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이 따듯해지는 강 여행
몸과 마음이 따듯해지는 강 여행
  • 성광일보
  • 승인 2016.03.0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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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생명의 원천이자 삶의 근간이다. 세상 물정을 온몸으로 지켜본 산 증인이다. 우리의 땅은 어딜 가나 강이 없는 곳이 없다. 모든 물길은 마침내 합쳐져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저 풀잎 위에 맺힌 맑은 이슬방울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곳도 강이다. 강은 물방울들의 집합체이면서 세월의 나이테다. 언제나 그랬듯이 강은 침묵으로 말을 대신하고 있다. 사람들을 향해 무어라고 소리치고 있다. 햇살을 품은 강이 물비늘을 반짝이며 어디론가 흘러간다. 산을 에돌고 마을을 에돌고 텅 빈 들판을 가로지른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강이 있다. 크고 작은 강들이 국토의 큰 줄기를 이룬 채 말없이 흘러가고 있다. 그 강 속으로 들어가 본다.

▲ 청량사의 고즈넉한 풍경
☛오지와 평야를 두루 적시며 흘러가는 낙동강
낙동강 1,300리. 이렇게 써 놓고 보니 그 거리가 쉽게 가늠이 되지 않는다. 낙동강은 강원도 태백시 함백산에서 발원해 경북 내륙 지방(봉화, 안동)을 거쳐 영남땅(밀양, 부산)을 관통, 남해로 흘러가는 총 연장 521.5㎞의 남한에서 가장 긴 강이다. 그런 만큼 강에 얽힌 사연도 가지가지이고 그 모습 또한 유장하기 이를 데 없다. 한민족의 역사를 오롯이 담은 강인 것이다.

함백산 깊숙이 자리한 태백시 황지동의 황지(黃池). 낙동강이 시작되는 곳이다. 상지, 중지, 하지. 3개의 연못으로 이루어진 황지는 하루 5천톤 가량의 용출수를 뿜어내며 낙동강으로 퍼져간다.

「洛東江 千三百里 예서부터 시작되다」. 돌에 새겨진 문구가 말해주듯 황지는 곧 낙동강의 본류인 셈이다. 황지를 벗어난 물은 크고 작은 물줄기를 만나면서 30여 ㎞를 내리 달려 경북 봉화땅 승부마을을 지나 소천면 현동천에 이른다. 이어 강물은 산세 그윽한 청량산 자락을 휘감고 돌아 양반의 고장 안동땅에서 잠시 숨을 고른 다음, 다시 일정한 수량을 유지한 채 아래로 아래로 달음박질친다.

☛봄이 오는 낙동강을 다시 찾다
지난 3월 초순,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러 낙동강 상류인 봉화, 안동땅을 두루 돌아보았다. 낙동강은 언제나 그랬듯이 유순한 몸짓을 보여주고 있었다. 강은 대개가 산과 들과 마을을 품고 있어 강을 찾게 되면 그 다정다감한 풍경을 온전히 보고 느낄 수 있다. 해서 가슴이 시키는 대로 두 시간 남짓 달려간 낙동강. 저 강이 어떤 강인가. 이 나라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젓줄이 아닌가. 곡선으로 열린 저 강의 종착지는 바다이리라. 곡선은 부드럽고 조화롭고 겸손하다. 긴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나는 이 곡선의 낙동강을 좋아한다. 태고의 멋을 간직한 봉화땅은 언제 찾아도 좋은 사계절 여행지다. 실핏줄처럼 이어진 산, 계곡, 강은 때 묻지 않은 모습이고 하늘이 내린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순박하기 그지없다. 안동과 함께 유교문화권의 중요한 축으로서, 우리 정신문화의 원류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도란도란 흘러가는 낙동강과 청량산의 정기
청량산 줄기가 빤히 올려다 보이는 봉화군 명호면 낙동강 상류. 태백에서 발원한 운곡천과 내성천이 만나 비로소 낙동강을 이루니 그 풍광은 여전하다. 영주와 안동을 잇는 35번 국도를 따라 흐르는 이 맑은 물길은 길손의 마음을 한없이 어루만진다. 이 고장이 보여주는 천혜의 생태계는 낙동강 상류와 청량산에 다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량산은 그리 높은 산은 아니다. 그러나 그 골은 깊고 헌걸차다. 청량산은 크게 외청량과 내청량으로 나눈다. 두 봉우리를 중심으로 그림 같은 풍광이 다가온다. 산길도 가파르지 않아 매표소를 지나 정상까지 3시간 안팎이면 갔다 올 수 있다. 가장 많이 찾는 입석-자소봉-청량사 코스는 청량산이 지니고 있는 멋과 운치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가송리 마을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
봉화에서 안동으로 내려간다. 낙동강 줄기를 바로 옆에 두고 내려가는 이 길은 잘 그린 산수화 한 폭처럼 아름답다. 그렇게 산수를 벗 삼아 계속 내려가다 보면 가송리 쏘두들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고산협’이라는 이름의 층층 절벽이 강물 위에 버티고 선 호젓한 강변길이다. 절벽 바로 옆에는 ‘고산정’이라는 정자가 다소곳이 올라앉아 있다. 고산정(孤山亭)은 퇴계 이황의 제자인 금난수가 지었다고 한다. 퇴계는 청량산을 오가는 길에 이곳에 자주 들러 시를 읊고 경치를 즐겼다. 이름처럼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는 가송리(佳松里)는 가사리와 쏘두들(송오)을 비롯해 골가사리, 고리재, 올미재 같은 자연마을을 두고 있다. 가송리는 가사리(佳士里)의 ‘가’ 자와 송오의 ‘송' 자에서 따왔다.

