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멸치를 다듬는다(3)
<소설> 멸치를 다듬는다(3)
  • 성광일보
  • 승인 2021.01.2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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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당/소설가.성동문인협회 회원
김근당/소설가

남자는 여자가 상냥하고 지혜로운 줄 알았다. 그러나 살면서 다른 면에 부딪쳤다.  어떤 상황에서도 생각을 꺾지 않는 성격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짜증내고 신경질부터 부렸다. 처음에는 시댁과 동생들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다. 살아오는 내내 사람을 달달볶았다. 

“당신은? 독불장군이었지. 지금도 마찬가지야.”

여자는 남자가 바보 온달 같다고 생각했다. 이십일 세기에 나타난 바보 온달. 사람의 도리도 제대로 못하는 무능한 아버지 어머니의 말만 나오면 자존심을 짓밟는다고 눈에 쌍심지를 켜는 남자였다.
“독불장군? 그게 아니야. 운명을 개척하고 싶었을 뿐이야.”

남자는 살아오는 내내 여자에게 이해시켜주고 싶었다. 그러나 통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기만 행복하고 편안하면 그만이었다. 남자는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몰랐다. 열심히 일해서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인 운명을 뚫고 나가 동생들도 여자도 행복한 가족을 만들겠다고 말하고 싶지만 여자를 어떻게 이해시킬지 몰랐다. 
“그래서 당신의 운명을 개척했다고? 한 여자의 가슴에 대못을 박으면서.”

여자는 남자를 이해할 수 없다. 여자의 소중한 꿈을 산산이 부셔놓은 남자였다.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고? 우리의 꿈을 이루려고 악전고투 했는데.”
“악전고투라고? 여자를 처참하게 만들어 놓고.”

산동네 판자촌이었다. 신혼생활을 시작한 곳이었다. 생활비를 아끼려고 정부미를 사다 먹고 먼 길을 걸어 재래시장에 다녔다. 고통스러운 삶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마누라도 한번 돌아봐 달라고, 우리 아이도 생각하라고 애원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여자는 날씬하고 예뻤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가 몸이 약하다고 생각했다. 무거운 짐을 지우기에는 여자의 어깨가 너무 연약해 보였다. 하얗고 깨끗한 얼굴이 어려움을 모르고 큰 것 같았다. 

남자는 직속 상사인 팀장의 권유로 여자를 만나기는 했지만 여자에게 마음을 줄 수 없었다. 군대에서 제대하고 복직한 직장의 팀장이 소개한 여자였다. 남자는 여자에게 마음을 두지 않기로 작정했다. 직장에 복귀했지만 아직도 짊어지고 있는 짐이 많기 때문이었다. 동생들 학비에 아버지의 약값 등 시골집에 보내는 돈이 많았다. 함께 기거하는 여동생도 있었다. 여자가 감당해내지 못할 것 같았다. 남자는 여자와 마주앉아 있기가 거북했다. 
“왜. 자리가 불편하신가요?”

여자는 눈치가 빨랐다. 재치 있고 약아 보이는 인상이었다. 남자는 언뜻 이런 아가씨라면 어리석은 동생들을 잘 이끌어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 아닙니다.”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손사래를 쳤다.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을 여자가 알아챘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남자가 좋았다. 선량한 얼굴에 순진하고 정감어린 인상이었다. 여자를 배려해줄 것 같았다. 남자를 소개해준 언니도 진실하고, 책임감이 강하고, 사려 깊고, 정이 많고, 의지가 강한 남자라고. 고등하교까지 나왔지만 늦게나마 방통대도 등록했고, 실력도 있고, 상사에게 인정도 받는다고, 칭찬을 입이 닳도록 늘어놓았었다. 꽃꽂이 모임에서 만나는 언니였다. 
“언니가 칭찬을 많이 하던데요.”

여자는 호감을 표시하고 싶었다. 외롭고 허전한 심정으로 만난 남자였다. 어머니는 동대문시장에 나가면 밤늦게야 돌아왔다. 언니들이 하나 둘 시집가고 혼자 집을 지키고 있을 때면 성북동 큰 집이 무서웠다. 들창 밖 대나무에 바람이 스치는 소리가 귀신이 찾아오는 소리 같았다. 

