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신혼가정에 맨발도둑
<수필> 신혼가정에 맨발도둑
  • 성광일보
  • 승인 2020.10.2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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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의혁/광진문학 회원
방희혁

어느 여름밤, 직장에서 돌아온 나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새벽녘 '도둑놈’ '도둑놈' 이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소리치는 아내의 음성을 어렴풋이 들었다
나는 아내가 꿈결에 하는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때에 누군가 문을 박차고 뛰어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도둑이 들어왔던 것이다.
나는 전구부터 찾아 켰다. 도둑은 마당을 단숨에 달려 담을 넘고 있었다.  

젊은 나는 옷을 대충입고, 도둑을 쫓아 나갔다. 그러나 담을 넘을 수는 없었고, 대문을 향하여 달려갔었는데 이상했다. 대문이 잠겨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대문 안쪽을 보니, 검은 고무신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도둑이 남기고간 태광 말표 검은 고무신이었다. 발소리를 줄이기 위해서, 대문 곁에 고무신을 벗어놓고, 씻지 않은 그 발로 우리 신혼 방을 밟았던 것이다.
궁금증을 뒤로한 채 대문을 열어 재치고 도둑이 도망쳤을 것 같은 골목길로 쫓아갔으나 도둑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가픈 숨을 몰아쉬며 도둑을 찾아보았으나 헛수고였다. 하는 수 없이 집에 돌아온 나는 잃은 물건을 확인해 보았다.  

아내가 결혼선물로 가져온 재봉틀을 뜯어놓고, 아내가 '도둑놈' 이라 소리치는 바람에 못 가져가고, 다만 내가 가보家寶처럼 아끼던 소형 트랜지스터 라디오만 가지고 가버렸다.
다음날 아침 일찍, 도둑이 벗어놓은 검은 고무신을 들고 가까운 파출소에 가서 도난 신고를 했다.  
그 당시 나는 대한금융회사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래 거의 많은 시간을 자전거타고 근무하는 생활이었기에, 전자점포만 보면 관심이 갔고, 도둑맞은 라디오가 아른거려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자점포가 눈에 들어와 보니, 우리 라디오가 진열되어 있었다. 들어가서 확인해 보니, 틀림없는 우리 라디오가 확실했다.  
그러나 나의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았고, 곧바로 파출소로 달려가서 경찰과 함께 라디오가 있는 가게로 왔다.  점포주인은 다시 들이닥친 나와 경찰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장물贓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조사를 해보니 점포 주인이 도둑을 알고 있었다.
그 도둑은 이미 다른 문제로 교도소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때 장물臟物을 취급한 점포주인은 내 앞에 무릎까지 꿇고 선처해달라고 애원을 하는 것이었다. 나또한 선처하고 싶었다. 가난한 장물취급인을 보아서도 그렇고-, 고무신까지 벗어 놓고 도망하여 교도소에 있다는 가련한 도둑이 받을 가중처벌까지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그래 라디오를 찾은 것으로 만족하고 사건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17년이란 세월이 지나간 어느 날, 대학원 동창모임이 있어서 나갔다가 해가질 녘 집에 돌아와 서재에 들어섰을 때 책장이 휑하니 비어있는 것을 보았다.
마음이 섬뜩했다. 대낮에 도둑이 들어온 것이다. 도둑은 잡다한 책들은 그대로 두고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책들만 골라 가버리고 말았다.
성경 3권과 성경주석 130여권, 아끼던 구두 한 켤레, 손목시계 하나를 가져갔다.

이제 목회자로 교회개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낡은 책 몇 권 사서 보고 있었는데, 세상에 그것을 가져가다니... 자신이 자신을 생각해봐도 가엾기 기지 없다.
잠시 앞이 캄캄했지만-, 섬광처럼 스치는 생각이 마음의 평안을 주었다.

다름 아닌, 17년 전 잃었던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찾은 것처럼, 잃은 책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어서다.  
그 책들은 주경야독으로 움직이면서 청계천6가 헌책을 파는 서점에서 구입했으니, 도둑도 그 서점에 팔았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고…
그래 그 곳에 가면 책을 찾아 올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같은 예감이 들었다.

다음날 나에게는 몇 가정 심방이 약속되어있었기에 아내와 믿을 만한 여 집사에게 책을 찾는 임무를 맡겼다.  서점 위치며, 가서 확인할 증거까지 가르쳐 주었다.
잃은 책 중엔 아끼는 분의 주석20권도 있었는데, 그 책 각권마다 모두 책 케이스가 있는데, 단 20권중 한 권만은 케이스가 없으니까 - 그것이 확인되면 바로 내 책이라고 말해주었다.
약속을 생명처럼 여기는 목회자로선 예정대로 약속된 시간 분당에 살고 있는 가정을 심방 중에 있었다. 그리고 책을 찾거들랑 분당 그 집 전화로 하라 했더니 마침 집에 들려 예배드리는데,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나는 나에게 걸려온 전화려니 믿고 받았더니-  
“목사님, 책 찾았어요!”라는 반가운 목소리였다.
내가 말해 주었던 대로'케이스가 없는 한권으로'확증을 잡아 확인시키자 서점 주인 역시 안절부절 모두 변상해 드리겠으니 선처해 달라고 하더란다.
그래 라디오를 잃었을 때처럼 도둑까지 잡을 수도 있었으나 이 도둑 역시 낡은 구두를 도둑질해 갈만큼 가난한 도둑이고 보면, 검은 고무신을 버리고 도망간 도둑이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래 서점주인의 사정도 있고 해서 잃은 물건을 찾는 것으로 선처하고 매듭을 지었다.

세상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잃었던 물건을 모두 찾게 되었다니 이것 역시 신기하지 아니한가?  
그리고 또한 도둑이나 장물臟物 취급인들에게도 선하게 처리할 수도 있어 좋았다. 다만, 바라건대 도둑이었던 그들이 옛 사람의 검은 고무신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의 천사표 신발을 신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방의혁 프로필>
·광진문학 시부문 수상
·광진가족백일장 시부문 준장원
·광진문학 회원
·저서: 꿈이 바퀸 나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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