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봄이 오는 수종사
[수필] 봄이 오는 수종사
  • 성광일보
  • 승인 2022.03.2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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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문
최광문

요즈음 날씨는 변덕이 심하다. 소식 없이 오는 봄을 시샘이라도 하듯 바람이 불고 쌀쌀하더니 최근에는 눈까지 내린다.
하지만 벌써 섬진강 매화마을까지 다녀온 사람들도 있다.

봄을 마중하러 오늘 산악회에서 남양주에 있는 운길산을 간다. 산중턱에 아름다운 절 수종사가  자리하고 있다. 조선시대 학자 서거정선생이 동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세워진 절이라고 극찬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동료들이 정상에 다녀오는 동안, 나는 수종사 주위를 둘러보고 가슴에 조상들의 숨결을 새겨 올 참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버스는 한때 전성기를 누렸던 미사리 카페촌을 지나 팔당대교 양수리를 끼고 양평 가는 길로 접어들더니 곧 운길산역에 도착했다. 현대식 역사답게 깨끗하고 아름답다. 온갖 모양의 등산복 파는 가게와 여러 음식 냄새로 범벅이 된 식당들로 빼곡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별도의 홀이 있는 식당을 도착 지점으로 정했다. 우리는 600여 미터 정상을 향하여 발길을 재촉했다.

방향을 잡으니 좁은 등산로가 계속 오르막이다. 자갈과 흙길을 번갈아 올라갔다. 풀잎 사이를 제 마음대로 비집고 흐르는 실개천의 운치가 좋다. 맑은 물소리가 정겹게 들렸다. 울창한 숲속을 사색이라도 하듯 천천히 따라 걸었다. 온갖 나무로 울창한 숲길에는 이름 모를 산새들이 길 떠나는 나그네를 반기듯 지저귄다. 등산 인파가 무리지어가고, 이들에 묻혀 또는 따라서 올라갔다. 모퉁이를 살짝 벗어나자 절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운길산 수종사'라 써진 일주문이 보이고, 돌계단을 힘들게 올라가니 목탁과 염불 소리가 들렸다. 큰 키의 미륵 부처가 미소를 머금고 우리들을 반겼다. 비탈진 언덕을 넘으니 절벽을 깎아 만든 듯 좁은 마당에 절의 속살을 드러냈다.

반가운 마음에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 그림 같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전경이 어쩌면 하나의 화폭같이  펼쳐져 있다. 조선시대 이름 있는 선비와 임금까지도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이라 절찬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예부터 물이 마르지 않고 또 맛이 좋기로 소문나서인지, 약수 한 모금 마시려니 줄을 서야 했다. 포기하고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리니 '삼정헌'이라 써진 다실이 보였다. 여기도 들어가기 위해 차례를 기다렸다.

다산 정약용, 대제학 초의, 추사 김정희 선생이 이곳(삼정헌)에서 가끔 만나 차를 마시고 회포를 푸는 장소로 이용되었으며, '三鼎軒'이란 글씨도 이때 김정희 선생이 썼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나는 동료들이 정상을 다녀오는 동안 여기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무료로 차 마시는 곳이다. 요즈음 유행하는 종류의 커피가 아닌 전통차(녹차)를 마시는 것이다. 신발 끈을 풀고 문을 여는 순간 탁 트인 통유리 너머로 아까 본 두 물줄기가 섞여 하나 되는 큰 흐름을 다시 만날 수가 있다. 세속의 잡다한 번뇌를 안고 강물 따라 고요히 흐르고 있는 것인가.

뜨거운 물이 든 보온병을 하나 받아 들고 벽 쪽으로 깔끔하게 차려진 찻상 앞에 앉았다. 보온병 물로 다기를 몇 번 헹궈 내니 다기가 따뜻해졌다. 거기에 찻잎 한 스푼 넣고 더운 물을 부어 녹차를 우려냈다. 차츰 연둣빛으로 변하는 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정상으로 올라가지 않고 방향을 잘 바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녹차 향기는 목구멍을 넘어 온몸으로 퍼졌다.
창 너머 멀리 겹겹이 쌓인 산맥 아래, 광주 어느 조그만 동네가 안개 속에 정겹다. 그 앞으로 한강 넘어오는 대교와 양평으로 달려가는 도로가 맞물려 수많은 자동차들이 드나는 그 길은 드라이브 코스로도 멋지다. 운길사역이 조그맣게 내려다보이고, 등산로가 보이는 곳은 등산객들의 모습이 화려하다.

찻집에 들어오려고 줄을 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기왓장을 차곡차곡 쌓아 놓고 '기와 불사' 하는 곳으로 가서, 까만 기왓장 등부분에 하얀 사인펜으로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그 아래에 가족의 이름을 정성스럽게 쓰고, 만원을 불전함에 넣었다. 나름대로 찻값을 한 셈이다.

최고의 명당 다소곳한 위치에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이 자리하고, 수령 500년이 넘은 은행나무 두 그루 또한 오랜 세월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며 잘 버티고 있다. 그때 심은 은행나무도 아무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 그동안의 한 많은 세월을 용케도 잘 견뎌 왔다. 그래서 여기는 진달래, 개나리 피는 봄날보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가을이 더 아름답다고 스님이 귀띔했다.
아! 운길산과 두물머리, 수종사 대웅전과 은행나무 그리고 강물 속으로 빠져드는 구름까지 이렇게 조화로울 수가 있을까.

나는 불교신자가 아니지만 절간에 들어서면 향내가 좋고, 스님의 목탁 소리가 마음을 맑게 한다. 대웅전 처마에 매달려 달랑거리는 풍경소리는 조그만 절집 분위기를 은은하게 하면서도 긴 여운을 남긴다.

바람이 부는 대로 종에 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내는 물고기는 다시 강물 속으로 돌아가고파 몸부림치는 것처럼 애처롭게 보인다.
두 개의 물이 섞여 하나가 되어 흐르는 두물머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구름도 지나가다 산에 걸려 멈춘다고 이름한 '운(雲)길산'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조왕의 흔적도, 정약용, 서거정 선생의 숨결도 함께 느껴볼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하여 더욱 그렇다.

최광문<br>
최광문

 

 

- 2015년 약사공론 약국수기 최우수상
- 2017년 약사공론 어머니전상서 우수상
- 2017년 광진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 현재 노인요양병원 약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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