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석 칼럼>인간의 고통과 공동체 : 공공선 회복이 모두의 행복을 보장한다
<김 석 칼럼>인간의 고통과 공동체 : 공공선 회복이 모두의 행복을 보장한다
  • 성광일보
  • 승인 2016.06.1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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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석/건국대 융합인재학부 교수

▲ 김 석/건국대 융합인재학부 교수
2011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우리나라 정신질환실태에 관한 역학 보고서에 따르면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한 사람이 전체 인구의 27.6%, 즉 10명 중 3명이나 된다.

또 성인의 15.6%는 살면서 한 번 이상 심각하게 자살을 고민해본 적이 있으며,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비율도 예전보다 높아졌다. 최근 유행하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이런 경향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어찌 보면 문명이라는 조건 자체가 정신적 고통의 원인이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문명은 인간의 본능을 억압하고 길들이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에 문명인들은 불가피하게 신경증과 같은 정신장애를 겪을 수밖에 없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맞닥뜨리는 세 가지 근본적인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첫 번째 고통은 육체로부터 온다. 상대적으로 연약한 육체를 가진 인간은 내부와 외부로부터 오는 끊임없는 자극 때문에 고통 받는다. 그리고 생리적 균형이 깨지면서 생기는 질병과 욕구에 시달린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술이나 약물은 육체적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인간은 욕구를 적절하게 통제하면서 점차 고통을 극복한다. 다음으로 외부 세계가 주는 고통이 있다.

추위나 더위 같은 것 뿐 아니라 맹수의 위협이나 자연재해가 이런 예들이다. 인간은 과학기술을 통해 자연을 정복하면서 이런 위험을 다스려 왔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이 자연으로 부터 당하는 고통도 줄어들고 있다. 마지막 세 번째는 타인들이 주는 고통이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타인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 수밖에 없는데 사회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타인 때문에 큰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

육체로부터 오는 고통이나 외부세계의 고통은 피할 수 있지만 타인이 주는 고통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회피자체가 어렵기에 가장 힘들다. 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묻지마' 범죄를 떠올리면 된다. 고대의 어느 시인이 노래했듯 인간은 서로에게 가장 반가운 존재이면서 가장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타인으로부터 오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프로이트는 인간이 도덕이나 종교를 발달시키고 타인과 협력하려고 하는 이유가 사회적 고통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이웃을 사랑하라'나 '살인하지 말라'는 도덕률이나 종교의 계명은 인간이 인간에게 갖는 적대감이나 공격성을 순치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프로이트의 설명은 도덕이나 종교는 인간이 타인이 주는 근원적 두려움을 피하기 위한 방어 작용의 산물이라는 입장을 전제한다.

그러나 인간은 단순히 타인이 두렵기 때문에 도덕이나 사회 제도를 만든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도덕이나 선이 방어의 산물이라는 소극적 입장은 왜 인간이 공동의 선을 위해 때로 자기희생까지 불사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인간은 꼭 타인에 대한 잠재적 두려움이나 계산된 이타성에 따라서만 행동하지 않으며 때로는 적극적으로 타인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기 위해 힘을 모으기도 한다. 연대와 협력은 인간이 자연계의 최종 지배자가 될 수 있게 만들어준 힘의 원천이다. 실제 많은 역사적 사례가 보여주듯 인간은 타인에 대한 공감의 정서와 공동체에 대한 배려심을 발달시켜 왔다.

사회계약론자인 장 자크 루소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자기 보존을 위한 자기애도 있지만 동시에 동족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심도 본래 있기 때문에 모두를 위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루소는 인간이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존하기 위한 경제적 목적이나 무정부 상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공공의 선을 도모하려는 일반의지를 자기 속에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인간이 공동체를 만드는 이유는 도덕이나 법을 강제하고 치안을 지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목표와 선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공동체 속에서만 자신의 본성을 최대한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공공의 선이나 인간의 이타성은 공동체적 관계와 신뢰가 확립될 때만 가능하다. 공동체가 파괴되면 그 순간부터 서로는 서로에게 지옥이 된다.

최근 우리 사회에 벌어지는 위기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공공의 선을 지키려는 마음과 관계의 실종이다. 언제부터인가 사회의 결속을 깨뜨리는 경제적 불평등과 경쟁주의 구도가 심화되면서 공동체의 생존과 상생보다는 나 하나의 이익만 챙기고 살아남으면 된다는 이기주의 논리가 팽배해지고 사회적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 최근 잇따라 터지는 전,현직 검사장들의 스캔들과 공직자들의 부정부패, 국방부의 방산비리와 같은 추문들은 이런 현상과 연관이 있다. 그러나 이런 근본적인 위기를 바로잡기보다 눈에 보이는 미봉책에 급급한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기 위해 시급한 것은 개혁이나 경제성장이 아니라 무너진 공동체적 유대와 공공선을 회복하는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 샌덜은 개인들이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상호 책임의식과 연대의식을 가져야 하며, 좋은 사회를 위한 구성원들의 목표의식이 뚜렷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 관리나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과 국가를 위한 공공선의 정립이다. 구성원이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사회의 전망이 부재하면 프로이트가 말한 것처럼 타인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며 고통은 점점 커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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