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선택받은 행복
<수필> 선택받은 행복
  • 이기성 기자
  • 승인 2020.08.3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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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옥경 / 한국문인협회 광진구지부 상임이사
유옥경
유옥경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는 세상, 앉아서도 천 리를 볼 수 있는 시대에 살면서도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유일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태어나고, 죽는 일이 아닐까 싶다. 

원하는 때에 조건 맞춰 태어날 수 없고, 살고 싶은 만큼 살다 죽고 싶을 때 죽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 나의 아버지는 죽을 때를 먼저 아시고, 자식들 사는 거 한 번 더 보고 싶다 하셨고, 서울 사는 세 자식의 집을 다 둘러 보신 후 귀향하시자마자 숨 돌리지도 못하신 체 저 하늘의 별이 되셨다.

벌써 12년 전의 일이다. 서울 사는 자식들 사는 모습 보고 싶다던 친정 부모님이 막내아들에서 하룻밤, 작은 아들네에서 하룻밤 묵으시던 중 불현듯 유언하셨다.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며 엄마를 가장 든든한 작은 아들에게 부탁하시었다. 뜻밖이었지만 유언이신지라 내일이 없을 듯하여 그 밤에 나는 우리 집으로 모셔왔었다. 

비브리오 패혈증에 생사를 넘나들다 겨우 목숨을 연명하신 아버지는 조금의 거동에도 숨을 헐떡이셨기 때문에 연일 자식들의 집을 옮겨 다니신 게 너무 무리다 싶어 자꾸 집으로 가신다는 고집에도 하루를 더 묵게 한 뒤 친정집으로 길을 나섰다.

내심 모셔다드린다는 핑계 삼아 고향 전주에서 그립던 음식도 먹고, 친구도 볼 수 있다는 부푼 마음에 나선 길인지라 즐거움이 반이었다. 
죽암 휴게소를 지나며 잠깐 쉬어가자 했지만, 손을 저으며 그냥 가자는 아버지의 뜻에 아파트까지 도착하여 주차하고 올라가는 사이 아버지는 아파트 복도 끝에서 그만 쓰러지셨고, 거실에 뉘자마자 5분도 체 버티지 못하시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그렇게 황망히 이별이 내게 올 줄 정말 몰랐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버지는 이미 죽음을 예견하셨고, 이모님의 꿈에 들어가시어 멀리 가야 한다며 언니를 부탁한다 했고, 작은 오빠에게도 엄마를 부탁했다. 또 엄마에게는 평생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다며 자식들 효도 더 받고 오라는 유언을 하셨다.

자랑스러운 딸이라며 귀히 여겨주시던 나의 아버지는 임종의 기회를 유일한 딸인 나에게 주셨고 살면서 늘 감사한 마음이었다. 또다시 욕심을 내어 엄마의 임종 자식도 꼭 나이기를 기도하며 12년이 흘렀고 욕심일 줄만 알았던 임종의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다.

평생 걱정 속에 사시던 나의 엄마는 자식 둘을 박사로 만드셨고 자식 둘은 학사를 만드셨다. 그러는 동안 건장하던 몸은 성한 곳 찾기가 어려웠고 나중에는 옷을 입는 일도, 혼자 목욕하는 일도, 걷는 것조차도 자유롭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지시더니, 끝내는 요도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다. 

3개월의 시한 선고를 받고 임종시설 병동에서 6개월을 버티시다 딸의 아들 장가가는 것만 보고 간다면 여한이 없다 하시더니 그 아들이 결혼하고, 긴 해외여행에서 돌아오는 걸 보신 후, 홀연히 아버지 곁에 가시어 별이 되었다.

푸른 5월이 시작되었고 아들 혼사를 9월로 잡고 나니 3개월 시한에 걸려 늘 좌불안석이었다. 아버지 칠순 잔치를 한 달 앞두고 할머니가 돌아가시어 상도 못 차렸던 아픈 기억이 있었는데, 이번엔 엄마가 손주 결혼 전 먼저 가실까 봐서였다. 

엄마는 씩씩하게 그러셨다. “내가 그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 같다”그래서인지 결혼식 날 2주 전부터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며 연명하시면서도 입술을 앙다물며 이따금 눈도 마주쳐 주시며 버텨내셨고, 보고 싶은 가족들 다 만나보신 후 가장 평화로운 모습으로 눈을 감으셨다.

소변이 끊기면 연명이 어렵다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 나는 엄마와의 이별을 준비했다. 의식이 없어도 마지막까지 귀는 열려 있다는 의학적 지식을 믿으며 이제는 더 아파하지 마시고 엄마가 사랑하는 하나님의 나라로 가시어 아버지와 편히 사시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날 밤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엄마는 주무셨다. 다음 날 아침 간호사의 점검시간에 깨어나서 그동안 자식으로서 못다 한 효도에 대해 용서를 구했으며,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시거든 우리 집보다 더 큰 부잣집에 자식으로 태어나시고, 자식을 만나거든 우리보다 더 훌륭한 자식들을 만나 더 큰 효도 받으시라며 마지막 한마디 사랑한다는 고백을 했었다. 

엄마는 다 들으셨을 것이다. 피멍이 들도록 앙다물던 입술이 풀리고, 잠시 후 들어 온 큰아들을 알아보시는 듯 잠시 눈을 떠서 보시더니 눈에 눈물이 고이셨다. 엄마 마음 안다며 지긋이 감겨준 눈을 그 뒤로 다시 뜨지 못한 체 30분이 체 안되 영면에 드셨다.

수시로 눈물겹게 그리웠고 눈물 나면 울기도 했다. 그 새 9개월이 훌쩍 지났다. 그래도 늘 위로가 되는 건 그토록 내가 원했던 부모님의 임종을 지킨 자랑스러운 자식이 될 수 있었다는 것, 제대로 이별식을 치르고 헤어졌다는 것이다. 살면서 누군가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 한다면, 난 서슴없이 엄마와의 이별식을 선택할 것 같다.

자식을 모두 출가시키고 양부모를 잘 보내드리면 인생의 숙제를 다 한 것이라고들 하는데, 그렇다면 난 인생의 숙제를 다 한 사람 중 하나이다. 그래서 나의 하루하루는 늘 평화스럽고 즐겁고 행복하다. 시가 생각나면 시를 쓰고, 친구가 생각나면 만나서 수다도 떨고, 맛난 밥도 먹고, 여유 시간에는 그림도 그리며 내 인생 최고의 안락을 누리고 있다.

이것이 선택받은 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 아닐까 생각하며, 욕심 없이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살고자 한다. “조금만 더”를 외치며 끝도 없는 욕망에 빠져 아직도 평화를 찾지 못한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들이 좀 더 빨리 평화롭고 행복한 여유를 즐기는 삶이 누리시기를 기원해주고 싶다.

<유옥경 프로필>

·사)한국문인협회 회원
·사)한국문인협회 광진구지부 상임이사
·사)국제펜클럽 회원
·사)한국예총 광진지회 사무국장
·사)한국 한울문인협회 신인문학상 수상
·사) 한국 한울문인협회 작가상 수상
·시집 《그 이름 하나로》외
<이야기속의 풍경소리>, <하늘빛풍경7>,<춤추는 인사동> 시화집 다수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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