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있는 놈: 기리와 기무
의리있는 놈: 기리와 기무
  • 성광일보
  • 승인 2018.07.25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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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범/세종사이버대 교수/국민경제정책연구소 소장
김상범/세종사이버대 교수/국민경제정책연구소 소장

우리와 비슷한 동양의 도덕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일본에서 의리는 의무에 앞서는 도덕적 기준이었다. 기리(義理ぎり)는 의리요, 기무(義務ぎむ)는 의무의 일본식 발음이다. 사무라이에게 국가나 사회, 인간에 대한 도덕적인 의무보다는 주군(主君)에 대한 의리가 더 중요한 덕목이었다.

바로 이 의리는 서양의 도덕적 기준에는 없는 용어이다. 의리없는 놈이라고 서양사람들이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으리라. 의리를 굳이 영어로 번역하자면 faith(믿음)나 fidelity(신의)로 할 수 있겠으나 정확한 번역은 아닐 것이다. 동양에서 말하는 의리는 '상대방의 신의에 견주어 당연히 지켜야 할 도리'로서 더 이해될 수 있다. 믿음이라는 감정보다는 믿음에 대응하는 의지라는 이성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도리라는 것은 오리지 믿음이나 은혜를 준 사람의 관점에서 판단된다. 그것이 옳든 그른 것이든 말이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의리라는 판단 기준은 다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하고자 할 때 자주 활용된다. 의리없는 놈은 천하의 몹쓸 놈이요, 가까이 해서는 안될 놈으로 간주된다.

반면 서양에서는 그 사람이 정직한지 부정직한지, 협조적 또는 비협조적인지를 가지고 양과 염소를 구분한다. 타인의 있는 그대로의 성품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원래 정직한 사람은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정직하고 협조적인 사람이다. 나라는 일개 개인에 대한 주관적인 개념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우리가 통상 말하는 의리있는 놈이란 나에게는 당연히 정직하고 협조를 해야 하고, 나의 적이 되는 다른 사람에게는 정직하거나 협조적이면 안된다는 개념이다. 특히 조직을 위해 죽고 사는 조폭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의리가 있다 없다라는 것이 다분이 주관적이다. 

일본사람들에게 의리는 더 한층 고통스럽다.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에서 일본사람들에게 의리는 받은 은혜에 대한 보답이라고 적고 있다. 주군이 사무라이에게 먹고살 음식을 주었다는 것은 은혜를 주었다는 것이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의리인 것이다. 의리는 개개인의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도리이기 때문에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의무와 그 가치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때로는 아니 많은 경우에서 주군에 대한 의리와 사회에 대한 의무가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때 사무라이들은 영화 <47 로닌>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주군에 대한 의리를 먼저 실천한 이후 사회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기위해 셋푸쿠 즉, 할복을 함으로써 양자를 일치시켰다.

우리 주위에도 기리(의리)와 기무(의무)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대통령의 주위에는 주군에 대한 의리는 지키려고 하면서 자유민주국가에 대한 시민으로서의 의무는 등한시하였던 것이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이었던가. 의리와 의무라는 양자를 일치시키기 위해 할복했다는 소식은 더군다나 기대할 수 없다. 진영논리에 빠져 국가와 사회뿐만 아니라, 인간성에 대한 의무를 도외시한 채 소집단의 의리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지배하는 한 의리가 가지는 매혹적인 가치는 결코 존중받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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