동대문 시장에서 이불 도매상을 하는 어머니는 늘 바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어받은 가게였다. 여자는 전문대를 나와 개인 회사의 경리를 보고 있는 자신에 비해 시중은행의 정식 직원인 남자가 좋아 보였다. 
“저의 직속 상사입니다. 저에 대한 과장을 너무 심하게 하신 모양이네요.”

남자는 마음을 다잡았다. 전화번호도 주고받지 않고 일어섰다. 자신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힘든 삶을 함께 개척해나갈 수 있는 여자를 만나고 싶었다. 
남자는 여자를 보내며 가슴이 아팠다. 슬픔이 가슴을 쓸고 지나갔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가질 수 없는 슬픔이었다. 서울에 올라와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그랬다. 남자는 부자 무모 밑에서 어려움 모르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아버지 어머니는 아들이 서울에서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 몰랐다. 중학교 때도 그랬었다. 삼 년 간 장학금으로 다녔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그래도 넓은 세상으로 나와 미래를 개척하는 자신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중학교도 다닐 수 없는 동생들이 불쌍했다. 아버지 어머니는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길가의 굴러다니는 돌처럼 키웠다. 어떻게 할 줄 몰랐다. 초등학교 때는 남자도 양은도시락에 고구마와 김치를 싸가고 다녔다. 그래도 부끄럽지 않았다. 중학교 때는 공부에만 매달려 배고픈 줄도 몰랐다. 낮에는 밭에 나가 일하고 밤새도록 공부했다. 서울에서 대학까지 다닐 때도 아르바이트와 공부로 늘 코피를 흘렸었다. 

여자는 남자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며 왠지 손에 들었던 보물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쉬움이 남아 있는 마음이었다. 한 번 더 만나고 싶었다.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은 없었지만 전화를 걸고 싶었다. 소개해준 언니도 먼저 전화를 해보라고 부추겼다. 

남자는 전화를 건 여자를 거절하지 못했다. 생각은 만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상냥하고 영리한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무능해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동생들에게 도움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바위라도 뚫고 나가려는 자신의 성격과 여자의 상냥하고 영리한 성격이 합친다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남자와 여자는 그렇게 서로 다른 생각으로 만났다. 둘이 거리를 걸으면 사람들이 모두 쳐다봤다. 참으로 잘 어울리는 선남선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여자는 흡족했다. 

이촌동 빈민촌에 있는 남자의 자취방에 갔을 때도 지저분한 살림살이와 퀴퀴한 냄새, 누이와 함께 사는 것도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여자는 남자가 가난한 집 장남이고, 동생들을 돌봐야 되고 그래서 고생할 텐데 그래도 좋겠느냐고 물었을 때도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 것인지 몰랐다. 

 

멸치는 반 이상이 다듬어져 있다. 밖에는 어둠 속에 빗줄기가 거세지고 있다. 베란다 유리문을 두드리는 빗줄기들이 눈물처럼 주르르 흐른다. 
남자는 소리 없이 울며 시골집으로 가던 여동생을 생각한다. 시골에 있는 남동생이 올라와 여동생을 데리고 갔다. 아내와 여동생의 불화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남자는 가슴이 아팠다. 올케와 잘 지내며 앞날을 개척하길 바랐지만 해준 것도 없이 생각뿐이었다. 남자가 구부러진 멸치를 집어 들어 이리저리 살핀다. 뱃가죽을 찢으면 부러질 것 같다. 남자는 멸치를 조심스럽게 펴고 똥을 빼낸다. 멸치가 반으로 갈라지고 만다. 남자는 그대로 다듬어진 양재기에 넣는다. 
“버려요!”

여자가 명령하듯 말한다. 남자는 여자의 말을 듣지 않는다. 
여자가 두 동강이 난 멸치를 집어 들고 '이런 걸 누가 먹으라고.' 투덜대며 신문지 바닥에 버린다. 
“그것도 멸치인데 왜 버려요.”

남자가 버려진 멸치를 다시 집어들자 여자가 남자의 손은 탁 친다.  
“이러니까 진구렁에서 구질구질하게 살아왔지. 나까지 쑤셔 넣고.”

여자가 또 다시 모진 말을 한다. 남자는 가슴이 메인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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