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원의 엉뚱 발랄 성동 이야기] 왕십리와 무학(27)
[서성원의 엉뚱 발랄 성동 이야기] 왕십리와 무학(27)
  • 서성원 기자
  • 승인 2021.07.14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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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아냐, 십 리를 더 가야돼
“왕십리를 살려놓으면 십 리 밖으로 갔던 사람들이 돌아와 지갑을 열리라”
무학봉공원에 있는 무학대사 조형물. ⓒ서성원 

○ 소재지: 서울 성동구 왕십리 

성동구에서 가장 유명한 건 무얼까. 최근에 성수동이 뜨고 있다. 하지만 왕십리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 외에는 무엇이 있을까. 살곶이다리는? 모르는 이도 많다. 사람 중에는 누가 유명할까. 정원오, 임종석, 인순이? 그 외 많은 사람들이 성동과 연을 맺고 있을 것이다. 
성동하면 떠오르는 것과 인물을 조사를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온라인으로 하면 어렵지 않다. 내 짐작으로는 왕십리와 무학이 1, 2위를 차지할 것 같다. 무학은 성동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성동구와 엮여있다. 왕십리 지명 설화 때문이다. 오늘은 왕십리와 무학 얘기를 할까 한다.

무학 초상화. (원화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 이성계와 무학과 왕십리

조선 초,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의 명을 받아 새로운 도읍지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 지금의 왕십리에 이르러 도읍지로 적합하다고 보았다. 그때 소를 끌고 지나가던 노인이 소에게 말했다. 
“야, 이 무학같이 미련한 소야.”
깜짝 놀란 무학이 노인에게 물었다. 
“혹시 도읍이 될 만한 곳을 아십니까?”
“십 리를 더 가보시오.”
무학은 십 리를 갔다. 그곳이 지금의 경복궁이다. 
그 뒤, 갈 왕(往)에 열 십(十), 거리 단위 리(里)의 한자를 붙여 '왕십리(往十里)'라는 지명이 생겼다.
이것이 왕십리 지명 설화의 줄거리다.

◆ 이야기에 나오는 왕십리는 어디일까 

당신에게 누가 묻는다.
“왕십리가 어디에요?”
당신은 어디라고 대답하겠는가?
나는 한동안 왕십리역 근처를 왕십리로 알고 있었다. 왕십리역 때문이다. 
행정동과 법정동 때문에 왕십리가 헷갈린다. 행정동으로는 왕십리도선동과 왕십리2동이 있다. 그런데 법정동은 상왕십리와 하왕십리다. 이렇다 보니까 성동구에 사는 사람들도 왕십리가 어디인지 말하려면 혼란이 온다.
그렇다면 이야기에서 무학에게 십 리를 더 가라고 했던 곳은 어디로 봐야 할까. 

지금의 한양대 자리라고도 하고 현재 왕십리도선동 일대라고도 한다. 답은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도읍지를 쉽게 결정한 게 아니다. 신령한 계시까지 있어서 가능했다. 이런 뜻을 품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전설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이야기가 한국인의 마음을 파고 들었기 때문이다. 십 리만 더 가봐. 새로운 천지가 나올 거야. 이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현재 네가 있는 곳에서 조금 더 가봐, 고생 끝 인생 대박 날거야. 우리는 이런 마음으로 살아간다. 마음에 쏙 드는 이야기여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왕십리는 왕십리가 아니었다. 고려시대 때는 왕심리다. 조선실록에도 왕심은 자주 나온다. 이 왕심리가 왕십리로 바뀐다. 그게 언제부터였을까. 이렇게 해서 노인(도선)과 무학은 성동구와 엮이게 되었다. 무학이 왕십리에서 노인을 만났다고 믿게 된다. 많은 사람이 믿으면 그게 진실로 보이게 된다. 
도읍지를 둘러볼 때 성동구를 거쳐 갔을 개연성은 있다. 어떤 이야기에는 이렇게 나온다. 계룡산을 거쳐서 올라온 무학은 봉은사에서 하루 묶고 한양으로 들어갔다. 그렇다면 성동구를 거쳐서 들어갔을 것이다. 

무학봉공원 안내도. ⓒ서성원<br>
무학봉공원 안내도. ⓒ서성원

◆ 무학은 어떤 사람이고 성동 사람들 마음속의 왕십리 

무학(無學)은 1327년에 경남 합천군 삼기(三岐)에서 태어났다. 1353년(공민왕 2) 원(元)나라 연경(燕京)에 유학을 다녀왔으니 엘리트 승려였다.
이성계가 스승으로 모실 만큼. 조선의 건국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무학은 주로 회암사에 조용히 머물다가 태종 5년(1405) 금강산 금강암에서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고 나서 후대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보았을까. 조선의 건국에 이바지 했기 때문에 높게 평가했을 수도 있다. 풍수지리에 능한 승려 등등. 그리고 조선은 유학의 나라다. 성리학에 심취한 후대 유학자들은 그를 깎아내렸을 것이다. 무학은 이렇게 우리에게 남아 있다. 

서성원
서성원

무학과 왕십리는 닮아있다. 왕십리는 어떤 곳인가. 십 리를 더 가야 하는데 가지 못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래서 왕십리 하면 변두리 이미지가 떠오른다. 왕십리를 와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동네가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변두리이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조선시대부터 한성부에 속하면서도 사대문 안에는 들지 못했던 동네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서울의 동쪽 변두리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다. 
이젠 다르다. 그런 이미지를 이용해야 한다. 왕십리는 그게 모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왕십리만의 문화를 만들면 된다. 서울 교통의 요충지로 알려졌으니 좋은 기회다. 무학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할까.
“왕십리를 살려야 돼. 십 리 밖으로 갔던 사람들이 돌아와 지갑을 열 거야.”

무학봉공원은 성동구에서 관리를 잘해서 도심 공원으로 좋다. ⓒ서성원
공원 옹벽에 왕십리 설화를 벽화로 나타냈다. ⓒ서성원
고층건물들로 무학봉 공원에서 경복궁 방향을 보기가 어려웠다. ⓒ서성원
지도에서 거리 재어 보았다 경복궁에서 왕십리까지 4km니까 정확하게 십 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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