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겨울 꽃 이야기
[소설] 겨울 꽃 이야기
  • 성광일보
  • 승인 2021.11.29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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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당(소설가, 시인·성동문인협회 이사)
김근당

극락조화꽃

저는 엄마가 뒤늦게 찾아온 사연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 방에서 새어나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엄마가 찾아온 날 밤, 제가 마루에 나왔을 때였습니다. 엄마는 당신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엄마는 당신과 헤어진 후 당신을 애타게 찾았고, 3년이 지나 이 씨 집안에서 쫓겨나다시피 노모가 사는 속초로 이사를 갔고, 세월이 흐르면서 노모와 오빠의 성화에 못 이겨 홀아비를 만나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엄마의 이야기가 구구절절해서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제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대충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엄마가 다녀간 후 저희는 다시 예전처럼 살았습니다. 당신도 엄마에 대해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송동이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착실하던 송동이 매사에 의욕을 잃고 자기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만 하고 있었습니다. 성적도 떨어지고 행동도 거칠어져갔습니다. 누나인 저하고도 아버지인 당신하고도 말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도 송동이 엇나가는 모습을 보고 그냥 있을 수 없었던 모양인지 어느 날 저희를 당신 방에 불러 앉혔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저희들에게 말하려고 했다는, 당신이 살아온 과거를 창호지에 석양빛이 붉게 물들 때까지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죽어가는 아기를 안고 캄캄한 밤 코피를 쏟으며 눈밭을 헤매던 당신의 사랑이, 저희를 잘 키우기 위해 당신의 인생을 포기했던 당신이 참으로 고맙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송동은 목석처럼 앉아있었습니다. 그때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송동이 당신의 특별한 삶을 다 이해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자신의 출생에 회의를 느꼈는지 모릅니다. 당신이 말을 다 마치자 송동은 말없이 자기 방으로 갔었습니다.  

중학교 때는 철이 없어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하지만 송동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더욱 나쁜 길로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오후 근무 때면 어디를 싸돌아다니는지 밤늦게 집에 들어왔습니다. 당신은 교대근무를 하느라고 잘 몰랐을 것입니다. 저는 송동을 붙잡아 앉혀놓고 이야기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저를 누나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쁜 학생들과 어울리며 담배도 피웠고 술도 먹었습니다. 당신이 학교에 불려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더니 고등학교 2학년 때는 가출까지 했습니다.  

당신과 저는 며칠을 극장 주변의 우범 지역을 뒤지며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 엉뚱하게도 시내 변두리 아파트 건축 현장에서 등짐을 지던 송동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말이 없는 송동을 당신도 저도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절에 간다고 나갔던 당신이 죽은 사람으로 돌아왔습니다. 뒷산을 올라가다 보면 시내로 넘어가는 도로에서 산 속으로 들어간 곳에 있는 작은 절이었습니다. 저희가 연락을 받고 병원에 갔을 때 당신은 이미 숨을 거둔 뒤였습니다. 휘어져 돌아간 도로 가운데서 차에 치었다고 했습니다. 경찰의 말에 의하면 당신은 만취 상태였습니다. 평시에는 술을 마시지 않던 당신이었습니다. 저희에게 모범을 보이기라도 하듯 언제나 반듯하게 살아온 당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토록 술은 마셨는지요?  

당신의 죽음은 저희에게 청천벽력이었습니다. 저희는 몸과 마음을 둘 곳을 몰랐습니다. 당신의 울타리 속에서 당신의 사랑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올바로 커서 세상에 떳떳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던 당신이었고, 당신의 희망과 행복이었던 저희였습니다. 방황하던 송동이도 당신의 죽음에 눈물을 쏟았습니다.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자책감을 가진 듯 했습니다. 저는 그런 송동이를 애틋하게 끌어안았습니다. 그것이 동정이었을까요? 연민의 정이었을까요? 아니면, 당신이 저희 에게 뿌리깊이 심어준 사랑이었을까요? 송동이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밤마다 제 품으로 파고들었고 저는 송동이 가슴으로 파고드는 것을 거부하지 못했습니다. 가슴에서 극락조화가 신비롭게 피어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눈보라 속에 피는 꽃이었습니다. 저희의 운명처럼. 당신을 잃은 애달픈 마음에 피어난 꽃이었습니다. 세상을 향해 날아가라고. 초록과 자홍색의 꽃받침 위에 노란색과 붉은색의 꽃잎을 한겨울에도 싱싱하게 피어 올린 극락조화 꽃입니다. 송동이가 시내 화원에서 사온 꽃이었습니다. 햇볕이 잘 드는 마루 한쪽에서 싱싱하게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줄기는 흙속에 묻은 채 올려 보내준 꽃대 위에 새가 날개를 편 모양으로 세상을 향해 피어있습니다. 저희는 둘이서 그 꽃처럼 세상을 향해 날아가고 싶었습니다. 저의 뱃속에서 아이가 커가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맺어준 사랑의 결실이었습니다.   

거실 밖 베란다에는 지금도 극락조화가 싱싱하게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당신의 희생 위에 피어난 극락조화입니다. 송동이도 마음을 잡고 공부해서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편입학하였습니다. 저도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간호사시험에 합격하여 병원에서 근무하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옮겨왔습니다. 밖에는 눈보라가 치고 있습니다. 그래도 베란다에는 극락조화가 싱싱하게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저희는 당신을 보듯이 소중하게 키우고 있습니다. 당신이 돌아가시며 저희에게 준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아기도 태어났습니다. 저희는 이름을 정기(精氣)라고 지었습니다. 당신의 정신과 기운을 이어받으라고 지은 이름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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