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줌마, 이모님, 할머니①
<소설> 아줌마, 이모님, 할머니①
  • 이기성 기자
  • 승인 2020.09.22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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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 / 소설가.성동문인협회 회원
윤정/소설가

희주는 30분이 넘도록 두 번째 호출한 택시를 기다린다.
태풍 바비가 지나간 후 몇 번 줄기차게 비가 퍼부었다.

분리수거장에 물이 빠지지 않아 비닐이며 페트병이 둥둥 떠다닌다. 이제는 희주와 상관도 없는 그쪽으로 시선을 왜 보냈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철저한 분리수거.

아들에게 데리러 오라고 할 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순간 두 번째 호출한 택시가 희주 앞으로 다가왔다. 기사의 양해를 구하며 조수석에 무거운 가방을 올려놓고, 뒷자리에 앉았다.

“이곳 찾기 힘드셨나 봐요. 한 택시 취소하고 30분이나 더 기다렸어요.”
“네, 이 아파트 주차장 구조가 이상해서 입구를 잘 못 찾아요.”
“짐이 많아서 입구로 나가지 못했어요.”
“그래서 기사들이 이 아파트에서 호출이 오면 꺼린답니다.”
“고생하셨네요.”
“이 시국에 어디 여행 가시나요?”
“여행이라니요, 저 오늘 실직했어요.”
“어이쿠, 저런! 위로를 해드려야겠네요.” “마지막 취업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해고당했어요. 하하.”
“웃으시니 다행이네요. 무슨 일을 하셨는데요?”
“언제 볼지도 모르는 기사님께 속풀이나 할까요?”
“그러세요. 마음이라도 풀리게.”

실직한 오늘은 희주가 이 집에 온 지 한 달에서 3일이 모자란 날이다.

토요일인 어제 할머니 저녁밥을 챙겨주고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넣으니 7시가 다 되었다. 사모님이라 불러 달라고 했지만 한 번도 부른 적이 없는 안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내실로 통하는 중문이 닫혀 있으면 방해하지 말라는 무언의 표시라 용무가 있으면 전화를 한다.

“네, 아줌마.”
“저 쓰레기 버리고 집에 갔다가 내일 밤에 올게요.”
“그러세요.”
“고등어 조려서 주방에 아직 촛불 켜있고요, 할머니 식사하셨어요.”
“네, 고생하셨어요.”

‘정다운 직업소개소’ 정 실장으로부터 소개를 받고 찾아간 곳은 연예인들과 대기업 임원들이 많이 산다는 한남동 아파트의 펜트하우스였다. 90평대에서 일해 봤냐는 정 실장 물음에 70평까지 해봤는데 거기서 거기 아니냐고 호기롭게 답해서 면접을 보게 됐다.

입구에서 깔끔한 젊은이가 신분과 용무를 확인하고 철문을 열어 주었다. 잘 가꿔진 정원을 지나 벨을 누르니 외모로 보면 연예인 소리를 들을 만한, 피부에서 윤이 나는 젊은 엄마가 반겨 주었다.

“알고 오셨겠지만 저희는 초등학생 남매에 할머니와 강아지가 있어요. 평수가 넓어서 힘드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알고 왔어요. 그런데 펜트하우스라 정원이 있네요. 정원도 관리해야 하나요?”
“아니요. 정원 관리는 남편이 할 거예요.”
“할머니가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신다니 혹시 치매이신가요?”
“심하진 않고요, 아침에 가서 저녁에 오시니 하실 일이 별로 없을 거예요. 음식은 잘하시나요? 애들과 남편 식사를 챙겨야 해서요. 저는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되고요.”
“맛없다는 소리는 거의 듣지 않았어요. 간을 잘 맞춘다고 할까요.”
“한 달 동안은 이제까지 저의 집에서 일하신 이모님과 같이 지내셔야 돼요. 10년 이상 가족처럼 아이들 다 돌보며 집안일 다 해주셨는데 이제 나이 들어 여기저기 불편해서 더는 못 하신다고 해서요.”
“말하자면 인계인수네요.”
“그렇지요. 불편하시겠지만 그렇게 해주세요. 저 대신 이것저것 알려 주실 거예요.”

다음 날 간단히 일주일 동안 쓸 물건들을 챙겨서 입주를 했다. 먼저 반겨 주는 이모님은 70이 넘었다지만 희주보다 10년이나 많은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팔다리가 마른 편으로 건강해 보이지도 않았다. 이모님 방이라고 정해진 곳이 없고 아이와 같이 방을 쓰고 있었다. 방이 5개 있었지만 할머니와 엄마, 아빠, 아이 두 명이 각각 한 방씩 차지하다 보니 이모님 방이 없었다. 이모님이 나가도 역시 희주 방도 없을 것이다.

“방이 없어 불편하겠지만 우선 나는 애들하고 지낼 테니 막내 방을 쓰세요. 할머니 돌아가시면 방이 하나 생길 테지만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니......”
“그래도 혼자 쓰게 해주시니 고맙네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세요.”

오늘을 위해 새로 장만한 장미꽃 무늬 앞치마를 두르고 나가니 남자애가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고개를 숙인다. 초등학교 6학년생인 오빠는 반감을 숨긴 듯한 표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3학년인 여동생은 상큼하고 발랄하게 머리 밴드를 하고 희주의 인사에 반응하듯 살짝 웃는다. 희주는 이제껏 아이들과의 관계를 어렵게 생각한 적은 없다. 하루 이틀이면 가까워지고 길어야 1주일까지 가지도 않는다. 아이들인지라 눈 마주칠 때마다 웃어주고 관심 가져 주면 금방 가까워진다. 이 넓은 집 역시 일이 문제지 아이들과의 관계는 걱정하지 않았다. 강아지도 몇 번 짖더니 살랑살랑 꼬리를 흔든다. 웬만한 집에서는 거의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운다. 전에 있던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는 식탁 위로 뛰어올라 잘 차려놓은 반찬에 입질을 해서 버려 놓은 적도 있고 볼일 본 후 제 딴에는 덮어 놓는다고 한 똥이 나와 있어 치우는 게 번거로웠다. 조용히 있는 고양이가 아니어서 돌아다니다가 볕 드는 곳이 자기 자리라 털 빠진 것 청소하느라 성가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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