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책임과 실천: 추기급인(推己及人)과 경공(景公)
정치의 책임과 실천: 추기급인(推己及人)과 경공(景公)
  • 성광일보
  • 승인 2019.01.0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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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항석 / 미래사회 정항석 연구소장
정항석
정항석

‘나만 생각할 것인가!’

비단 이러한 주제는 어느 한 가지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하여 많은 말들이 있으나 꽤나 오랫동안 전해지는 고사(故事)의 내용은 ‘추기급인(推己及人)’으로 압축된다. <논어(論語)> 등 다양한 곳에서 출전을 두고 있는 이 말은 ‘자신의 처지를 미루어 다른 사람의 형편을 헤아린다’ 는 의미이다. 이는 ‘제 배 부르면 남의 배고픈 줄 모른다’는 속세의 흔한 말과 궤를 같이한다. 흔한 말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말이 오랫동안 그리고 갖은 고서 등에 많이 등장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동시에 이행하기 어렵다는 것도 알려준다.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 이는 진(晉)나라 전현(傅玄 217-278)의 <부자(傅子) 권일(卷一) 인론(仁論)>에도 그리 전한다. ‘무른 어질다고 하는 것은 타인에 대하여 자신이 할 것을 진정으로 다 하는 것이니, 원치 않은 것은 베풀지 말 것이며 그리 하고자 한다면 세상 모두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것이다(夫仁者 蓋推己以及人也 故己所不欲 無施於人 推己所欲 以及天下). 당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부리고 부림을 받는 계층’사회이었으니 사회적 예의와 관계 등과 비교하면 오늘날의 매너와 에티켓에 해당하는 이런 이야기가 빈번하게 회자(膾炙)되었을 것은 자연스럽다. 하여, 송(宋)나라 주자(朱子) 혹은 주희(朱熹 1130-1200)의 <사서장구집주(四書章句集註) 중용장구(中庸章句) 제일삼장(第一三章)> 그리고 <여범직각서(與範直閣書)> 등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눈에 띄게 적어놓고 있다. 명(明)나라 해서(海瑞 1514-1587)의 <해서집(海瑞集) 상편(上編) 순안현시기(淳安縣時期) 흥혁조례(興革條例)>, 청조(淸朝)의 장혜언(張惠言 1761-1802)의 <승졸재가전(承拙齋家傳)> 등에는 보다 질책하는 듯이 나와 남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다. 위의 고서적들을 굳이 나열한 것은 나와 남의 관계, 특히 공적 수행을 하는 이들에 대하여 언급된 일이 많았으며 이 때문에 일이 성사되고 그르치게 되었다는 것을 이르고자 한 것이다.

추기급인에 대한 고사(故事)는 많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춘추시대(春秋時代 BC770-BC403)에 있었던 일이다. 오늘날 중원의 산동(山東)반도에 해당하는 요동지역에 자리한 제(齊, BC1046?-BC 221)나라가 있었다. <안자춘추(晏子春秋) 내편간상(内篇谏上)>에 전해지는 내용이다.

때는 지금처럼 추운 겨울이었다. 얼마나 눈이 많이 내렸는지 알 수 없으나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내린 대설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눈 내리는 설경은 참으로 볼만한 경치가 아닐 수 없다. 국정(國政)에 몰두하여 그러한 전경을 볼 기회가 얼마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름이 무야(無野)이었던 경공(景公?-490 재위 BC548-490)이 군주로서 제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때이었다. 경공은 밖을 보면서 설경에 취해 있었다. 궁궐(宮闕)이었으니 조경(造景)이 잘 되었을 것이지만, 설령 주변의 정원을 가꾸지 않더라도 소복하게 쌓인 눈의 경치는 누구라도 아름답다고 생각할 것이다. 게다가 따스한 곳에서 밖의 설경은 더 그럴 수 있다. 경공은 따듯한 방 안에 있었고 털이 많은 짐승의 가죽과 털로 된 호백(여우 털옷, 狐白)을 입고서 설경의 미려함에 빠져 있었다.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밖의 전경만을 바라보기만 했던 모양이다. 그때 안영(晏嬰) 또는 안자(晏子 ?-BC500)가 궁으로 들어왔는데도 경공은 창문 밖 가득 쌓인 눈을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에 관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경공은 안자 역시 함박눈의 경치에 흥취를 느꼈을 것이라고 여기고 날씨가 겨울답지 않게 푸근하다고 다소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흠, 올해 날씨는 이상하군. 사흘 동안이나 눈이 내렸건만 마치 봄날처럼 춥지가 않군(怪哉 雨雪三日而天不寒).”

누구도 묻지 않았는데 혼잣말을 하다가 안자가 다가오자 이 말을 전했다. 이에 안자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말 춥지 않는지요(天不寒乎)?”

반문(反問). ‘굳이 경공의 말에 댓구할 필요성을 못느낀다’는 그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기류가 두 사람 사이에 오갔는지는 짐작할 일이나, 안자는 다음과 같이 말을 꺼낸다.

“제가 듣기로 현군(賢君)의 옛말에 따르면 이렇다고 합니다.”

