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기다려, 다시 갈게
[수필] 기다려, 다시 갈게
  • 성광일보
  • 승인 2021.08.1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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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선 / 방콕 자유 여행기
이예선

탑승 후 몇 시간이 지났을까. 곧 착륙 예정이라는 기내방송이 나온다. 설렘과 동시에 살짝 긴장한 것도 잠시, 언제 착륙했는지 모를 정도로 비행기는 부드럽게 안착했다. 베테랑 파일럿인가 보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더운 공기가 온 몸에 훅 스민다. 대여섯 시간 전만 해도 영하의 한겨울이었는데 몇 시간 차이로 한여름 더위라니 순식간에 계절이 바뀌었다. 자연의 신비를 느끼며 숙소로 향하는데 차는 가는 건지 마는 건지 진행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퇴근 시간이 지나도 한참 지났는데 이렇게 막힐 수가 있다니. 말로만 듣던 교통체증이 이런 거구나 싶다. 차 안에서 보는 거리는 간간이 노출 심한 옷을 입은 여성들, 부르카로 온몸을 감싼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여 무척 활기차 보인다. 그 활기가 어둠이 주는 막연한 불안감을 잠재워준다.

늦은 시간에 가까스로 도착한 호텔, 체크인 하는데 직원 중 한 명이 트렌스젠더(Transgender) 같다. 화장도 곱게 하고 입술도 빨갛게 칠했지만 느낌이, 목소리가 ‘나는 남자다’라고 한다. 아니면 여장 남자일까? 어쨌든 이제부터 여행 시작이다. 야호!

바뀐 잠자리 탓에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일찌감치 일어나 안부 전화한 후 호텔을 나선 시간은 아침 8시 30분. 하늘이 어둡다. 비라도 오려나. 밤늦게까지 북적이던 거리는 한산하기 짝이 없다. 다음날 있을 투어 픽업 장소부터 확인하고 아속역으로 갔다. 주말에만 열리는 짜뚜짝 시장에 가는 길이다. BTS 아속역. 매표기의 태국어를 영어로 바꾸고 목적지, 승차인원 2를 입력했지만 표는 달랑 한 장, 잔돈마저 부족하게 나오더니 화면엔 Temporarily out of order 표시만 뜬다. 시작부터 이게 무슨 일이람. 역무원에게 말하니 두말없이 바로 계산해준다. 서투른 영어를 익숙하게 받아준 역무원이 고맙다.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낯선 풍경을 눈에 담는다. 역내 시계는 6시 55분을 가리키고 있다. ‘저 시계 고장 났나 봐’ 나보다 동생이 먼저 보고 말한다. 휴대폰을 보니 아차, 서울시간으로 맞춰진 것을 현지시간으로 잘못 착각한 것이다. 어쩐지 날이 어둡다 했다. 그나저나 시장은 9시에 개장인데 두 시간을 어디서 무얼 하며 보내지? 예정에 없던 짜뚜작 공원에 들르기로 했다. 공원엔 호수를 낀 산책로를 따라 많은 사람들이 조깅하고 있다. 올림픽 공원에서 많이 보던 풍경이다. 운동하고 거니는 사람들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은 걸 보니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구나 싶다. 공원을 한 바퀴 도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한바탕 걸었더니 출출하다. 요기도 할 겸 입구 행상에게 떡을 샀는데 웬걸 떡이 아닌 과일이다. ‘하우’라는 뿌리 열매와 찐 바나나. 한국에선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블로그에 나온 유명 식당 말고 주로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을 먹기로 한 여행 콘셉트와도 맞아떨어진다. ‘좋아, 시작 나쁘지 않아’

짜뚜짝 시장. 아주 큰 재래시장이다. 헤매지 않으려 지도를 들고 다니며 구경하는데 한 무리의 관광객이 내 손에 든 지도를 찍어도 되느냐 묻는다. Of course. Why not? 싱가포르에서 왔다는데 처음 보는 이들과 인사하며 서로의 행운을 빌어주는 것 또한 자유 여행의 묘미다. 시장은 솔직히 특별한 것도 없고 사고 싶은 것도 없다. 그래도 17년째 팔찌, 목걸이를 만들고 있다는 액세서리 가게에서 원석 팔찌 두 개를 샀다. 1개당 100바트, 우리 돈으로 3500원 꼴이니 과연 싸기는 싸다. 더 놀라운 건 시장 안 식당에서 먹은 팟타이와 똠얌꿍이다. 맛도 일품이지만 이천 원, 삼천 원 정도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한 마리에 족히 만 원은 할 대하 같은 새우 두 마리와 버섯이 가득이다. 물가가 싸다더니 정말 실감이 났다. 배도 부르고 발 맛사지도 받았으니 아시아티크로 향한다. 저녁 5시 개장이지만 일찍 서두르기로 했다. 지상철을 타고 사판탁신 역까지 가서 셔틀보트를 탔다. 서울로 치면 한강이 되는 짜오프라야 강이 제법 넓다. 강가엔 고급스러워 보이는 호텔들, 멀리 대관람차가 보인다. 야시장인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엔터테인먼트 공간, 기념품점 그리고 다이닝 공간이 혼재한 복합쇼핑몰 같은 곳이다. 그리 특별한 명소는 아니었지만 유명하다는 땡모반 주스며 이름도 알지 못한 채 사 먹었던, 맛있었던 그 나라 음식으로 입의 즐거움을 한껏 누리고 숙소로 돌아왔다.