☛푸근하고 소담한 농암종택
그 길 끝머리에 농암종택이 있다. 낙동강이 휘돌아나가고 첩첩한 산이 에워싼 가송리 올미재 마을에 포근히 안겨 있는 고풍스런 옛집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민들에게 좀 더 느리게 살라고 다그치는 곳이다. 농암종택은 조선 연산군 시절 형조참판, 호조참판 등을 지낸 농암(聾巖) 이현보(1467-1557)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집이다. 이현보는 1504년(연산군 10년)에 ‘사간원정언’으로 있다가 임금의 노여움을 사 안동으로 유배된 인물로서 말년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왔다.

농암종택은 원래 분천마을에 있었는데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 단아한 모습의 종택은 사당· 안채· 사랑채· 별채· 문간채를 둔 본채와 긍구당· 명농당 등의 별당으로 배치돼 있다.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마사토를 깐 마당과 나지막한 담이 나타나고 오른쪽 산 쪽으로 넓은 대청마루와 두 개의 방을 둔 사랑채가 들어앉았고 그 뒤로 안채가 보일 듯 말듯 자리하고 있다. 사랑채 방문 앞에는 ‘적선’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데 이 현판은 선조가 직접 쓴 휘호라고 전한다. 600년의 세월을 간직한 고택은 나무 기둥이며 문설주가 예사롭지 않다.

별채인 긍구당(肯構堂)은 종택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고려시대인 1350년 최초로 이 집을 지은 이헌의 작품이다. ‘조상의 유업을 길이 이어가라’는 뜻이다. 강물을 굽어보고 서 있는 긍구당은 옛 선비의 풍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명농당은 1501년 농암선생이 귀향을 결심하고 지은 집으로, 벽 위에 그린 귀거래도가 눈길을 끈다. 현재 농암종택을 지키고 계신 분은 농암 선생의 17대 종손인 이성원 씨다.

농암종택은 방문객 모두를 따뜻이 맞아준다. 고가의 풍미를 더 느껴보고 싶다면 길손에게 개방된 사랑채, 대문채, 분강서원, 긍구당, 명농당, 별채 등에서 하룻밤 묵어가는 것도 좋겠다.

고택 마당에 서면 휘움하게 돌아가는 낙동강 줄기와 모래사장, 울창한 송림이 가슴 가득 안기는데 이곳에서는 누구나 신선이 된다. 이처럼 농암종택은 그 풍광만으로도 한번쯤 가볼만한 곳이다.

