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다가오는 斷想]  수묵화 
[멀리서 다가오는 斷想]  수묵화 
  • 성광일보
  • 승인 2020.11.30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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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杉基
김삼기
김삼기

오래 전부터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아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다녀오고 싶다고 해서, 어제 아들 내외와 작년에 결혼한  딸, 사위 그리고 아내랑  나까지 모두 6명이 정읍에 다녀왔다. 

코로나 2단계 상황에서 특히 가족모임을 자제해달라는 정부의 강력한 주문에도 불구하고, 금 번 성묘가 계획된 일정이었고, 가족 전체가 함께 시간을 내는 것도 쉽지 않아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일행이 톨게이트를 막 빠져나가자 펼쳐지는 초겨울의 산세가 먹으로 명암기법만 가지고도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수묵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1학년 미술시간에 선생님이 한 학생의 그림이 99점이라면서 그 이유는 가까운 물체는 색상을 진하게, 먼 물체는 옅게 칠했기 때문이라고 했던 기억이 나기도  했다.

온갖 색상으로 아름다움을 뽐내는 서양화 같은 봄여름 산에서는 먼 산과 가까운 산의 구분이 쉽지 않았는데, 수묵화 같은 초겨울 산에서는 먼 산과 가까운 산을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시간도 현재라는 가까운 시간과 과거라는 먼 시간을 동시에 볼 줄 아는 지혜가 중요하듯, 거리도 현재 같은 가까운 거리와 과거 같은 먼 거리를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해봤다. 

그리고 시간이건 거리건 가깝고 먼 것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서양화 같이 화려함이 아니라 수묵화처럼 단순함 속에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보이던 먼 산이 한참 달리다보니 가까운 산이 되듯이, 우리 일행이 3시간 동안 달려서 산소에 도착하니 희미하게 기억되던 조상들도 가깝게 느껴졌다.

이는 우리 일행 모두가 서양화처럼 여행이나 잔칫집에 가는 분위기가 아니라, 차 안에서 조상에 대한 이야기와 고향에 대한 추억을 상기면서 수묵화처럼 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마을 앞에서 차량을 세우고, 사위와 며느리에게 내가 4km를 걸어서 6년 동안 등하교를 했고, 비가 많이 오면 일명 학교다리를 건너지 못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어 환호성을 쳤던 이야기 등을 해주었다.

그 때 사위가 내가 태어난 고향이 한 폭의 동양화 같다는 말을 하면서 서울에서만 자란 자기보다 내가 더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해줬다.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군산에 사는 누나에게 코로나 때문에 보지 못하고 올라간다고 전화하자, 누나가 김장하는 날이니 잠깐 들렀다 가라고 해서 들렸더니 동네 사람들이 모여 김장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품앗이 김장을 하고 있는 모습 역시 나에게는 수묵화에 어울리는 풍경으로 느껴졌다.

누나가 김장김치 2박스와 텃밭에서 막 뽑은 큼지막한 배추 20여포기 그리고 온갖 채소를 바리바리 싸준 덕에 우리 일행은 보너스를 받은 기분으로 귀경길에 오를 수 있었다.

아내와 나는 휴게소에 들러 가족과 함께 간단한 식사를 하고, 아들 처가와 딸 시댁 몫으로 김치와 배추를 나누어 주고 기쁨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이 세상에서 아내와 나에게 가장 가까운 딸과 아들, 그리고 사위와 며느리가 모두 함께 모여, 아직도 나에게는 멀지만 가까운 나의 부모님을 찾았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

우리 일행이 어제(주말) 초겨울 산, 학교다리, 성묘, 품앗이 김장, 등을 소재로 그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묵화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단상]
며느리의 “아버님, 추석 때 주신 산삼즙 잘 먹었습니다”.라는 멘트도 수묵화의 중요한 소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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