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과 풍수 동양오술 (용대기17)
동양학과 풍수 동양오술 (용대기17)
  • 성광일보
  • 승인 2020.11.25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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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老泉)김흥국
광진투데이 편집위원장
삼오지리학회장역임
현재 한국현공풍수학회장
신화씨엠씨(주)대표
김흥국
김흥국

지난 호에는 한고조 유방이 초패왕 항우와 전투에서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나라를 건국하였으며 그는 전쟁에 임해서 항상 치우천황에게 극진히 승전의 예를 올렸다고 했다.

그럼 중국 상고사에 용의 문양이나 상징은 은상시절의 유물에 있었지 중국 고유문화에는 용의 그림자도 안 보인다고 서술했다. 그리고 진시황 시절에도 이러한 내용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 용은 중국의 상징이 되었다. 그럼 중국인에게 용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우리는 지금 그 과정을 캐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증거를 찾고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한고조 유방이 치우천황을 전쟁의 신으로 지극히 모시면서 용문양도 함께 도입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렇게 상상할 수 있는 이유는 한고조 유방은 시골의 흙수저로 태어나 새로이 건립한 나라의 황제로 특히 위엄과 권위를 위해 용문양을 사용하였다고 유추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열등의식이 많은 황제로 자신의 권위에 손상이 가거나 자신의 위엄에 흠이 갈 것이 예상되면 산전수전을 함께한 일등공신들도 서슴지 않고 죽이는 잔인함을 보였다.

특히 특급공신인 대장군 한신은 삼족을 멸했다. 그의 군사력이 미래를 두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장군 한신은 사면초가라는 고사로 천하장사 항우를 오강에서 자결하게 만든 만고의 특등공신이다. 하지만 죽음에 몰린 그는 이렇게 탄식을 했다. 

“날쌘 토끼를 사로잡으면 사냥개는 잡아먹히고, 높이 나는 새를 잡으면 활은 곳간에 처박히고, 적국을 멸하고 나면 충신은 죽임을 당한다더니, 천하가 평정되니 내가 잡혀 죽는구나!”라며 충성을 받친 것을 후회했다. 후대 사람들은 이러한 한신을 토사구팽 조진궁장 (免死狗烹 鳥盡弓藏)이란 말로 표현했다.

참고로 한고조 유방이 나라를 세우는데 3명의 특등공신이 있었다.
최고의 참모인 장량은 우리에게 장자방(張子房)으로 알려진 인물로, 삼국지의 제갈공명과 명나라 주원장의 참모 유백온과 더불어 중국 3대 지략가이다. 그는 평화시대가 오면 죽임을 당할 것을 예감하고 미리 사직을 하여 대륙의 남쪽 끝인 지금의 장가계로 낙향을 하여 평안한 여생을 보냈다. 

우리에게 관광명소로 알려진 장가계, 원가계는 장량이 낙향하여 선택한 지역으로 스스로 자손만대의 명당에 묻혔다. 오늘날 장가계가 세상에 알려 질것을 예상이나 한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장량을 사람들은 스스로 멈출 줄 아는 인물이란 뜻으로 장량지지(張良知止)라 말한다.
그리고 또, 한 명은 일찍이 한고조의 인물 됨됨을 알아보고 묵묵히 국무총리처럼 뒤에서 재정을 튼튼히 하여 한나라의 기초를 다진 소하로 노심초사 유방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은 처세로 최선을 다했기에 후세 사람들은 그를 반군여반호(伴君如伴虎)에서 살아남은 지혜로운 인물로 표현했다. 황제는 호랑이와 같아서 조금만 실수를 하면 죽임을 면치 못한다는 뜻이다.

한고조 유방도 이들의 능력을 높여, 자신이 따라 갈 수 없다 하여 삼불여(三不如)라 말했고, 후세 사람들은 이들을 한초삼걸(漢初三傑)이라 불렀다.

이렇게 자신의 권위와 미래에 걸림돌은 인정사정없이 제거했으며, 미천한 출신의 자신을 황제의 권위로 높이기 위해서 평소 존경하던 치우천황의 용문양을 응용하였을 것이다.

이는 한고조뿐만 아니다. 한 대 이후의 대부분 중국 황제들은 자신들의 위엄을 위해 용문양을 다양하게 사용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특이하게도 용을 자신과 합체시킨 제왕이 있다.

그는 한고조보다 더 열악한 처지에서 나라를 세운 명태조 주원장이다.
주원장은 어린 시절 한날한시에 산사태로 부모형제를 잃고 홀홀 고아가 되어 거지로 빌어먹다가 절에 중이 되어 걸식을 했으며, 그래도 배 고품을 이기지 못해 홍건적의 도적 떼가 되었다. 거기서 능력을 인정받아 계급이 하나하나 올라가 마침내는 유백온이라는 천하의 전략가를 만나 명나라를 세우게 된다.

그는 자신이 황제가 됨을 합당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얼굴이 용과 닮았다고 하여 초상화를 용의 특징에 맞게 그렸기에 주원장의 초상화는 기괴하게 그려져 있다.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이렇게 중국의 천자들은 용을 황제의 상징으로 자신과 하나로 연결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이 치우천황의 용대기가 중화족의 두려움의 대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필자는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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