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원의 엉뚱 발랄 성동 이야기] (43) 시비와 열사
[서성원의 엉뚱 발랄 성동 이야기] (43) 시비와 열사
  • 서성원 기자
  • 승인 2022.03.11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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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봄, 한양대 캠퍼스에서 시비와 열사비를 만나
개나리가 피었던 한양대 민주열사 추모공원. ⓒ서성원

○ 소재지: 서울시 성동구 한양대 인문대 앞 

3월이다. 봄이다. 이맘때쯤 대학 캠퍼스는 활기차다. 새내기들 때문이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예전과 다르겠지. 그래도 좋다. 오늘은 한양대로 가보자. 비(碑)를 보기 위해서다.
첫 번째 비에 대한 힌트다. 비가 선 이곳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풍광이 아름답다. 눈을 아래로 두면 도로, 시가지가 펼쳐진다. 눈을 들어보면 남산도 아스라하다. 휘어져서 한강으로 흘러가는 중랑천 물길 또한 멋지다. 목월 시비(木月詩碑)는 이런 곳에 있다. 위용도 당당하게.
거기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또 다른 비(碑)가 주르르 서 있다. 키는 들쭉날쭉하고 고만고만하다. 민주열사비다. 

한양대 캠퍼스 안에서 비가 있는 위치

목월 시비를 만나다

내가 처음 목월 시비를 본 것은 늦여름이었다. 마조단터 푯돌을 찾으려고 갔었고, 간 김에 몇 곳을 둘러보다 발견했었다. 시비가 크고 우람해서 쉽게 눈에 띄었다. 그 오솔길(158계단)을 지나가는 이라면 놓칠 수가 없을 만큼 컸다.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시비들은 소박했다. 명성에 비해 그랬다. 하지만 목월 시비는 달랐다. 위풍당당, 세상을 굽어보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시비에 적힌 시는 '산도화(山桃花)'였다. 왜 '나그네'가 아니지? '산도화'라는 꽃이 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아니라는 걸 이 기사를 쓰면서 알았다. '산에 피는 복숭아꽃'란다. 

목월 시비가 왜 한양대에 있는가. 

목월은 1915년 경주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대구에서 중학교를 다녔고 일본 유학도 다녀왔다. 서울대, 홍익대를 거쳐서 1962년부터(59년이라는 얘기도 있다) 한양대에서 1978년 3월 사망할 때까지 교수로 있었다. 1993년에 시비가 세워졌다.  
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 이런 말이 있다.
'시사적(詩史的)인 면에서 김소월(金素月)과 김영랑(金永郞)을 잇는 향토적 서정성을 심화시켰으면서도, 애국적인 사상을 기저에 깔고 있으며, 민요조를 개성 있게 수용하여 재창조한 대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내 마음속에 깊게 드리워진 박목월의 '나그네'

중학교인지 고등학교 땐지 모르겠다. 교과서에 '나그네'라는 시가 실려 있었다. 나는 그 시가 너무 좋았다. 짧지만 멋졌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남도 삼백 리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는 말이 사람 마음을 휘저어 놓았다. 그리고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이라니. 나그네로 나서면 그런 길을 만날 것 같았고 그렇게 나도 나그네로 살고 싶었다. 이런 시와 함께 교과서를 통해서 알게 된 시인은 시만큼이나 훌륭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 교과서 바깥의 시인은 어떤가. 
문학 작품은 작품만으로 봐야 할까. 그렇게 얘기하기도 한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관계없이 작품은 작품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시비를 둘러보다 눈에 들어온 민주열사비

박목월 시비와 가까운 거리에 민주열사 추모공원이 있었다. 비들은 낮춤하고 올망졸망했다. 박목월 시비와 자연스럽게 비교과 되었다. 가까운 거리여서 그랬다. 
민주열사 추모 동산에 들어가서 비를 둘러보았다. 귀한 자기 목숨을 내놓은 이들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의가 바로 서는 세상을 위해. 하지만 나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예전에 들었는데 잊어버렸을까. 예전부터 알려지지 않아서 내가 몰랐던 걸까. 분명한 것은 내가 열사들을 마음에 담아놓고 있지 않았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내 목숨을 귀하게 여겼고, 지금까지 잘 살아남았다. 
나는 추모공원에서 비에 적힌 이름을 읽었다. 열사들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불러보았습니다. 최응현, 김헌정, 한영현, 마상길. 
'상길이를 기리며'를 읽다가 어두커니 섰다. 마음속에서 무언가 뚝 떨어져 내렸다.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비의 제목에서 뚝뚝 묻어났다.
여기 네 사람은 인터넷에 검색해봐도 자료가 빈약했다. 한양대 뉴스 포털에 실려있는 내용이 그나마 자세했다.
올해에도 캠퍼스에는 개나리가 피고 벚꽃도 피겠지. 그리고 이들처럼 살다가 떠난 사람들은 우리에게서 더 멀어지겠지.

박목월 시비 중 산도화. ⓒ서성원
박목월 시비. ⓒ서성원
박목월 시비의 위치에서 먼 곳과 산 아래 시가지가 한눈에 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서성원 
민주열사 추모 동산, 민주열사 추모공원, 이렇게 두 가지 팻말을 세워놨는데 이유가 있을까.
 ⓒ서성원
2021년 합동 추모제에서 추모비에 의식을 진행하는 모습 .(출처 추모연대)
2021년 합동 추모제 모습인데 박목월 시비가 있는 곳에 천막을 설치했다. 뒤편으로 시비가 살짝 보인다.(출처 추모연대)
민주열사 추모공원의 비. ⓒ서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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