된 정치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세계 곳곳에서 분쟁이나 전쟁이 일어나고 거기서 많은 무기가 소비되는 상태를 유지하도록 노력해 왔다. 이것이 국가 안보의 신화를 계속 활성화 해 온 실질적인 이유다.

미국이 북미간의 합의를 깨고 뒤에서 전쟁의 불씨를 살리고, 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바로 무기 판매에 있었다. 북한의 핵개발은 미국 국방비 증액에 빌미를 주고, 각종 무기를 생산하여 무기 판매의 활성화에도 구실을 제공했다. 그래서 한국은 2015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기 수입국이 됐고 대부분 미국에서 구입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분단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은 한반도 통일을 원치 않는다.

이제 한국은 자주적 통일을 추구해야 한다, 남북한 평화공존을 위한 대화다.
대화는 서로 같은 눈높이에 서서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되어야 한다. 상대방을 굴복시키려 한다거나 상대방을 내 가치관으로 변화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남과 북은 끊임없이 상대방보다 서로 높은 곳에서 상대를 아래로 내려다보려는 언행을 구사하며 뱃장의 줄다리기만을 해왔다. 이것은 유치한 기 싸움이다.

 “강자는 의롭고 약자는 안전해야 한다.” 절대강자인 남한이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약자 북한에 대해 배려함이 없이 맞장 뜨기만을 고집하면 안 된다. 서독은 강자로서 항상 동독을 배려하고 어떤 구실을 붙여서든 퍼주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동독주민을 움직여 동서독 통일을 이룬 것이다.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심술로는 전쟁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북한은 타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함께 가야 할 동반자요 같은 민족이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의 불씨를 살리고 위기를 조성하여 한반도 평화를 저해하려는 행동을 할 때 한국 정부는 단호하게 'NO'라고 말해야 한다. 그래야 북핵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그리고 6.15남북공동선언과 10·4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을 승계·발전시켜야 한다. 두 선언은 7·4남북공동성명, 7·7선언, 남북기본합의서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박정희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의 남북관계의 약속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이어받아 발전시킨 것이다. 다음 정권들도 승계함이 마땅하다. 서독은 정권이 바뀌어도 동방정책을 계승하여 발전시킴으로써 통일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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