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언성히어로' 워커장군과 워커힐호텔
한국전쟁의 '언성히어로' 워커장군과 워커힐호텔
  • 정성은 기자
  • 승인 2019.10.23 2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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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수/건국대 사학과 교수
한정수/건국대 사학과 교수
한정수/건국대 사학과 교수

우리 광진구의 아차산은 구비돌아가는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입지를 갖고 있다. 운길산과 검단산 쪽에서 떠오르는 해돋이를 볼 수도 있고, 메트로 서울의 먼지입자로 더욱 붉게 느껴지는 노을 속 서울의 모습도 가슴에 담을 수 있다. 그러한 아차산 한쪽 기슭 워커힐 호텔에 담겨진 다음의 비문은 우리의 현대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늘 우리가 장군을 특별히 추모하는 것은 한국전쟁 초기 유엔군의 전면 철수를 주장했던 미국 조야의 지배적인 분위기 속에서 유독 장군만이 홀로 한반도 고수를 주장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공산화를 방지하여 우리의 오늘을 가능케 한 그 공덕을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비문의 주요 키워드는 한국전쟁, 유엔군의 전면철수 주장에도 불구하고 홀로 한반도 고수를 주장하고 지켜 한반도의 공산화를 방지한 장군이다. 그는 누구일까? 한국전쟁의 영웅 맥아더사령관은 아니니 하나하나 퀴즈를 하면서 알아가 보자.

먼저 그를 알기 위해 2차 세계 대전의 영웅 조지 패튼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독일 롬멜의 전차군단을 물리쳐 전세를 바꾸는데 기여한 그는 '패튼 장군의 불독'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두 번째, 1948년 그는 일본에 본부를 둔 미8군 초대사령관으로 6·25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전선(일명 워커라인)을 지켰던 인물로 "지키느냐 아니면 죽느냐(stand or die)"라는 배수진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고,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후퇴란 있을 수 없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한국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라고 한 것이다.

두 번째 단계에서 약간의 힌트가 괄호 속에 있다. 그래도 모른다면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가보자.
세 번째, 2016년에 상영된 '인천상륙작전(작전명 크로마이트계획)'은 맥아더사령관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이를 가능케 한 것은 낙동강 사수였다. 또 2019년 개봉된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역시도 그로 인하여 재조명될 수 있었다. 지독한 군인정신으로 워커라인을 꿋꿋이 지켜낸 결과가 결국 인천상륙작전과 합해져 전쟁의 큰 흐름을 바꾼 것이다. 그의 불독같은 끈질김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네 번째, 중장이었던 그는 1950년 12월 23일 당시 이승만대통령이 아들 샘 워커대위에게 내린 은성무공훈장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의정부로 가던 중 트럭과 충돌하여 6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실제 사망한 곳은 현 도봉구 도봉1동 596-5번지라는 표지석이 있다. 참고로 그들 부자는 미국 역사상에도 흔치않은 별 넷의 대장이 되었다. 아들 샘 워커 대위는 1953년 전쟁이 종료될 때까지 참전하였다.  손자 역시도 주한미군으로서 헬기 조종사로 근무하였다. 3대가 한국과 인연을 가진 것이다. 그의 시신은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다섯 번째, 그의 갑작스런 서거에 맥아더는“미 제8군사령관으로서 그는 탁월한 군사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하였으며, 나는 바로 지금 그의 대장 승급을 건의하였던 것이다. 작전에 있어서의 그의 용감성은 그와 같이 일하는 자가 다 같이 찬앙(讚仰)하는 바였으며 그를 잃은 것은 우리나라뿐이 아니라 한국의 평화를 위하여 우리와 연합한 모든 국가가 다같이  석애(惜哀)하여지는 바일 것이다.”(『동아일보』 1950년 12월 25일)라 하였고 이승만대통령 역시도 미8군사령부를 찾아 조의를 표하였다.

여섯 번째, 1951년 1월 22일자 『민주신보』를 보면 당시 국방부 제3국에 근무하는 여자의용군 하사 김기생 외 16명이 1개월 분 봉급전부를 모아 “적으나마 우리 대한민국을 위하여 성스러운 희생을 한 前 미 제8군 사령관 故워커대장의 동상 자금으로 이용해 달라”고 기탁하였다 한다. 
이로써 장군을 위한 추모동상 등이 조성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일곱 번째, 『동아일보』 1962년 7월 3일자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한국동란 중 이 땅에서 전사한 장군을 기리기 위해 워커 힐로 이름지은 이 관광지대에는 골프, 승마, 옥내외수영장, 볼링, 나이트클럽 등 각종 오락시설에 한국의 특유한 냄새를 풍길 수 있는 한국민속관도 갖추어져 있다.”고 하였다.
이 쯤 되면 이 장군의 이름이 일단은 워커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 이름은 월튼 해리스 워커(Walton Harris Walker, 1889~1950)이고 그 아들은 샘 심즈 워커(Sam Sims Walker, 1925~2015)이다.

일곱 번째에 등장하는 워커힐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워커힐호텔이다. 전사지는 워커힐호텔이 있는 곳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도봉구에 있는 표지석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동아일보』 기사에서 확인되듯 이 땅에서 전사한 월튼 H 워커장군을 기리기 위함이 그 호텔 명칭에 반영되었다. 워커힐호텔의 준공은 '웅자드러낸 동양최대의 향락지'라는 기사(『동아일보』 1962년 12월 26일)에 소개되고 있는데, 이때 박정희 의장의 참석이 있었다고 전하였다. 그리고 호텔의 개관은 1963년 4월 8일에 이루어졌다. 개관기념공연에는 루이암스트롱 등이 참석하였다.

이처럼 워커힐 호텔에는 이념적으로는 워커장군의 추모를 위한 뜻이 담겨져 있었다. 지금은 유명연예인의 결혼식 장소로, 혹은 역설적이게도 북한의 고위급인사가 철저한 경호 하에 묵었던 장소로, 카지노가 운영되고 있는 곳으로, 화려한 쇼가 열리는 부의 대명사 같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시민의 머리에 워커힐호텔은 고급 및 향락의 대명사로 남고 한국전쟁의 영웅 워커장군을 기리는 언덕이라는 의미에서의 워커힐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고 있다.

현재 워커장군을 위한 대한민국에서의 추모는 도봉구 워커장군 표지석(2009.12.03.)과 추모제에서, 평택 미군기지에서, 칠곡군 낙동강세계평화 문화대축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워커장군의 흔적은 그의 이름을 딴 캠프나 하우스, 호텔 등에서도 찾아진다. 대구에 있는 캠프 워커, 부산 부경대학교 내 워커하우스, 그리고 광진구에 있는 워커힐호텔과 그 내에 있는 워커장군 추모비(1987.10.05.) 등이 그러하다. 이 추모비는 한미친선군민협의회에서 조성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광진구 아차산 자락의 워커힐호텔은 다른 곳과 달리 워커장군을 추모하면서도 그 명예를 높이사 조성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에는 적당한 위락시설이 없어 연간 3만 여명의 미군과 유엔 장병이 일본으로 휴가를 간다.”라 한 멜로이 유엔사령관의 언급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과 미국은 워커장군의 희생에서 알 수 있듯이 사실 혈맹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 상징 중의 상징은 월튼 해리스 워커장군과 그 일가라고도 할 수 있다. 시대가 바뀌긴 하였지만 '워커힐'이라는 이름의 상징성을 고려해서라도 워커힐은 다시 한미친선의 그리고 한국전에 참전한 유엔군을 위한다는 본래의 취지를 백분살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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