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과 풍수165. 동양오술(용대기 35)
동양학과 풍수165. 동양오술(용대기 35)
  • 성광일보
  • 승인 2021.09.2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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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老泉) 김흥국/광진투데이편집위원장. 삼오지리학회장역임. 現. 한국현공풍수학회장. 신화씨엠씨(주)대표.
김흥국
김흥국

오늘은 본 연재의 부제인 용대기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자.

용은 위대한 우리의 중시조인 치우천황의 상징으로 龍문화는 봉황과 함께 우리 배달민족의 전통상징이며, 치우천황은 천손민족으로 용을 자신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이 자신들의 문화로 차용하고 있으며, 그 시작은 한고조 유방이 치우천황을 지극히 사모하면서 시작되었다. 한고조는 전쟁에 임해서는 승리를 기원하는 치우제를 드렸으며 중국을 통일한 후에는 치우사당을 세워 전쟁의 신으로 모셨다.

그래서 한나라 이전에는 은상의 유물에서 용의 형태가 있었지만 사마천의 사기에는 이를 도깨비와 같은 도철문양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은상 이후의 주나라나 춘추전국시대. 그리고 이를 통일한 진시황 때에도 용의 흔적은 찾기 어려웠지만 한 나라 이후에는 제왕들이 앞을 다투어 치우천황의 위명과 위엄을 차용하여 황제의 권위로 용을 자신의 상징으로 사용하였기에 오늘날은 용이 중국 문화로 인식되게 되었다. 심지어는 명나라 주원장은 자신의 얼굴을 용의 형상과 닮게 초상화를 그리게 해서 그 모습이 기괴하게 그려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의 고민은 용문화는 대중화 되었지만 출발이 오리무중이라 고민을 하였는데 그러한 고심 속에 최초의 용을 발견하였다. 그 곳은 치우천황의 본거지인 홍산지역인 것이다.

우리의 용문화가 이렇게 배달국에서 시작하여 한고조 때 중국문화로 넘어갔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일제가 조선말 강점기 때 대한제국을 영원히 그들의 식민국가로 만들기 위해 우리의 민속놀이나 전통의 상징을 오락수준으로 격하시키고 미신으로 몰아 조상의 얼이 깃든 모든 전통과 유물을 저급문화로 격하시켰으며 그들은 용을 도깨비처럼 인식하도록 저속화시킴으로 우리의 용은 도깨비로 변질되어 우리의 용문화가 잊혀 지게 된 것이다.

필자가 괜한 소리하는가? 여기 그 증거를 조금 나열해 보자. 당시 조선총독부는 동경대 사회학전공의 무라야마지준(村山智順)이란 갓 졸업생을 총독부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임용하여 우리의 전통문화를 전국 순사조직을 통해서 자료를 수집하여 “조선의 귀신” “조선의 무격” “조선의 향토오락 (朝鮮の鄕土娛樂)”등의 보고서를 만들었으며, 그 내용의 골격은 조선은 민간신앙으로 귀신이나 도깨비신앙이 있으며 이는 미개하고 야만적인 믿음으로 문화적으로 저급하기에 미개한 문명을 고급문명으로 전환시키는데 일본 식민정책이 꼭 필요하다는 논지로 보고서를 작성한 것이다.

이 땅의 전통과 조상의 얼을 미신과 오락의 수준으로 전략시켰으며 우리의 전통 용문화는 덕분에 도깨비문화로 변질되어 녹유용면와가 녹유귀면와로 용이 귀신이나 도깨비로 바뀐 것이다.

그 결과 우리의 중시조격인 치우천황이 붉은 악마가 되어 도깨비취급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 악마나 도깨비자손으로 전략시킨 결과가 된 것이다.

필자는 본 용대기연재를 통해서 우리 龍문화의 근본을 찾기 위해 우리 민속놀이나 농악놀이에 남아 있는 용대기놀이와 기세배놀이를 소개하였으며, 또 다른 측면에서 용의 근거를 찾다보니 전통기와집을 통해 용마루, 서래기와 그리고 신라의 녹유용면와 용기와를 소개하였다. 다음에 성덕대왕신종인 에밀레종의 용뉴(龍鈕)를 보면 용의 전통성이 이 땅에 존속함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럼 필자의 말대로 용과 봉황의 시작이 배달국인지 아님 중국인지 또 다른 역사적 내용과 자료를 바탕으로 정확한 증거를 찾아보자. 그리고 과연 그렇다면 우린 조상이 남긴 찬란한 유적과 유물을 바로 세워서 “전통의 미래”를 정확이 이어야겠다.

현재 중국은 龍문화를 자신들의 전통으로 생각하고 연초에서 각종 행사에 응용하고 있지만 그들도 용문화에 대한 근본출처가 없어 무진장 고민을 하다가 마침내는 용에 관한 유물을 내 몽골 적봉지역에서 기원전 4.500년경의 유적에서 발견하여, 용의 근본에 목이 말랐던 그들이 흥분하여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였다. 하지만 여기는 중국 본토로부터 1300km나 떨어진 배달민족의 본거지이며 그들이 이곳에 거대한 표지석을 세우고 대대적으로 용의 증거를 만들었지만 이곳은 치우천황의 탄생지로 우리 조상의 근거지요 후대에는 고조선의 영역이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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