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으로 인품을 살 수 있는가?
등급으로 인품을 살 수 있는가?
  • 성광일보
  • 승인 2021.11.2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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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 / 논설위원
송란교

최근 친구들과 함께 서울 근교에 있는 소요산을 오른 적이 있었다. 설악산이나 내장산까지 갈 수 없는 형편이기에 이 산의 아름다운 단풍으로 늦가을의 마음을 달래보기로 했었다. 갑자기 내린 서리에 단풍잎이 남아 있을까 하는 조바심이 일기도 했었다. 친구들과 군사작전을 실행하듯 세밀한 시간표를 작성하고 지하철을 몇 번씩 갈아타고 중간중간 연락을 취하며 약속했던 집결지에 무사히 도착했었다. 산 입구까지 길게 나래비 서 있는 울긋불긋 단풍나무 덕분에 설레는 마음을 불태우기에 충분했었다. 그다지 높지 않아 보이는 산이지만 산이 꿰차고 앉아있는 밑바닥의 폭이 넓지 않아서 그런지 산행 초입(初入)에서부터 오르막 경사가 매우 심했다. 껄떡껄떡 숨이 벅차니 옆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유격훈련(遊擊訓練) 하듯 산을 오르다 보니 단풍은 온데간데없고, 후들거리는 무릎을 달래며 그저 한 계단 한 계단 오르기에 바빴다.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는데, 계단과 계단 사이가 야속하리만큼 멀고도 높았다.

산 입구에는 등산코스와 산행의 거리를 표시한 안내도가 세워져 있는데, “초보자 코스 : ~ ~, 중급자 코스 : ~ ~, 상급자 코스 : ~ ~”로 구분하여 표시하고 있었다. 다른 산을 가보더라도 이렇게 구분하여 표시한 안내도가 대부분이다. 난이도(難易度)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산행코스를 조금 세분하여 살펴보면 난이도 보다는 산행 거리에 따른 분류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초급자, 중급자, 상급자 코스라고 표현하고 있을까?

짧은 코스, 조금 긴 코스, 많이 긴 코스 또는 제1코스, 제2코스, 제3코스 등으로 표현한다면, 초급자 코스를 다녀왔다고 의기소침하며 기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상급자 코스를 다녀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인격적으로 상위이거나 산을 오르는데 뛰어난 기술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조금 더 먼 거리를 오르고 걷다 보면 시간을 좀 더 많이 투자했다는 것과 체력을 좀 더 많이 소모했다는 것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체력의 차이가 인격이나 인품의 차이를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능력의 차이를 암시하듯 등급을 매겨놓았는가? 굳어버린 생각의 틀을 깰 수 있을까?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경쟁의 틈바구니에 끼어 허우적거리며 살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면서 등급을 매기게 된다. 이 사람은 얼마짜리, 저 사람은 얼마짜리, 그 사람은 얼마짜리 하면서 나보다 밑인가 위인가를 수시로 비교 분석한다. 그러면서 밑이라 생각하면 깡그리 무시하고 위라 여겨지면 무턱대고 부러워한다. 비교하고 평가하는 마음은 희비의 쌍곡선을 자유자재로 그린다. 그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한다. 그러면서 그 숫자놀음에 스스로 지쳐간다. 더욱이 상대가 나를 어떤 등급으로 매겨놓았는지를 확인하는 순간 마음이 불편해진다. 상대가 자신을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불안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그 상대를 평가하고 등급을 매긴다. 나를 낮게 평가하고 있으면 나의 능력을 알아보지 못하는 놈이라고, 나를 아주 싸구려로 평가하고 있다고 화를 낸다. 그리고 상대를 아주 질 나쁜 놈이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소문내고 다닌다. 나를 높게 평가하고 있으면, 그래 너는 된 놈이야 하면서 그를 곁에 두고 아끼려 한다. 그렇다고 남들에게 좋은 녀석이라 말하지는 않는다. 상대도 자신이 하는 것처럼 똑같이 나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을 것이다. 말은 그 사람의 품격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을 가려서 하고 신중히 해야 하고 품위를 지키며 해야 한다. 자신은 언제나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아야 하고, 상대는 아무렇게나 평가받아도 된다는 생각은 버리자.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찾아 남들 앞에서 칭찬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가 보다.

식육점에서 파는 고기는 질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고 가격에도 차이가 난다. 시장에서 파는 채소나 곡식류도 마찬가지다. 최상위 등급은 언제나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린다. 사람은 능력이 뛰어나면 ‘고수’나 ‘최고~~’라 부른다. 이런 평가를 받기까지 알게 모르게 수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최고 등급에 최고의 인품을 지닌 사람을 우리는 우러러 존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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