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갑장 나리(7)
<소설> 갑장 나리(7)
  • 이기성 기자
  • 승인 2019.12.27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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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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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군께서 글을 쓰셨군요? 전 사업에만 몰두하신 줄 알았는데.”
그가 원고를 썼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사업은 무슨, 살기도 힘든데 엉뚱하게 한눈을 팔았으니 사업인들 오죽했겠어요? 만날 헐떡대다 겨우 자리를 좀 잡았다 싶으니까 결국…….”
그의 아내는 글을 쓰던 남편이 지금도 마뜩잖은 듯 한숨을 쉬고 말했다.

“6·25 때 고아가 된 그이는 가슴에 맺힌 한을 글로 풀려고 했나 봐요. 문학만이 슬픈 영혼을 달랠 수 있다고 믿었던 거죠. 아무에게도 위로받지 못한 상처를 다소나마 보상받겠다는 일념으로 문학이란 버거운 짐을 지고 방황한 거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뒤집힌 거북이처럼 발버둥 치다 보니 늘 허기진 상태로 헐떡거렸죠. 선생님을 좋아했던 것도 아마 문학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을 거예요.”
그의 아내의 말을 듣다보니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문학에 대한 그의 열정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조금은 짐작되었다. 한때, 문학의 성취가 신분 상승은 물론, 미구에 앞길이 확 트일 거라는 황당한 꿈속을 헤매던 나처럼 그도 문학이 한 가닥의 희망이자 절망이었을 것이다.

“혹, 바깥분이 써 놓은 원고라도…?”
나는 가슴에 맺힌 한을 끝내 풀지 못하고 옹이처럼 안고 떠난 그의 영전에 유고집이라도 묶어주고 싶었다.
“떠나기 전에 모두 태워버리더군요. 남에게 짐이 될 수 있다면서….”
그렇다면 그는 진작 나의 값싼 호의를 뿌리치고 떠난 셈이었다. 남에게 폐가 되는 일은 철저히 피하는 그런 자세를 나 같은 사람이 본받아야 할 모습이었다.
그의 아내가 요사에 점심공양이 준비되었다고 했으나, 나는 속이 불편하다는 핑계를 대곤 갑장이 묻힌 묘소를 물었다.
“그이의 유언대로 화장한 유해를 강에 뿌렸더니 지금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그의 아내가 살짝 얼굴을 돌리고 어깨를 들썩일 때, 나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때마침 뿌연 시야에 밀려드는 하얀 뭉게구름이 마치 빙긋이 웃고 있는 갑장처럼 보였다. 창백한 얼굴에 오뚝한 콧날, 갸름하게 뚫린 구름 사이로 내비친 파란 하늘이 그의 서글서글한 눈매처럼 시원했다. 진작부터 거기에 날아든 솔개 한 마리가 험준한 산세를 정찰하듯 법흥암 상공을 빙빙 돌며 원을 그렸다.
나는 멀리 사라지는 솔개의 유연한 날갯짓이 택시를 타고 흔들던 갑장의 손짓과 흡사하다고 느끼는 순간, 시야가 다시 뿌옇게 흐려졌다. <끝>

 

김 영 한
·문학저널 문인회 소설분과 위원장
·(사)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사)한국문인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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