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졸고 있다
촛불이 졸고 있다
  • 성광일보
  • 승인 2022.05.27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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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논설위원
송란교

흐느적흐느적 춤을 춘다. 바람 한 점 없는데 좌우로 느릿느릿 드러눕는다. 졸리는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한다. 그러다 천장을 향해 똑바로 선다. 촛대 그림자도 주인 따라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촛불은 꽃심지를 붉게 태우다 너무 뜨거워서 우는 것일까 아니면 어둠을 온몸으로 막아서다 새벽이 다가옴에 웃고 있는 것일까?

촛불은 자신의 몸을 태워 어두운 곳에 빛을 나누어준다. 어둠을 태우고, 고약한 냄새를 태우고, 삐친 마음도 함께 태운다. 골방에 갇힌 영혼에 한 줄기 빛을 밀어 넣는다. 그런 촛불은 위대하다. 그러나 촛대 하나는 너무나 미약하다. 여러 개가 모여야만 큰 힘을 낼 수 있다. 나란히 서야 굳센 방패가 되어 거친 바람을 막을 수 있다. 바람 앞에 약한 것이 어디 촛불뿐이런가. 센 바람에는 들풀도 드러눕고 오징어잡이 선장(船長)도 돌아눕는다. 고가사다리는 다리를 접는다.

촛불이 켜지면, 촛농은 녹아내려 늙은 소나무 거북 등이 되고, 심지는 훨훨 타올라 어둠에 몸을 숨긴 골목길을 환하게 밝혀준다. 비누는 제 몸을 녹여 거품을 만들며 다른 사람의 때를 씻어준다. 비린 냄새를 향기로 채운다. 콧바람을 풋풋하게 한다. 지우개는 자신을 문지르며 다른 사람의 상흔(傷痕)을 덮어준다. 잘못된 흔적을 말끔하게 지워준다. ‘나’를 버리고 ‘너’를 빛나게 하는 아름다운 희생이다. 아름다운 사랑이다. 자신의 살을 조금씩 조금씩 내어주며 큰 사랑을 채워가는 것이 어디 촛불과 비누와 지우개만 있겠는가. 자식을 낳아 다 큰 어른이 되도록 수만 번을 가르치고 나면 기쁨에 겨워 어린아이로 다시 돌아가는 엄마의 인생도 있다.

따뜻한 빛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타인의 빛을 가리는 자 누구인가? 빛을 등진 허수아비는 할 일이 없다고 추위에 떨고 있다. 일주문에 두 눈 부릅뜨고 서 있는 사천왕은 어둠을 틈타 넘어오는 마귀를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고민이 깊어 간다. 바싹 마른 솔잎 사이에서 촛불마저 졸고 있다. 누구를 위해 졸고 있는가? 보도블록의 갈라진 틈새를 빛으로 메우려 해도 메워지지 않는다. 어둠이 차지하고 있는 그 틈새를 어이할꼬. 꽃등심 한 덩어리라도 먹어볼 요량인데 모두 틀니에 끼고 잇몸에 끼어서 놀고 있다. 맛을 느낄 수 없는 벌어진 잇몸 사이를 어찌할 것인가. 촛농으로 그 벌어진 틈을 메꾸어볼까? 촛불이 타다만 그 눈물 덩어리로 문지르면 메꾸어질 것인가?

동서남북 철길이 십자수 놓이듯 깔리고, 고속도로가 사방팔방으로 뚫리고, KTX도 쉼 없이 쌩쌩 달려오건만 사람 사이에서 기다리는 따뜻한 말은 쉬이 찾아오질 않는다.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 민심의 강물이 퉁탕거리며 역류(逆流)하려 한다. 꼬인 내 마음이 실타래 끊어진 듯 위태롭게 흔들거리며 흘러가고 있다. 석양을 깃대고 오르는 밥 짓는 하얀 연기는 가오리연인지 홍어 연인지 분간은 할 수 없지만, 그 옆으로 문어 연도 함께 타오르고 있다. 차가운 밤이 내리기 전에 더 높이 올라가야 밝은 별님을 만날 수 있다고 야무지게 오른다.

눈빛은 따뜻하다. 그래서 좋다. 눈치는 쌀쌀하다. 그래서 싫다. 사람의 정은 따뜻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좋아한다. 그런 마음이 모이면 주위가 따뜻해진다. 그러니까 우리는 따뜻한 이웃과 함께 모여 살아야 한다. 내 몸을 따뜻하게 하려면 빛을 쫓아 움직여야 하듯 세상을 향해서 나의 따뜻한 마음 한 줌이나마 태워보면 어떨까. 누군가의 작은 희생은 많은 사람에게 큰 희망의 선물이 된다.

조식(曹植 : 192~232, 위(魏)나라, 조비(曹丕)의 아우)의 칠보시(七步詩)를 떠올려 본다.

『자두연두기(煮豆燃豆萁) :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으니,
두재부중읍(豆在釜中泣) : 가마솥 속의 콩이 울고 있구나.

본시동근생(本是同根生) : 본래 한뿌리에서 낳건만
상전하태급(相煎何太急) : 어찌 이리 급하게 삶아대는가?』

하늘에 태양이 두 개가 있을 수 없고, 권력은 부자지간은 물론 형제지간에도 나눌 수 없다고 하는데 어찌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겠는가? 요즘 죽기 살기로 상대방의 표를 한 표라도 더 빼앗아 오려고 애를 쓰는 선거철이다. 권력을 부여잡기 위해서 이이제이(以夷制夷 : 한 세력을 이용하여 다른 세력을 제어한다), 이적제적(以敵除敵)이 난무한다. 씁쓸하다.

어두운 밤이면 불빛이 있는 곳으로, 차가운 날에는 따뜻한 햇볕이 있는 곳으로 사람이 모인다. 나뭇가지도 햇살을 향해 뻗는다. 모든 것은 따뜻함으로 수렴하는 것이다. 표가 모이는 것도 그러하리라. 따뜻한 말은 따뜻한 인연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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