“나의 배가 부르면 남이 굶주릴까 염려하여야 하고(飽而知人之飢), 내가 따뜻하면 남이 춥지 않을까 염려하며(溫而知人之寒), 내가 편안하면 남이 노고에 처해 있지 않을까를 배려한다(逸而知人之勞)고 합니다. 주군께서는 이를 알지 못하시는 것 같군요(今君不知也).”

눈의 호경(好景)을 감상하다가 느닷없이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이 말을 들은 경공은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안자는 군주가 들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말을 덧붙였다(晏子諫曰).

“군주는 백성의 슬픔을 낙으로 여기지 않습니다(君者 不以民之哀爲樂). 군주가 그러한 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이미 그러한 길로 접어든 것이지요(君不勝欲 既築臺矣). 이제 안락(安樂)함에(여기서는 술잔의 단위로 보는 종鍾을 이렇게 해석) 다시 처하려 하신다면 이는 백성에게 세금 등을 더 거두게 두는 가렴(苛斂)이 있게 되는 바(今復爲鍾 是重斂於民也), 이는 백성의 슬픔이 될 것입니다(民必哀矣).”

안자가 경공의 눈치를 살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여기까지의 대화만으로도 심약하거나 인격이 덜된 위정자들은 부화를 참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다음의 안자는 쐐기를 박듯이 말을 맺고 있다.

“무릇 백성에게 각종 세금을 부과시키거나 부역을 하게 하여(斂) 위정자가 즐거움을 찾으려 하는 것(夫斂民而以爲樂)은 군주로서 백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세세히 가리어 살펴야 할 것을 하지 않은 것(不詳)이니, 치국(治國)하려는 이들이 가져야 할 덕목이 아닙니다(非治國之道也).”

이 말이 그때, 그러니까 눈이 오던 그 날의 설경에 빠진 이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잠시 위정자도 좋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공적인 일을 하는 이가 공적인 일을 하는 장소에서 할 일을 아닌 것은 맞다. 게다가, 얼마나 따스할지는 알 수 없으나 여우의 털옷을 입고 따스하게 하였을 집무실에서 설경을 보고 ‘내가 보는 이 아름다운 광경은 누구에게도 따스한 곳에서 아름답게 보일 것이라는 생각’은 위정자가 가져야 할 착각은 아니라는 것이다.

위와 같이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대화의 내용에서 필자가 보는 아름다운 것은 따로 있었다. 아랫사람인 안자의 쓴소리에도 불구하고 경공이 보여주는 그다음의 태도이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전하는 네 글자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경공은 이제 그만 두었다(景公乃止).’

수정미학(修正美學)! 가히 그렇다.

경공은 안자에 대한 어떠한 질책이나 훈교(訓敎)도 없이 군주에 대한 도리를 다시 생각하고 그 말의 가치를 받아들인 것이다. 국정이나 공적인 일을 하면서 실수나 실책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수정하려는 것은 쉽지 않다. 자신의 실수를 다른 사람의 지적으로 이를 수용하거나 인정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또한 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훌륭한 이는 많지 않다. 그래도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이런 면에서 경공의 공적 태도는 참으로 아름답다.

고서는 말한다. 사람들은 사회적 인간관계를 해치는 부정적 사고와 행위를 걷어내기 위해서 수많은 번민과 고민 등을 동원하고 관계에 대한 철학과 미학 등 지적 도구를 발굴해왔다. 우리는 물어야 한다. 무엇 때문에 일류와 최고의 학력(學歷)을 추구하는가! 군림하려고! 앞서 했던 이야기에서 생각할 것은 이렇다.

첫째, 자기가 배불리 먹으면 누군가가 굶주리는지 생각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것을 힐난하는 것이다. 나와 남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더욱이 더 생각할 일이다. 북한산 자락, 서초동, 여의도 그리고 궁궐같은 집들이 있는 곳은 따스할까? 그 따스한 장소에서 바라보는 설경은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같이 사는 곳에서 같이 아름답게(?) 살 수 있는 것을 더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일까!

둘째, 실수는 누구나 한다. 하지만 이를 반복하거나 면책을 위한 ‘이상한 언행(?)’을 하는 공적인 수행자(위정자, 공적 단체의 의사결정자 등)들이 보이는 작태에 대하여 질책하는 것이다. 내가 하기 싫고 내가 듣기 싫은 것은 누구도 그러하다. 게다가 쌈닭같이 쏘아보면서 내지르는 부정적 감정의 비아냥을 쏟아내는 짓(?)은 아무도 반기지 않는다.

셋째, 안자처럼 쓴소리를 하기는 쉽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려는 이는 드묾다. 경공의 모습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이 까닭이다. 설경에 대한 찰나적 감상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위정자로서 이에 빠질 것을 경계하게 해준 안영의 조언을 받아들인 것이다. 자존심은 반성과 수정함으로써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큰 인물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에 오류가 있다면 이를 수정할 수 있을 때 실로 그 아름다움이 우러나오게 된다.

세월은 달라져도 겨울은 춥고 배고프고 삶이 고달픈 계절의 대명사이다. 이러한 계절에 ‘새해는 나아질까’, 정치권에서 ‘어떠한 희망의 소리가 들려올까’를 기대하면서도 서민경제, 남북관계 그리고 청와대 내부 업무 폭로 등으로 2019년 새해 벽두를 채우는 언론에서 ‘누구도 반성하고 수정하는 모습이 있다’는 아름다운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아름다운 것들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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