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북치고 장구치고
김정숙의 북치고 장구치고
  • 성광일보
  • 승인 2017.07.13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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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해 !>
▲ 김정숙/논설위원

존나 잘해! 존나 잘해! 존나 잘해!
횡단보도 앞에서 초록 불을 기다리는 동안 고등학생들이 '존나 잘해!'를 7번 말했다. 
칭찬인 듯 욕인 듯 아리까리한 '존나 잘해!'를 곱씹는 동안 반가운 초록 불에 숨통이 트이며 자전거 페달이 돌았다. 바퀴가 구르는 동안 뒤통수에서 또 다시 '존나 잘해!'가 들렸다. 
칭찬이었다. 욕이 아니라 칭찬이었다. 잘한다는 그 무엇이 수학 과목이었고 그 대상은 무리들 중에 끼어 있었다. 
'넌 수학을 존나 잘해!”
존나 잘해!를 따라 했더니 ‘존나 잘해!'가 '매우 잘해!'나 '참 잘해!'보다 억양이 강해서 수학을 어지간히 잘하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수학을 꽉 잡은 아이구나 싶었다.
욕 같은 대화로도 칭찬이 가능한 아이들을 바라보며 "아이구, 이놈들아! 말 좀 곱게 하지!”라고 꼰대 짓을 하려다가 그만뒀다. 
한참 욕도 할 때지. 
그것도 그러다가 말지.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고 언니가 첫 직장 생활을 시작 했을 때 큰 오빠는 저녁마다 엄마 방에 마실을 와서 언니의 회사생활 애기를 듣곤 했다.   
몹시도 추웠던 겨울 날, 그날도 우리는 예전처럼 엄마 방 아랫목에 발을 넣고 언니의 상사가 야근을 시켰는데 일이 하두 많아서 하루 종일 쉴 새도 없었다느니 그래서 점심밥은 김치찌개를 시켜 먹었다느니 하는 얘기를 들었다. 
언니는 사회생활이라곤 꼴랑 호텔 지배인으로 끝장을 본 오빠에게 사회생활의 코치를 받는다고 회사이야기를 줄줄이 이어갔다. 오빠가 언니의 직장생활을 코치하는 동안 나와 엄마는 여리디 여린 언니가 사회라는 황량한 벌판에 홀로 나간 것이 대견하고 신기해서 윗목에서 윙윙거리며 봐달라는 TV드라마도 무시한 채 언니와 오빠의 얘기를 들었다. 
그러던 중 언니가 툭! 던 진 한마디에 엄마 방은 순식간에 한기로 가득했다.  
“아이! 쪽팔려!”언니가 이렇게 말했다. 
순간 군고구마를 까던 엄마의 손도 이 한마디에 TV드라마의 일시정지 장면처럼 멈췄다. 
언니의 입에서 튀어 나온 듣도 보도 못한 금시초문의 신조어를 엄마와 내가 주섬주섬 무마하려 애썼지만 순식간에 오빠의 냉랭한 눈빛이 언니의 눈에 꽂혔다.
“쪽 팔려?”
“그게 무슨 말인데?”
“그것도 말이야?”
“네가 몇 살인데 그런 말을 하는 거지?”
“회사에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오빠의 호통에 언니와 나는 들숨과 날숨이 순차적으로 드나 들 몇 분 동안 들숨에서 숨이 멎고 엄마는 “웅, 꿍!”하며 날숨을 더 쉬었다. 
훗날 시간으로 치자면 오빠보다 훨씬 긴 기간 동안 사회생활을 했던 언니에게 오빠가 했던 처음이자 마지막의 사회생활 코칭이었다. 
코칭의 핵심은 “고운 말 써라!”였다. 난 오빠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다. 
쪽 팔리다는 말이 자신의 족이 팔리거나 얼굴이 뜨겁도록 부끄럽거나 수치스럽다는 말 같은데 뭐 그 말이 그리 큰 욕이라고 목울대를 넘어가던 고구마도 놀라게 할 일이었을까 싶었다. 
남자들은 친구들끼리 목소리도 높이고 욕도 하면서 대화중인지 싸움중인지 모를 소리로 소통하면서 언니가 쪽팔린다는 말을 밖에서 배워온 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크게 야단을 쳤는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가 없으니까 아버지를 대신해 가정을 보살피려는 의도였다고 생각하니 오빠의 마음이 이해됐다. 
고운 말, 거친 말, 예쁜 말, 미운 말. 
말은 마음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말이 거칠어지면 행동도 거칠어지는 건 사실이다. 
정장을 차려입고 구두를 신었을 때의 행동과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었을 때 행동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격은 변하는 게 아니니 그다지 맘 쓸건 아니라고 보는 데 말이 거칠어지면 들리는 사람에겐 자존감이 낮아지고 저 평가 받는 것처럼 느껴지니 유쾌한 게 아닌 건 사실이다. 
“임마!, 이 자식아!”가 가깝고도 친한 사이라서 부르는 친구끼리의 소통 방법인 것처럼 말이다. 
단지 조심할 건 제 3자가 함께 있을 때도 그렇게 소통한다면야 손 좀 봐줘야겠지만 제 3자 앞에서도 그렇게 한다면 그 친구는 이미 친구가 아니다. 
친구의 격조를 떨어뜨릴 작정으로 그렇게 했을 수도 있고 사리분별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미숙아일수도 있다. 
친구의 격조를 떨어뜨리려고 작정한 친구들은 많이 봐 와서 아는데 그렇게 고의적인 사람은 거친 말이나 욕으로 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고단수의 절묘한 방법으로 상대의 격조를 떨어뜨리는 방법을 택한다.
욕이나 거친 말로 상대의 격조를 떨어뜨리려는 방법은 동시에 자신의 격조도 떨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존나 잘해!’를 말하다가 얘기가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튼 ‘존나 잘해’나 ‘존나 싫어’는 아이들 세상에서 일상어가 된지 오래다. 오히려 더 진화된 ‘개 좋아, 개 싫어’가 신조어로 나왔고 더 업그레이드 된 '빡 친다!'(화난다, 열 받는다.)도 나왔다. 
그렇다면 우리 기성세대들은 아이들의 '존나 잘해’를 어떻게 하면 고운 말로 인도할 수 있을까? 
이럴 땐 말하나 마나
“냅둬!”다. 
그냥 냅두는 게 상책이다. 
냅두면 지그들끼리 쓰다가 버린다. 
언니도 쓰다가 버렸고 나는 무진장 쓰다가 숱하게 버렸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도 때때로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내버려 두면 또 다른 신조어로 대체하거나 성인이 되면서 그 말의 유치함을 스스로 알게 된다. 
유치함을 알게 된다는 건 어른이 된다는 거고 어른이 된다는 건 더 이상 치아에 유치가 없다는 의미다. 
그러니 이럴 땐 유치가 빠질 때까지 그냥 냅두는 거다. 
달리는 자전거 뒤통수에 '존나 잘해!’가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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