☛퇴계 오솔길(예던길)을 따라가면서 보라
퇴계 예던길(녀던길, 가던 길)은 퇴계가 노년에 사색을 하며 즐겨 거닐던 옛 오솔길이다. 퇴계 선생은 이 길을 따라 청량산을 오르내리며 시를 남겼고, 퇴계 선생의 14대 손인 시인 이육사의 생가도 근처에 있다. 이육사 시인은 일제 치하에서도 민족혼과 애국정신이 담긴 많은 시를 쓰며 독립운동을 하다 1944년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퇴계(1501-1570) 선생은 백운지교에서 미천장담-경암-학소대-농암종택-월명담-고산정으로 이어지는 6km의 강변길을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극찬했다. 400년의 역사가 있는 이 길은 지금도 그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예던길’은 ‘도산 12곡’ 중 9곡에 나오는 시에서 따온 이름이다.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뵈/ 고인을 못 뵈도 예던길 앞에 있네./ 예던길 앞에 있으니 아니 녀고 어쩔고’. 여기서 ‘예다’는 ‘가다’의 고어로서 ‘예던’은 ‘가던’의 뜻이다. 도산서원에서 청량산까지, 낙동강을 따라 이어지는 이 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변길로 알려져 있다.

☛천천히 걷는 예던길
퇴계 이황이 거닐던 오솔길을 따라가 본다. 퇴계 선생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 오솔길은 낙동강과 청량산의 운치와 멋을 그대로 보여준다. 퇴계 예던길은 단천교에서 시작해 청량산 자란봉(해발 806m)과 선학봉(826m)이 보이는 전망대를 거쳐 가송리의 농암 이현보 선생의 종택을 지나 고산정에 이르는 길과 도산서원 입구에서 시작해 퇴계종택-하계마을-광야오솔길-이육사 문학관으로 이어지는 두 개의 길이 있다. 어느 길이든 그림 같은 풍광을 볼 수 있으며 때 묻지 않은 자연 풍치를 보며 지친 심신을 달랠 수 있다. 도산서원에서 고개 하나를 넘으면 나타나는 퇴계 이황 선생의 종택은 퇴계 선생의 13대 손이 없어진 옛 종택의 규모를 참고해 정면 6칸, 측면 5칸으로 새로 지었다. 종택에서 남쪽으로 약 1km 가량 떨어진 토계리 건지산 남쪽 산봉우리에 선생의 묘소가 있다. 단천교에서 가송리로 이어지는 예던길의 길이는 4㎞. 걷는 데 1시간쯤 걸린다. 수직으로 솟은 기암절벽을 머리에 이고 그 밑으로 힘차게 흘러가는 강물을 따라 터벅터벅 걷는 맛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가는 길(지역번호 054)=중앙고속도로 남안동 나들목에서 나와 안동에 진입한 후 도산서원 방향 35번국도를 타고 30분쯤 가면 도산면 온혜리가 나온다. 여기서 청량산 쪽으로 5분 정도 올라가면 국도변에 농암종택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중앙고속도로 풍기나들목에서 나와 영주→봉화→봉성→명호→청량산→가송리로 가는 방법도 있다. 서울 청량리역, 부산 부전역, 동대구역에서 안동역 가는 열차가 있다. 시간 문의: 안동역(856-7788). 동서울터미널에서 안동행 버스 수시 운행.

☛추천 맛집=안동의 음식으로는 제사음식을 평소에 만들어 먹는 헛제사밥과 연근해에서 잡은 고등어를 염장 처리해 하룻밤 재운 간고등어가 유명하다. 또 닭을 토막 내 고춧가루 없는 양념으로 버무려 찐 안동닭찜과 고두밥에 무․고춧가루․생강즙․엿기름을 섞어 발효시킨 안동식혜도 빼놓을 수 없는 음식. 하회마을과 안동댐 주변에 헛제삿밥 전문점이 많다. 안동민속음식의집(821-2944), 솔밭식당(857-7907), 까치구멍집(821-1056) 등. 안동댐 인근의 양반밥상집(855-9900)은 간고등어 전문점이다.

☛잠자리=하회마을에서 숙박(민박)이 가능하며 시내에 안동파크호텔(859-1500), 호텔갤러리(842-0066) 등 숙박시설이 많다. 농암종택에서 하룻밤 머물 수 있다. 종택 입실은 오후 4시이며 퇴실은 다음 날 오전 11시다. 이용 요금은 방에 따라 하룻밤 6-12만원이다. 농암종택 홈페이지(www.nongam.com, 054-843-1202)에서 예약을 받는다. 이밖에 안동 관내에 흩어져 있는 지례예술촌(822-2590), 임청각(853-3455), 수애당(822-6661), 치암고택(858-4411)에서도 숙박 가능.
☛유용한정보=도산서원관리사무소(856-1073),안동관광정보홈페이지(www.tourand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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