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또순이 아리랑(7)
[소설] 또순이 아리랑(7)
  • 성광일보
  • 승인 2021.05.25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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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라성/
·소설가
·성동문인협회 이사
기라성

신랑 철준도 열심히 일을 해 지방도 가끔 내려가는데 며칠에 한 번 오는 경우는 초저녁부터 음흉한 눈길을 보낸다. 철준이 잠자리에서 집적거려도 아직까지 잠자리에 몸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미영도 갈증을 느끼던 터라 그날 밤은 밀린 숙제하듯 철준과 격렬한 정사를 치르고 났더니 피부도 탱탱하고 윤기가 돈다. 

어느날 왕십리 소월 아트홀에 갔다. 음악회 초대권을 얻어 좀 일찍 도착해 벤치에 앉아 화단을 쳐다보니 능소화가 피어있었다. 왕의 후궁으로 점지된 여인이 왕을 기다리다 죽은 자리에 피어난 꽃! 능소화를 쳐다보는 미영은 한동안 외롭고 고독했던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게 된다. 

며칠 전 오랜만의 철준과 섹스는 좋았지만 그동안 맘 고생한 것들이 다 풀리지 않았다. 능소화 꽃에서 미영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 것이다. 관람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하자 미영도 입장하기 위하여 줄을 섰는데 두 손을 꼭 잡은 젊은 연인이 지나가고 뒤에 친구인 듯 아가씨 둘이 또 손잡고 지나간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동성 간에도 손잡기를 좋아해 어느 외국인이 한국 사람들은 동성연애자가 많구나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는 순간 
“옳지 저거다”하고 손벽을 친다.

곧 겨울이 오는데 겨울철 대비 새 상품개발을 해보고 싶었는데 아이디어를 찾은 것이다. 무슨 시립 교향악단이라 했는데 이름이 떠오르지도 않고 연주곡도 귀에 들어오지 않으며 관람 시간 내내 아이디어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제품 이름은, 원단은, 디자인은, 캐릭터는?

다음날 공장에서도 종일 책상에 앉아서 스케치하면서 뭔가를 그리는 걸 보고 순영이 묻는다.
“언니 하루종일 무엇을 그리고 적고 그리고 하는 거야? 고시 준비하는 것도 아닐 테고 하청공장 물건 좀 확인하고 올게!”

순영이 나가려하자
“나도 강남에 볼일이 있어.”
하고 같이 일어선다. 왕십리역에서 순영과 헤어진 미영은 역삼역에서 내려서 특허 사무실을 돌아보는 중이다. 의류 쪽은 직무 발명에 대해서 취약하지만 최소한의 법적 절차나 장치는 해 두려는 것인데 변리사와 상담을 해보니 의장등록 정도 하고 필요하면 상표 등록을 하라고 권한다. 미용 분야 봉제일을 해서 집도 장만하고 공장도 잘 되고 있지만 또 사장 답게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싶은 꿈을 오래전부터 해 왔던 터라 의욕이 앞서는것이다. 내일부터는 남대문에서 동대문까지 시장 동향과 거래할 도매상을 찾아봐야지 하면서 공장에 들어선다.

순영이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유익종의〈들꽃〉이 흘러나온다.
건반악기 연주음과 유익종의 차분한 목소리는 밖에 내리는 비와 함께 사춘기적 추억의 공간으로 달려간다.

나 그대만을 위해서 피어난 
저 바위틈에 한 송이 들꽃이요.
돌 틈 사이 이름도 없는 
들꽃처럼 산다 해도 
내 진정 그대를 위해서 살아가리라 .
언제나 잔잔한 호수처럼 
그대는 내 가슴에 항상 머물고 
수많은 꽃 중에 
들꽃이 되어도 행복하리.

미영은 자신이 보호받고 자라지 못한 들꽃이라고 생각하며 이 노래를 참 즐겨 들으며 좋아한다. 자신은 비록 들꽃이지만 사랑하는 자식들을 위해 살아가는 행복한 들꽃이 되기를 다짐해 본다.
교문리에 살 때 문간방에 세 살던 오빠가 생각난다. 근처 도금공장에 다니던 범철 오빠는 10대 사춘기 시절 미영이 유일하게 가깝게 지내던 이성이었다. 

가끔 풀빵이나 호떡도 사 주고 새엄마 밑에서 고생하는 미영에게 교회에 다니자고 했었지만, 새엄마 반대로 교회는 결국 못 다녔고 그 오빠 역시 정부의 도금단지 이전 정책에 따라 안산으로 가 버렸는데, 나중에 한 번 들렸을 때 사우디아라비아로 돈 벌러 간다고 했었다. 

범철 오빠가 가는 날 뒤를 몰래 밟으며 버스 정류장까지 미행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우디 갔다 꼭 돌아오라는 말이 입속에만 뱅뱅 돌기만 하고 입 밖으로 표현하진 못했는데, 사춘기 때 미영 가슴 속의 유일한 핑크빛 기억이다. 범철 오빠는 어디서 살까? 결혼은 했을 테고 애들은 몇이나 두었을까?

오늘은 기억을 지우려 노력했던 과거가 자꾸 생각나는 미영은 무슨 조화인지 싶어 생각을 턴다. 원단과 디자인 문제, 나염 인쇄 문양 등 책상 위 수북한 자료 중 일본 스즈키 월드에서 보내온 문양을 유심히 살핀다. 
삿포루 지역을 연상 시키는 눈 덮인 산하. 기모노 같은 데서 보게 되는 일본 전통 문양이다. 내수는 남대문과 동대문 대형 도매상 한 곳씩 두 군데와 일본 스즈키 월드 세 군데 거래선을 확정하였고 겨울 시즌을 앞두고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수용 문양은 요즘 젊은이들 기호에 맞춰 타투(문신) 도안을 종류별로 참고해 구상 중이다. 동물형상 문양(animals), 환상. 공상적 문양(fantastic), 동양적 문양(asian) 외래 이질적 문양(alien) 고대 태곳적 문양(ancient) 비전 비법적 문양(esoteric) 공포적 문양(horror) 게임 놀이 문양(game) 등. 그 외 십자가. 절마크 잉카문양 아프리카 문양. 문양을 자수로 할까? 나염 인쇄를 할까? 발포 나염도 괜찮을 거 같고 비즈공예를 접목해 봐?

컴퓨터와 도서실 책에서 수집한 자료들이 너무 많다. 많은 자료를 펼쳐 놓고 선택하는 게 전공도 아닌 미영은 무리라 생각하고, 자료를 싸들고 한양여대 조형 일러스트레이션 학과 황춘덕 교수를 찾아갔다. 황교수한테 창의력이 뛰어난 학생 세 명을 추천받아 나염 인쇄 문양 정리를 시키며 종류별 선호도를 정해보라고 일을 맡기자 미영은 머리가 한결 가벼워짐을 느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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