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또순이 아리랑(2)
<소설> 또순이 아리랑(2)
  • 성광일보
  • 승인 2021.03.12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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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라성/소설가
기라성/성동문인협회 회원

봉제공장을 하는 이만규 사장은 여성용 티와 아동복 쪽으로 품목을 바꿨던 터라 그 후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지만 열심히 일하는 미영을 또순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언제든 어려우면 찾아오라고 했던 생각이 떠오른다.

제일헤어마켓에 미용실용 터번 2000 피스와 미용 자격 시험용 가운 3000 피스를 납품한 날이었다. 또 사장이(미영이 별명으로 또순이 약칭) 납기일을 일주일이나 앞당겼다고 김 사장한테 후한 점심을 얻어먹고 곱절 발주를 받아 공장으로 달리는 미영은 오토바이를 탄 위에서도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또순이라 별명을 만들어 준 이만규 사장이 고향 선배 제일헤어마켓 김사장을 소개해 첫 납품을 한 날이었다. 공장이라야 반지하 10평 남짓에 중고 미싱 3대와 다림질 판이 전부이지만 생활고로 좌절하던 지난날과 180도 달라진 생활이었다. 

신랑 철준은 동네 노동일을 그만두고 냉장, 냉동 창고 짓는 회사 조공으로 새 일을 시작했다. 미영이 사는 동네는 우시장(牛市場)인 마장동이었다. 마장동 축산시장은 재래 정육시장으로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데 냉동이나 냉장 시설이 필수여서 일이 많다. 새로 배우는 용접이나 드릴질, 피스 작업도 한창 재미가 붙어 마누라 눈치로부터 해방되었다. 보온용 외장재 우레탄 패넬을 조립한 다음 틈새를 실리콘으로 메우는 작업도 처음에는 고루지 않고 삐뚤빼뚤했지만 차츰 숙련공이 되어 제법 기술자 대우를 받으며 미영으로부터 지청구를 안 받으니 살 것 같다. 밤낮으로 공장에 붙어있는 미영이 잔소리 할 시간이 없는 것도 이유이기도 했다.

지난 달 노씨네 세든 아가씨 자살 후로 기력을 회복한 미영이 노씨 부인 남열 엄마를 찾아가서 아가씨가 살던 방을 세들겠다고 하니 남열 엄마는 의아해하면서도 매우 반가워했다. 집집마다 사람 안 죽은 집 없겠지만 한동안 흉흉한 소문과 주변 사람도 꺼리는 마당에 그 집으로 이사 오겠다는 미영을 남열 엄마는 친정 동생 만난 듯 반가워  했다.
"아주머니 제가 사정이 어렵게 됐어요."

그간 있었던 남편의 실직과 생활고 이야기를 하고 대신 1년간만 월세를 낮춰 주기를 간곡히 부탁했다.
 “무조건 세를 낮춰 달라는 이야기는 죄송하지만 세 든 아가씨가 자살한 집을….”

남열 엄마는 멀뚱멀뚱 미영을 쳐다보며 아무 말이 없다. 
“저희 형편 좀 봐 주셔요. 집을 6개월 아니면 1년을 비우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아줌마! 여기같이 서민들 사는 동네는 누가 이사를 오려면 복덕방이나 구멍가게 같은 데서 소문을 들을 테니 집이 쉽게 나가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이렇게 설득하여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20만 원으로 세들 수 있었다.
이사를 하기 위해 살던 집 남은 보증금이 520만 원 밖에 없어서 우선 보증금은 300만 원만 주고 3개월 안에 채워 주기로 약속했다, 중고 미싱도 사야 하고 이것저것 준비 하자면 200만 원 가지고도 빠듯했다.

방은 신랑과 직접 도배하고 페인트도 칠한 날 저녁이었다. 남열 엄마한테 죽은 아가씨 인적 사항을 물었다. 이름 박성미! 작성했던 임대계약서의 생년월일은 1976년 9월 20일로 적혀 있는 것이 유난히 눈에 띄어 기억나는 것은 9월 20일 이날은 공교롭게도 미영과 생일이 같은 날이었기 때문인데 박성미 씨는 공교롭게도 자기 생일날 자살을 한 것이다. 쪽지를 받아든 미영은 아가씨 죽은 방에 앉아 작은 밥상에 아기씨 이름을 적은 쪽지를 펴놓고 막걸리 한 잔을 따른 다음 초에 불을 붙였다.
“성미 씨! 가끔 얼굴만 봤는데 이렇게 성미 씨 방에서 막걸리 한 잔 따르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인연인지 악연인지 모르지만 성미 씨 방에 내가 이사 오게 됐는데, 살면서 억울하고 원통한 일 많았겠지만 부디 좋은데 가시구려!”

“성미씨 인생 내가 산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 테니까 부디 천당으로 가시우!”

소리 없이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걸 그대로 두고 미영은 상 위의 막걸리를 한 사발 들이켰다.
“또 사장님! 이거”

한 집 건너 혼자 사는 이용흠 씨가 공장문을 빠끔히 열고 봉지를 내민다.
 “용흠 씨! 이런 거 자꾸 사 오지 말라니까 왜 이러셔요? 작은 돈이라도 아껴서 빨리 가게 장만하셔야지.!”
“그냥 가지 말고 같이 먹고 가요.”

용흠이 사온 강원도 토속음식 메밀전병이다.
일회용 도시락 2개에 전병이 가지런히 담겨 있는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신 김치와 잡채 등을 넣고 메밀 피로 말아서 프라이팬에 익힌 전병을 미영은 좋아했다. 호텔 요리사였던 용흠은 친구 보증 서 준 게 잘못되어 월급을 압류당하자 사표 내고 퇴직금으로 빚을 대신 갚아줬다. 내 가게 하나 내려는 목표로 족발집에서 일하고 있는 서른 여덟 살의 노총각인데 바지 2개 다림질하러 공장에 왔다. 미영은 공장을 하면서 이웃들의 옷 수선이나 다림질 등을 무료로 해 주기도 하고 본인들이 와서 해 가기도 하는데 가까이 세탁소가 없어서 다행히 시비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 늘 이웃이나 지인들이 드나들다 보니까 미영이 혼자서 일하는 공장이 직원을 여럿 둔 공장처럼 보인다.

지난달 반상회도 공장에서 열었다.
반장인 소연 언니의 제의로 부침개 부치고 음료와 과일을 준비해서 동네잔치를 하게 된 것이다. 공장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는데 말쑥한 양복 차림의 손님이 찾아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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