현지여행사를 통해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과 위험한 기찻길 가는 날이다. 기찻길은 텔레비전에서 본대로 맞은편 가게 천막이 서로 닿을 정도로 통로가 좁다. 저 길로 기차가 들어온다니⋯.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기차 레일 바로 옆까지 물건을 두고 파는 것이 정말 괜찮을까 싶은데 가이드의 설명이 더 재미있다. 관광객이 많은 만큼 소매치기도 많아서 위험한 시장이라나. 하루에 네 번 들어온다는 기차가 들어온다. 물건은 그대로 두고 천막만 걷어내는데 순식간이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핸드폰을 치켜들고 사진 찍기 바쁘다. 희한하고 신기하고 재미있다. 시장 구경 후 기차 타고 세 정거장 가기 체험이 남았다. 발빠른 사람들은 벌써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우리도 맨 끝 칸으로 가 간신히 자리 잡고 앉으니 기차가 출발한다. 아주 느리게. 기차 안에서 손을 뻗치면, 닿을 듯 가까운 가게 앞에서 사람들이 바싹 달라붙어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다. 기차 안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 찍고 찍히고 손 흔들고 흔들어주고. 말이 다르고 피부색이 달라도 느끼는 감정은 다 같은가 보다. 체험을 마치고 수상시장으로 향했다. 도로 한두 개 차선폭만한 구정물 강에서 날렵한 배들이 관광객들을 태우고 요리조리 잘도 다닌다. 도로와 차가 물과 배로 바뀌었을 뿐 병목현상에 매연에 지상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매연은 어찌나 심한지 한 달 마실 양을 하루에 다 마신 듯하다. 강을 따라 즐비한 기념품과 먹거리를 파는 가게들은 관광객이 주 고객인 듯싶은데 다들 지나치고 보기만 할 뿐 사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손님을 부르는 호객소리만이 여기가 그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임을 말해주는 것 같다.

수상 시장을 끝으로 투어는 끝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잠시 머물다 야시장에 가기로 했다. 랏차다 딸랏롯파이 야시장. 개장도 전인데 부지런한 이들은 벌써 손님맞이 준비를 끝내고 장사를 시작한다. 부지런한 관광객인 우리 역시 오늘은 먹거리만 공략하기로 했다. 두어 바퀴 돌며 탐색 후 꿍파오(새우구이)를 먹었다. 큰 대하 같은 새우 7마리가 180바트니 약 6,300원, 물건 가격만 보면 한국 돈으로 환산하기 바쁘고 후렴처럼 내뱉는 소리. ‘싸다, 싸’ 맛있게 먹고 나와 다시 한 바퀴 둘러보는데 다른 곳에서는 200바트에 팔고 있다. 별 차이 나지 않아도 크지 않은 그 차이가 또 기쁨을 준다. ‘우리 싸게 먹었어, 하하’ 정말 맛있어서 한 번 먹는 것으로 끝내기엔 너무 아쉬운 팟타이를 저녁식사로 또 먹었다. 맛있는 것도, 맛보고 싶은 것도 많은데 금세 배부르니 뱃구레 작은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식사 때 만난, 방학 중 50일간 동남아 일주 여행을 하고 있다는 여대생 둘과 작별하고 숙소로 향한다. 부러운 젊음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여행 잘 끝내기를 바라며.

일정 마지막 날, 방콕예술문화센터에 갔다. 꼭 들르고 싶었는데 하필 휴관이다. 관람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짐 톰슨의 집으로 향했다. 입장권을 샀어도 내부는 임의로 구경할 수 없고 도슨트 신청을 해야 볼 수 있단다. 한국어 안내가 없어 영어를 선택하고 보니 팀원은 모두 영어권인데 동양인은 키 작고 말도 잘 안 통하는 우리 둘 뿐이다. 엄마 따라온 꼬맹이 녀석까지 안내원에게 영어로 열심히 질문하는 걸 들으며 ‘들리는 건 들으면 되고 안 들리면 마는 거지 뭐’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다짐한다. ‘서울 가면 영어 공부 열심히 해야지’ 해외여행 할 때면 꼭 마음먹는 공염불이다.

짧은 투어를 끝내고 골목길로 나오니 현지인 식당이 보인다. 간판도 메뉴판도 없고 만드는 주인과 먹는 손님만 있다. 다들 뭘 먹고 있나 살피는데 한 여인이 자기 그릇을 가리키며 손짓으로 말을 건다. 아마도 자기 먹는 것을 사서 먹으라는 것 같다. Good?’ 하니 그 여인 또한 ‘Good’ 하며 웃으며 대답한다. 그래도 이름을 알아야 주문을 하지. 국수 그릇을 가리키며 눈으로 말을 거니 ‘센야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넓은 면을 가리키는 말이란다. 어쨌든 센야이, 센야이 하며 손가락 둘을 펼쳐 보이니 주인은 미소로 주문을 접수한다. 여인도 우리 자리를 마련해 놓고 자신은 한 쪽 귀퉁이에서 먹고 있다. 평소 먹어본 태국 쌀국수 보다 훨씬 풍성하고 국물이 진한데다 완자, 고기건지까지 냄새 하나 없이 맛있다. 고기 싫어하는 내가 국물까지 다 먹을 정도로. 동생과 둘이 ‘맛있다, 맛있다’ 하니 옆자리의 젊은 아가씨가 ‘아로이’ 한다. 맛있다는 자기 나라 말을 가르쳐 주는구나 알아채고 ‘아로이, 아로이’ 하니 활짝 웃는데 그 모습이 참 예쁘다. 낯선 일상에서 만난 소시민의 배려와 진심이 따뜻하게 전해져 온다. 이런 게 사람 사는 게지.

짧은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공항, 다시 또 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맘속으로 외친다.

‘기다려 방콕, 다시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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