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사랑의 기쁨과 슬픔(1)
[소설] 사랑의 기쁨과 슬픔(1)
  • 성광일보
  • 승인 2021.12.16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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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규/소설가
곽 명 규소설가, 번역가성동문학 회원
곽명규/소설가

1.

솔 도-미 솔-  파 미 레도 레파 라---
도시 도 라솔 라 미레 미
도시 도 라솔 라 미레 미
전화기에서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이 흘러나오고 있다. 첼로 소리가 원래의 바이올린 연주보다 훨씬 부드럽고 여유 있게 들려온다. 
콧노래로 멜로디를 따라 부르며 그는 주머니 속의 전화기를 천천히 꺼내 든다. 화면에 한 여인의 이름이 떠올라 있다.

"여보세요?"
"저예요! 뭐 하세요, 이 화창한 날에?"
목소리가 매우 들떠 있다.
"네, 뭐, 그냥 이것저것..."
"연구실에 계신 거죠?"
"네, 그렇죠."
"점심 드셨어요?"
"아니요, 아직..."
"그럴 줄 알았어요. 제가 사 드릴 게요. L에서 만나요. 이십 분 후면 되겠죠? 짤깍."

그는 잠깐 멍한 얼굴로 맞은편 벽을 쳐다보다가 숨을 한 번 크게 쉰 뒤에 자리에서 일어선다. 따분한 봄날의 시간이 어느새 토요일 오후 한 시에 와 있다. 전화가 오지 않았으면 아마 세 시쯤까지는 빈둥거리며 책상 앞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결혼정보 회사의 소개로 한 달 전에 그녀를 처음 만났었다. 그러나 그 뒤로 다시 만난 것은 두 번 밖에 되지 않는다. 그녀는 큰 로펌에 대표 변호사의 비서로 근무하고 있는데, 평소에 퇴근시간이 일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주말에도 예정에 없던 출근을 하게 되는 일이 잦아서 데이트 약속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그녀에게 예상 못했던 여유시간이 생기자 모처럼의 번개 데이트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사진과는 많이 다르신데요? 물론 좋은 쪽으로 말이죠. 훨씬 더 미인이시고, 웃기까지 잘 하시고, ... 상상을 크게 초월하는데요?"
처음 만났을 때의 이 말 때문에 오늘 그녀의 전화를 받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공연한 웃음이 지어 진다.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먼저 와 있는 그녀에게 허리까지 구부려 인사를 하면서 말한다.

"감사라니요? 제가 무슨 자비라도 베풀었나요?"
그녀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그를 쳐다본다.
"자비를 베푸신 거지요. 전화를 걸어 볼까 하면서도 계속 바쁘실 것 같아 망설이던 중이었거든요."
“그래요? 그렇다면 감사를 받아들이지요. 하지만, 망설였다는 건, 마음이 절반 밖에 없었다는 뜻이니까, 감사도 반만 받아야겠네요.”
그녀의 말에 그는 조금 찔린다. 사실은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그녀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튼 귀한 토요일 오후를 내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그는 다시 한번 그렇게 말한다. 그 말을 계기로 그들의 대화는 일상적인 화제로 넘어가고, 접시에 담긴 파스타에는 가벼운 잡담이 토핑처럼 뿌려진다. 잃어버렸던 입맛과 허전했던 배가 다독거려지기 시작한다. 
솔 도-미 솔-  파 미 레도 레파 라---
도시 도 라솔 라 미레 미 
도시 도 라솔 라 미레 

전화기에서 첼로 소리가 들려온다.
“미안합니다.”
그는 황급히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낸다. 
“어, 그래. 오랜만이야. ... 미안해. 지금은 통화를 못 하겠구 이따가 내가 전화할게. 안녕.”

그리고는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으며 그녀를 쳐다본다.
“전화를 다 받으시지 그랬어요? 전 괜찮은데.”

그녀가 너그럽게 말한다.
“이따가 걸면 되죠.”

둘 사이에 잠깐 말이 끊어진다.
이런 멋쟁이 여자가 나 같은 촌사람에게 왜 먼저 전화를 걸었을까? 삼십 대 초반인데도 결혼이 급한 것일까? 
그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 사람한테 결혼은 이삼 년 뒤에나 생각하고 그 동안은 데이트만 하자고 하면 뭐라고 할까? 그래도 떨어져 나가지 않을 만큼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는데.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미 라 - 미- - 미 레 미 파 - -
솔 레 - 레- - 레 도 레 미 - -

전화기에서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슬픔이 흘러나온다. 첼로 소리가 원래의 바이올린 연주보다 훨씬 부드러우면서도 마음속을 파고든다. 그러나 그는 주머니 속의 전화기를 꺼내지 않는다. 
“전화 온 거. 받으세요. 중요한 일일지도 모르는데--”

그녀가 비서답게 그를 일깨워 준다.
“미안합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들고 종료 버튼을 길게 누른다. 음악소리가 멈춰진다.
“안 받아도 되는 전화예요.”

그는 전화기를 다시 주머니 속에 넣는다.
“안 받아도 되는 전화라는 걸 어떻게 알죠? 받아야 될 전화와 어떻게 구별이 돼요?”
“아아, 그건 간단하죠. 음악소리로 구별이 되거든요.”
“네에? 어떻게 그게 음악소리로 구별돼요? 똑같은 전화인데?”
“네에. 그건 간단하죠. 전화에 따라서 음악소리가 구별되도록 설정을 해 놓았거든요. 하하.”
“설정을 해 놓았다구요? 걸려오지도 않은 전화에다가요?”
“그런 게 아니구요, 내가 번호를 입력해 놓은 사람들이 전화를 할 때면 특별한 음악 소리가 나오도록 해 놓은 것뿐이지요. 입력 안 된 전화가 올 때면 다른 음악이 들리도록 했구요.”
“아아! 그게 그런 거였군요!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슬픔! 그렇게 구별해 놓으신 거예요. 맞죠?”

그녀는 오른 손의 둘째 손가락으로 권총처럼 그를 겨냥하고는 방아쇠를 당기듯 손끝을 흔들며 단정적으로 말한다.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그는 권총에 맞은 사람처럼 손바닥을 가슴에 대며 외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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