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도 괜찮아요
울어도 괜찮아요
  • 성광일보
  • 승인 2020.10.1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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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효은 / 기자.작가
아효은 / 기자. 작가
아효은 / 기자. 작가

아주 어린 아이였을 때는 누가 보든 말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몇 가지 기억나는 장면들이 있다. 하늘을 찢어놓을 듯이 커다란 굉음에 너무 무서워서 큰 소리로 울었다. 그 소리의 주인공이 비행기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다섯 살 즈음에는 어두운 방에서 혼자 잠이 깼는데 너무 무서워 동네가 떠나가라 운 기억이 생생하다. 어찌나 서럽게 울었는지 모른다. 

눈물을 억지로 참기 시작했던 순간은 언제부터였을까? 어른이 되어가면서 마음이 슬플 때 눈물 흘리는 행동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나약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싫었다. 상대에게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도 않았다. 혼자 있을 때 맘 편히 울 수 있었다. 술을 많이 마시던 때에는 어느 정도 취하면 눈물이 나왔다. 주로 자리에서 일어나 혼자 집에 갈 때 어린아이처럼 더욱 서럽게 울었다. 꽉 틀어막아 놓은 수도꼭지가 터져버린 것 같이. 내 안에 그렇게 큰 슬픔이 자리하고 있는지 몰랐다. 평상시 억눌러놓은 감정이 술을 마시면 무의식이 열리면서 두려움, 불안, 공포, 서러운 마음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요즘은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술에 의존하며 감정 표현을 하기보다 맨정신에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몇 주전 어린 시절 많이 예뻐해 주시고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서 언니와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께서 먼 길을 떠나셨다. 3~4년 전부터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점점 심해지면서 결국 요양원에 가게 되셨다.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할머니를 만나러 갔지만, 서울 생활을 하면서 늘 할머니가 마음에 걸렸다. 집에 언제 가냐고 물어보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언제 또 오느냐는 질문에 '한 달 있다가 또 올게요.'라고 대답하면 할머니는 “열흘 있다가 와"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와는 때로 친구같이 지냈다. 심심할 땐 화투도 치고 학교에서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싸가서 할머니를 드리기도 했다. 초등학생 때는 무더운 여름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가꾸는 옥수수밭에 가서 책가방에 옥수수를 잔뜩 넣고 옮기는 일을 함께 하기도 했다. 대학교에 갔을 때는 방학 때마다 시골집으로 내려오면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겨주셨다. 아플 때는 이불을 덮어주고 물을 떠다 주셨다. 그 따스한 손길이 좋았다. 할머니가 끓여주시는 라면과 비빔국수 맛은 최고였다. 다시 학교 기숙사로 떠나는 날이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셨다. 그 모습을 보며 미소가 지어지면서도 마음이 아려왔다. 그 순간순간들이 다시 오지 않을 걸 알았고 소중하다는 걸 알았지만 흘러가는 순간을 잡을 수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좀 더 오래오래 반복되는 일상으로 생각했다. 

‘울어도 괜찮아’  (그림 어효은 기자)
‘울어도 괜찮아’ (그림 어효은 기자)

할머니는 점점 가족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언니와 나는 달랐다. 큰 소리로 “할머니, 쌍둥이예요!"라고 말하면 할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시며 “오, 쌍둥이!"라고 대답하며 미소를 지어보이시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것이 기뻤다. 할머니는 소변줄을 하고 기저귀를 차고 콧줄을 해야 할 정도로 약해져 있었지만 조금씩 회복하시는 모습을 보며 올해는 거뜬히 넘길 수 있다고 믿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만 해도 기력을 많이 회복하신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유달리 말을 많이 하시던 그 날이 떠나기 전 마지막 힘을 내는 신호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오히려 안심하고 서울에 있는 짐을 챙기러 터미널로 향했다. 

그날 밤이었다.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는 놀라지 말고 들으라며 나에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언니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무슨 소리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언니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사실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다음 날 첫차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엉엉 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입관을 할 때 눈시울이 살짝 붉어진 것 말고는 장례식 3일 내내 울지 않았다. 할머니가 편안한 곳으로 가시기를 기도했다. 지인 중 몇몇은 호상이라고 이야기했다. 한번 태어난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말도 들었다. 모두 맞는 말이지만 쓴웃음이 지어졌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 손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몇 주간 할머니를 간호하는 그 시간이 없었다면 더욱 견디기 힘들었을 거다. 언니와 나를 위해 버티고 계셨던 걸까. 아픈 할머니를 보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서울 집에 돌아와 고요한 방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참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혼자 있으니 감정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눈물이 멈출 때까지 울었다. 폭풍우가 지나고 난 듯 이내 마음은 차분하고 잠잠해졌다. 

'울고 싶을 땐 울어도 괜찮아요. 내리는 비에게 그만 멈추라고 해서 멈춰지지 않듯이 그칠 때까지 쏟아내면 다시 고요해지고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출 테니. 울고 싶을 땐 울어도 괜찮아요.'

어효은(lovewill3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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